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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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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상태의 산골 계곡은 어디건 잘 살펴보면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고를 수 있다. 아무리 가파른 계곡 언덕도 어딘가에 길 하나씩은 숨겨 놓고 있기 마련인데 장맛비에 불은 계곡물이 옆구리를 파내고 이 때문에 흙 붕괴로 오랜 세월 무너지고 다져지면서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계곡 모양을 따라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수고는 약간의 탐구심도 자극한다. 시골 사는 맛이기도 하다.
가뭄으로 동네 간이상수도가 말라버리거나 겨울에 수도가 얼어버렸을 때 양동이를 들고 가면 언제든지 물을 얻곤 했는데 그 길을 잃었다. 계곡을 건너서 나무도 주워오고 가랑잎도 긁어 와서 밭작물을 덮었지만 홍수를 막는다고 사방댐을 만들면서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시멘트블록에 갇혔다. 계곡 양옆이 1톤이나 되는 블록들로 싸여버리자 계곡을 건널 수도 없고 계곡에 내려갈 수도 없게 되었다. 언젠가 물 부족사태가 올 거라고 하는데 사시사철 흐르는 물을 앞에 두고 상수도에만 의지하는 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가장 먼저 한 일은 계곡 위쪽 사방댐에 취수 터를 만들어 길게 호스를 밭으로 묻어내려 물을 끌어오는 일은 끝냈으나 계곡은 여전히 건널 수가 없었다.
먼 길을 돌아서 다니다가 떠올린 것이 섶다리다. 어느 여름, 산사태로 큰 낙엽송 여러 그루가 뿌리째 뽑혀 가로누웠을 때 번쩍 섶다리가 떠올랐다. 어릴 때 장마가 지나가면 동네 어른들이 모여서 굵은 나무다리를 엮고 그 위에 잡목 가지를 나란히 깔고는 바지게에 흙을 날라 만들던 섶다리 기억에 나도 야심찬 도전을 시작했는데 늘 완공을 눈앞에 둔 지가 어언 2년이다. 2년 동안 내내 완공을 앞두고 있었으니 집에 오는 손님들도 섶다리 안부 묻기를 중지했다. 피안의 세계는 멀고도 멀다.
계곡 폭 길이에 맞게 낙엽송을 잘랐지만 너무 무거워 옮길 수가 없었던 게 공사 지연의 첫 번째 원인이었다. 자그마치 6미터나 되는 통나무를 장비도 동원할 수 없는 산골에서 무슨 수로 옮기겠는가. 애써 마련한 낙엽송은 토막이 나 아궁이에서 화목으로 산화했다.
곧은 나무를 겨우 구하는가 싶으면 굵기가 약해서 위험했고 다릿발을 세우자니 장마가 지면 떠내려갈 것 같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찾은 곳이 계곡 좀 위쪽의 좁은 곳이었다. 조금 돌아서 다녀야 하는 곳이긴 했지만 4미터 폭이었다.
4개나 통나무를 마련해서 껍질을 벗겨 말리는 데 1년 걸렸다. 옛날 섶다리를 나름대로 업그레이드하여 반영구적으로 쓰겠다는 게 목표였다. 옛날 섶다리는 홍수에 떠내려가든지 나무가 썩어서 해마다 새로 만들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통나무를 바짝 말려서 양끝을 비닐로 싸고 통나무 위에도 비닐을 씌워서 섶나무를 깔면 될 것 같았다. 거기에 운치를 더한답시고 그네도 하나 매달 생각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계곡 위 그네에 올라앉아 책이라도 읽는 꿈은 발설하기조차 아까운 상상이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진 않았다. 다리 놓으려고 톱이니 도끼니 낫을 챙겨서 집을 나서면 200미터도 안되는 작업 장소까지 가는 데 한 시간이 걸릴 때도 있고 두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가는 길은 철 따라 다양한 장애물이 가로놓였다. 밭에 난 잡초도 뽑고 나물도 뜯고 고추가지도 묶고 언덕에 애기 손 모양을 하고 밤새 올라온 고사리도 꺾느라 톱질 한번 해보지 못하고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한 이틀 시간을 내서 이번에는 꼭 완공하리라 일정을 잡아 놓으면 비가 와서 바짝 마른 통나무가 퉁퉁 불어 있기도 했다. 그렇게 올겨울을 맞았고 다시 여름 문턱에 왔지만 섶다리는 역시 완공직전 상태 그대로다. 이번주는 내내 비 소식이 없다하니 산골 날씨 변덕만 안 부리면 멋진 섶다리 하나가 저쪽 언덕으로 나를 이어 줄 것이라 믿는다.
<전희식 | 농부, ‘똥꽃’ 저자>
먼 길을 돌아서 다니다가 떠올린 것이 섶다리다. 어느 여름, 산사태로 큰 낙엽송 여러 그루가 뿌리째 뽑혀 가로누웠을 때 번쩍 섶다리가 떠올랐다. 어릴 때 장마가 지나가면 동네 어른들이 모여서 굵은 나무다리를 엮고 그 위에 잡목 가지를 나란히 깔고는 바지게에 흙을 날라 만들던 섶다리 기억에 나도 야심찬 도전을 시작했는데 늘 완공을 눈앞에 둔 지가 어언 2년이다. 2년 동안 내내 완공을 앞두고 있었으니 집에 오는 손님들도 섶다리 안부 묻기를 중지했다. 피안의 세계는 멀고도 멀다.
계곡 폭 길이에 맞게 낙엽송을 잘랐지만 너무 무거워 옮길 수가 없었던 게 공사 지연의 첫 번째 원인이었다. 자그마치 6미터나 되는 통나무를 장비도 동원할 수 없는 산골에서 무슨 수로 옮기겠는가. 애써 마련한 낙엽송은 토막이 나 아궁이에서 화목으로 산화했다.
곧은 나무를 겨우 구하는가 싶으면 굵기가 약해서 위험했고 다릿발을 세우자니 장마가 지면 떠내려갈 것 같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찾은 곳이 계곡 좀 위쪽의 좁은 곳이었다. 조금 돌아서 다녀야 하는 곳이긴 했지만 4미터 폭이었다.
4개나 통나무를 마련해서 껍질을 벗겨 말리는 데 1년 걸렸다. 옛날 섶다리를 나름대로 업그레이드하여 반영구적으로 쓰겠다는 게 목표였다. 옛날 섶다리는 홍수에 떠내려가든지 나무가 썩어서 해마다 새로 만들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통나무를 바짝 말려서 양끝을 비닐로 싸고 통나무 위에도 비닐을 씌워서 섶나무를 깔면 될 것 같았다. 거기에 운치를 더한답시고 그네도 하나 매달 생각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계곡 위 그네에 올라앉아 책이라도 읽는 꿈은 발설하기조차 아까운 상상이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진 않았다. 다리 놓으려고 톱이니 도끼니 낫을 챙겨서 집을 나서면 200미터도 안되는 작업 장소까지 가는 데 한 시간이 걸릴 때도 있고 두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가는 길은 철 따라 다양한 장애물이 가로놓였다. 밭에 난 잡초도 뽑고 나물도 뜯고 고추가지도 묶고 언덕에 애기 손 모양을 하고 밤새 올라온 고사리도 꺾느라 톱질 한번 해보지 못하고 되돌아오기 일쑤였다.
한 이틀 시간을 내서 이번에는 꼭 완공하리라 일정을 잡아 놓으면 비가 와서 바짝 마른 통나무가 퉁퉁 불어 있기도 했다. 그렇게 올겨울을 맞았고 다시 여름 문턱에 왔지만 섶다리는 역시 완공직전 상태 그대로다. 이번주는 내내 비 소식이 없다하니 산골 날씨 변덕만 안 부리면 멋진 섶다리 하나가 저쪽 언덕으로 나를 이어 줄 것이라 믿는다.
<전희식 | 농부, ‘똥꽃’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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