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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노인들이 ‘누가 시켜서 그러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는 여의도순복음교회재단이 운영하는 한세대에 다니며 교회, 집, 학교만 오가던 숙맥이었다. 결혼해서도 얘 키우고, 플루트 레슨 하느라 시위 현장 한 번 간 적이 없다. 그런 그가 ‘가만히 있어라’란 말에 놀라 깬 것은 2009년 삼일교회 성추행 사건을 보고 나서다.
개신교 차세대 지도자로 꼽히던 전병욱 목사는 여신자 성추행 건으로 고발됐다. 교회 장로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실 일이니 가만히 있어라”라고 했다. 그도 ‘설마 우리 목사님이 그럴 리가 없다’고 믿었다. 피해자의 생생한 녹취록을 보기까지는 ‘설마’ 했다. 그러니 전 목사의 성추행 강도가 더 세진 것은 당연했다. 결국 전 목사는 당회실에서 구강성교를 한 사실이 폭로돼 담임직을 사임했다.
설마의 주술 속에 갇힌 게 김씨뿐이랴. 세월호 선원 15명 전원이 무슨 명령이나 받은 것처럼 승객들에겐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선 자기들만 일사불란하게 빠져나왔을 리 있으랴. 500여명이 온갖 방법을 다해 구조한다는데 설마 그 많은 사람을 다 죽게 내버려두랴. 그런 믿음으로 3일간 잠수부 한 명 선내에 진입하지 못하리라곤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한국전쟁 초기 ‘서울을 굳건히 사수하겠다’고 이승만 대통령이 방송할 때도 설마 대통령이 혼자 도망이야 갔으랴, 박정희 대통령이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젊은이 8명을 사형시켰을 때도, 설마 애먼 사람들을 잡기야 했으랴, 1997년 여권이 대통령 선거 직전에 북에 돈을 주고 판문점에서 총을 쏴달라고 했다는 주장이 나올 때도 입만 열면 국가안보를 내세우는 여권이 설마 그랬으랴, 이명박 대통령이 96만개의 일자리를 만든다며 4대강을 파헤칠 때도 설마 22조원이나 쏟아붓고 일자리 공약을 1%도 못 지키기야 했으랴, 국정원장까지 나서서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때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고 했을 때도 ‘책임 있는 이들이 설마 거짓말을 했으랴’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믿음이 배신당하지 않았기를 바랐지만 결과는 늘 반대였다.
에스엔에스의 등장으로 표층의 이면까지 추적하는 이들이 적잖게 늘었지만, 지난 대선 때도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여론조작에 나설 수 있었던 건 여지없이 낚싯밥을 무는 다중의 의심 없는 맹목성을 믿은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도 다른 모든 방송의 시청률을 합한 것보다 높은 시청률을 <한국방송>에 몰아준 건도 ‘설마 시청료는 국민이 내는데 그렇게 편파적이기야 하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다중은 늘 의심하지 않고 진상을 즉각 따져묻지 않은 채 속아주고 믿어주었다. 믿음이 깨지는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서다. 모래에 머리를 박고 현실을 부정하는 타조처럼 그렇게 거짓과 속임에 일조해왔다. 한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쁘지만, 두번 세번 네번 속으면 속는 사람이 바보다.
잘 속아주는 사이 곳곳에 지뢰가 깔렸다. 자고 나면 인재가 터지고 있다. 설마 내가 지뢰를 밟기야 하랴는 주문은 안전핀을 제거해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또 설마다. 고장과 비리로 얼룩진 원전이 터지는 날엔 나라가 결딴난다고 해도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더 당해야 설마의 주술에서 풀려날까.
전병욱 목사는 그 뒤 침묵하는 신자들과 장로들의 동조로 전별금 13억원까지 챙겼다. 곧이어 지난해엔 홍대새교회를 개척해 신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김환희씨가 세월호와 성폭행 건의 진상을 규명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나선 건 범죄자의 다음 표적은 내 자식이 될 수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 악마를 키우는 건 다중의 설마다. 이제 그 주술에서 풀려날 때도 됐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we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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