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
지난 주말 세월호 희생자 추모위령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에 다녀왔다. 세월호가 제주로 떠났던 인천연안여객터미널 바로 옆 친수공간이었다.
바다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평온했고, 갈매기들이 날아다녔으며 날씨는 뜨거웠다. 땡볕에 열린 추모행사가 끝나고 만신 김금화 선생과 함께한 진혼굿은 4시간 넘게 이어졌다. 고령의 선생은 좀 피곤해보였지만 만신다운 위엄으로 모두를 이끌었다.
내일, 그러니까 6월3일이면 49재라는 것도 알게 됐다. 만신은 이 49재는 국상이나 마찬가지니 그들 모두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부탁하셨다.
하지만 그 씻김굿을 하는 내내 반대편에서는 ‘렛잇고’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환상의 ‘불꽃선상축제’ 티켓을 사라는 안내 방송과 영화 <겨울왕국>의 음악이 울려퍼졌다. 처음에는 몰라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노래와 방송은 난데없이 툭툭 튀어나와 공기 중에 떠돌았다. 노래는 다섯 번 가까이 갑자기 흘러나오다 끊겼고, 홍보 방송은 횟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명랑하게 만신들의 말씀에 끼어들었다. 참다 못해 “지금 뭐 하시는 거냐” 항의하자 당당하게 짜증을 낸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벌써 많이들 왔다 가셨다며 꿈쩍도 안 한다. 마이크를 잡고 있던 분과 옥신각신하고 있자니 책임자로 보이는 분이 “세월호 때문에 계속 영업을 못 했다.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할 것 아니냐”고 한다. 자기들도 음악은 안 틀기로 했고, 충분히 협조하고 있다는 거다. “음악 트는 게 무슨 협조냐” 목소리가 높아지는 와중에 아이를 데리고 나왔던 어머니 한 분이 거들고 나선다. “놀러왔는데 저런 걸 하고 있으면 우리 애가 무서워하지 않느냐”는 항의다. 결국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대답을 듣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홍보 방송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돌아오는데 문득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5월 광주에서 살아남은 소녀는 6월의 분수대가 뿜어내는 눈부신 물줄기를 견딜 수 없어 날마다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건다. 얼마 전 나온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 구절 위에 한 장면을 더 올려놓자. 세월호 추모 행사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이 연행되던 지난 5월18일, 나는 광화문광장에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제34주년 기념 서울행사의 일환으로 전시 중인 다큐멘터리 사진과 백일장 수상작들을 지나쳐 광장 구석구석 빈틈없이 서 있는 경찰들 사이를 걸었고, 물이 뿜어져나오는 분수대 사이를 뛰어다니느라 홀딱 젖은 아이들의 신나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추모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금요일부터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을 다시 집어들었고 이 대목을 오래오래 곱씹었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잊었다는, 혹은 잊고 있다는 점에서 5월 광주와 세월호는 다르지 않다. 외면만큼 쉬운 게 없다고 하지만, 이건 외면이라기보다는 망각에 가깝다. 광주는 30년이 넘었지만 ‘세월호’는 한 달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이미 박제화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면 과장일까.
이미 수많은 대못이 유족들의 가슴에 박히지 않았는가. 더 이상 세월호가 5월 광주처럼 폄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할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테니까.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세월호의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상처받은 인간’ 대신 ‘회복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소설 <소년이 온다>를 권하고 싶다.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꽃 핀 쪽으로’ 당신을 잡아끌고 싶어서. 망각 대신 기억을, 체념 대신 행동을 약속하기 위해서.
<정지은 | 문화평론가>
내일, 그러니까 6월3일이면 49재라는 것도 알게 됐다. 만신은 이 49재는 국상이나 마찬가지니 그들 모두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고 부탁하셨다.
하지만 그 씻김굿을 하는 내내 반대편에서는 ‘렛잇고’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환상의 ‘불꽃선상축제’ 티켓을 사라는 안내 방송과 영화 <겨울왕국>의 음악이 울려퍼졌다. 처음에는 몰라서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노래와 방송은 난데없이 툭툭 튀어나와 공기 중에 떠돌았다. 노래는 다섯 번 가까이 갑자기 흘러나오다 끊겼고, 홍보 방송은 횟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명랑하게 만신들의 말씀에 끼어들었다. 참다 못해 “지금 뭐 하시는 거냐” 항의하자 당당하게 짜증을 낸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벌써 많이들 왔다 가셨다며 꿈쩍도 안 한다. 마이크를 잡고 있던 분과 옥신각신하고 있자니 책임자로 보이는 분이 “세월호 때문에 계속 영업을 못 했다. 직원들 월급은 줘야 할 것 아니냐”고 한다. 자기들도 음악은 안 틀기로 했고, 충분히 협조하고 있다는 거다. “음악 트는 게 무슨 협조냐” 목소리가 높아지는 와중에 아이를 데리고 나왔던 어머니 한 분이 거들고 나선다. “놀러왔는데 저런 걸 하고 있으면 우리 애가 무서워하지 않느냐”는 항의다. 결국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대답을 듣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홍보 방송은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돌아오는데 문득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5월 광주에서 살아남은 소녀는 6월의 분수대가 뿜어내는 눈부신 물줄기를 견딜 수 없어 날마다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건다. 얼마 전 나온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 구절 위에 한 장면을 더 올려놓자. 세월호 추모 행사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이 연행되던 지난 5월18일, 나는 광화문광장에 있었다. 5·18 민주화운동 제34주년 기념 서울행사의 일환으로 전시 중인 다큐멘터리 사진과 백일장 수상작들을 지나쳐 광장 구석구석 빈틈없이 서 있는 경찰들 사이를 걸었고, 물이 뿜어져나오는 분수대 사이를 뛰어다니느라 홀딱 젖은 아이들의 신나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추모행사에 참여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금요일부터 읽기 시작한 이 소설을 다시 집어들었고 이 대목을 오래오래 곱씹었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잊었다는, 혹은 잊고 있다는 점에서 5월 광주와 세월호는 다르지 않다. 외면만큼 쉬운 게 없다고 하지만, 이건 외면이라기보다는 망각에 가깝다. 광주는 30년이 넘었지만 ‘세월호’는 한 달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이미 박제화되고 있는 느낌이 든다면 과장일까.
이미 수많은 대못이 유족들의 가슴에 박히지 않았는가. 더 이상 세월호가 5월 광주처럼 폄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할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테니까.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세월호의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상처받은 인간’ 대신 ‘회복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소설 <소년이 온다>를 권하고 싶다.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꽃 핀 쪽으로’ 당신을 잡아끌고 싶어서. 망각 대신 기억을, 체념 대신 행동을 약속하기 위해서.
<정지은 | 문화평론가>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