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어여 어서 올라오세요

대청마루(자유게시판)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세상읽기] 사치품과 명품

뉴스언론 전우용 | 역사학자............... 조회 수 448 추천 수 0 2014.06.11 11:50:05
.........
[세상읽기]사치품과 명품
최근 10~20년 사이에 우리의 일상 언어생활에서 ‘사치품’보다 더 빠르게 자취를 감춘 단어도 달리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국어사전이 “분수에 지나치거나 생활의 필요 정도에 넘치는 물품”으로 정의한 이 물건들의 종류나 총량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물건들을 지칭하는 이름이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이라는 뜻의 ‘명품’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경향신문
10여년 전 ‘신귀족주의’를 표방하고 발행된 잡지를 처음 보았을 때, 상당한 위화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이 잡지는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와 강남의 부유층만을 독자로 한정한다는 취지를 공공연히 밝혔는데, 발행사가 공언한 대로 이 잡지의 광고면을 장식한 상품들은 싸도 수백만원, 비싸면 수억원에 달하는 고가의 물건들이었다. 평범한 서민이라면 꿈에서도 가져 볼 엄두를 내지 못할 상품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전신을 드러내고 자기를 가져 줄 ‘귀족 고객’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어쩔 수 없는 일말의 분노와 일말의 자괴감이 일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잡지와 이런 광고에서 이런 감정을 표출하면 촌스럽다는 조롱을 받는다. 은행이든 카페든 시간을 때워야 하는 장소들에는 어김없이 이런 잡지들이 비치되어 잠시의 ‘무료한 시간’을 파고든다. 광고면 속의 화려하고 정교하며 값비싼 상품들은 그저 심심해서 잡지를 집어 들었을 뿐인 우연한 독자들에게 속삭인다. 나를 가지라고. 이런 것 하나쯤 가져도 괜찮다고. 명품 가방이나 명품 시계 하나 없이 어떻게 사회생활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굳이 유교의 ‘청빈주의’나 프로테스탄트의 ‘절검주의’가 아니더라도, 인류는 이제껏 사치를 죄의 일종으로 분류해 왔다. 남보다 잘나 보이고 싶은 욕망, 무리들 속에서 자신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고 싶은 욕망이야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지만, 그 욕망이 공동체의 통일성과 유대감을 해치는 정도로까지 표현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서는 개체의 욕망을 절제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고 유지해 온 인간적 가치관이었다. 사치품이 명품으로 이름을 바꾼 최근의 현상은, 이 오래된 가치가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의 표현일 뿐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생활 물자의 절대적 결핍 상태에서 해방된 국가들에서, 자본은 시장 확대를 위해 대중의 소비 욕망을 자극하는 방법들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왔는데, 그 핵심은 개인적 욕망의 실현에 드리워진 죄의 그늘을 걷어내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소비 능력을 마음껏 과시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 미덕인 사회를 만드는 데에 힘을 기울였고, 결국 성공했다. 지금은 능력껏 벌어 마음껏 소비하는 데에 남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는 시대다.

그런데 사회 전체가 개인적 욕망의 실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달려옴에 따라 공동체를 지탱해 왔던 배려, 공감, 절제 등의 감성, 즉 ‘양심’이 사라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 보니 우리 사회가 기실은 인간과 짐승으로 나뉘어 있더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 참사로 인해 자기들의 기득권이 흔들릴까 두려워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이미 인간의 말이 아니었다. 그들의 말에서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티끌만한 동정심이나 연대감도 찾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대형 교회 목사, 대학 교수, 국회의원 등 ‘성공한’ 사람이자 이 사회의 ‘지도층’이었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가 다른 시대이길 진정으로 바란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그동안 무한정 풀어왔던 ‘욕망에 대한 규제’를 다시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그저 명품으로 제 몸을 감싸고 명품 스펙을 쌓는 데에만 몰두하는 문화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미래의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치스러운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전우용 | 역사학자>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589 뉴스언론 [경제와 세상]한국 보수의 경제사관 홍기빈 소장 2014-06-19 454
9588 뉴스언론 [녹색세상] 나쁜 꿈 황윤 영화감독 2014-06-19 471
9587 뉴스언론 [김상조의 경제시평] 삼성에 보내는 경고와 충고 김상조 소장 2014-06-19 601
9586 뉴스언론 [세상읽기] 망가진 국가, 살아 있는 국민 김윤철 교수 2014-06-19 352
9585 무엇이든 [토마스주남=거짓선지자] 거짓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 박노아 2014-06-18 446
9584 뉴스언론 [한기호의 다독다독]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질까 한기호 2014-06-16 421
9583 뉴스언론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5) 한글 홍윤표 2014-06-16 1039
9582 뉴스언론 [여적]하나님 김석종 논설위원 2014-06-16 384
9581 뉴스언론 [사설]1천만명이 월급 139만원도 못 받는 한국사회 경향신문 2014-06-14 424
9580 뉴스언론 [양극화, 문제는 분배다]소득불평등, 1970년대 후반 가장 컸다… 오창민·박병률 기자 2014-06-13 719
9579 뉴스언론 [양극화, 문제는 분배다]상·하 계층 자녀 대학 진학률 24%P 차이… [1] 임지선 기자 2014-06-13 845
9578 뉴스언론 [양극화, 문제는 분배다]월 소득 139만원 미만 1000만명 육박… 김경학 기자 2014-06-13 497
9577 뉴스언론 [시론] 정부의 ‘의료법 위반’ 어디에 고발하나 우석균 | 보건의료단체연합 2014-06-13 432
9576 자료공유 [연세중앙교회] 베리칩은 666이 아니야! (by 윤석전) 박노아 2014-06-13 1190
9575 뉴스언론 [양권모칼럼] ‘바보 김부겸’을 위하여 양권모 논설위원 2014-06-13 654
9574 뉴스언론 [생태경제 이야기] 친환경 급식의 위력 우석훈 | 영화기획자 2014-06-13 315
9573 광고알림 미디어를 통한 사단의 문화전략과 전도스관회복 세미나 문화 2014-06-12 476
9572 뉴스언론 [경제와 세상] 경제학자들에게 보내는 격문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2014-06-12 564
9571 뉴스언론 [이대근칼럼] 박원순·조희연의 서울 모델을 만들자 이대근 논설위원 2014-06-12 477
9570 뉴스언론 [녹색세상] 물러설 수 없는 ‘자동차 탄소전쟁’ 안병옥 소장 2014-06-12 449
9569 뉴스언론 [기고]포스트 세월호 한국 이성청 교수 2014-06-12 559
9568 뉴스언론 [박범신의 논산일기] 나쁜 권력의 습성 박범신 | 작가 2014-06-12 533
9567 무엇이든 감사합니다. 이롬맨 2014-06-11 389
9566 뉴스언론 [정동칼럼] 미국이 MD를 묻는다 최종건 | 연세대 2014-06-11 505
9565 뉴스언론 [기고]쌀 수입 허가제 폐지와 인권 경제 송기호 | 변호사 2014-06-11 517
» 뉴스언론 [세상읽기] 사치품과 명품 전우용 | 역사학자 2014-06-11 448
9563 뉴스언론 [경향마당]온실가스 감축, 한국만 호들갑 떠는 걸까 유제철 | 환경부 국제협력관 2014-06-11 532
9562 광고알림 6월KCP 영성훈련 학교(Course Of Spritual training: COST): 사람의 원축복-... 밀알 2014-06-09 447
9561 뉴스언론 [양극화, 문제는 분배다]환란 이후 자산·소득 불평등 악화 오창민 기자 2014-06-09 609
9560 뉴스언론 [양극화, 문제는 분배다] 쪽방촌 주민은 쉼터서 끼니.... 김경학 기자 2014-06-09 744
9559 뉴스언론 소득 양극화, 임계점에 다다르다 오창민 기자 2014-06-09 474
9558 뉴스언론 [여적] 서울대 26동 사건 신동호 논설위원 2014-06-08 436
9557 뉴스언론 [이택광의 왜?] ‘미래에서 온 유령’이 남긴 과제 이택광 | 경희대 교수 2014-06-08 494
9556 뉴스언론 [기자 칼럼] 눈물, 진짜와 가짜 강현석 전국사회부 기자 2014-06-08 715
9555 뉴스언론 [뒤집어 보는 인터넷세상](21) 인터넷 세상 사전 백욱인 |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2014-06-08 664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