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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포스트 세월호 한국

뉴스언론 이성청 교수............... 조회 수 559 추천 수 0 2014.06.12 11: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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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포스트 세월호 한국

 

시대를 규정하고 특징짓는 방식은 다양하겠지만 미국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변화를 2차 세계대전 혹은 베트남전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축으로 표현하곤 한다. 특히 9·11 테러는 국민, 국가, 세계를 향한 자신들의 시각과 태도가 어떻게 급변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역사적 이정표로 활용되고 있다.

경향신문
필자는 이방인으로서 ‘9·11 이전의 미국’과 ‘9·11 이후의 미국’의 차이를 체험했다. 실제로 사람과 세상을 향한 미국인들의 관점이, 생활양식이, 그리고 언어가 변했다. 모든 한국인을 단번에 무력하고 참담하게 만든 세월호 참사 또한 여러모로 미국의 9·11 재난과 닮아 ‘포스트 세월호 한국’(Post Sewol Korea)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패러다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9·11과 세월호 두 사건이 가져온 가장 큰 공통점이자 악영향은 자존감의 몰락이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 종식, 그리고 전후 미국 경제의 팽창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현실로 만들었고, 미국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국가를 초강대국으로 세계 경찰국가로 그리고 서구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믿게 만들었다.

그러나 9·11이 그 자존감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세월호는 세계 12위 경제대국, 세계 8위 군사강국, 세계 최고의 고기술 혁신국가, 한류 등의 현란한 수식어로 잔뜩 달아오른 우리의 자존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은 적은 있으나 적국은 존재하지 않는 테러리즘이라는 모호한 실체와 싸우며 국론 분열, 정부 불신이라는 내부의 적들과 대적해야 했고 세월호는 급성장과 번영에만 집중했던 우리들로 하여금 잊고 살았지만 삶의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던 하류 기업정신, 하류 관료, 하류 직업윤리를 발견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자신들의 얼굴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닮은꼴은 ‘포스트 세월호 한국’이 ‘포스트 9·11 미국’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의식과 삶에 현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앞으로 우리들의 주요 관심을 대변하는 새로운 패권적 용어들이 등장할 것이고 사회 전반에서 그것의 정의와 실천에 대한 도전, 노력, 그리고 투쟁과 갈등이 뒤따를 것이다.

포스트 9·11 미국인의 뇌리에는 원하든 원치 않든 테러리즘, 근본주의 이슬람, 알카에다, 그라운드 제로, 악의 축과 같은 신용어들이 정치·경제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아젠다와 언어를 장악했다. ‘포스트 세월호 한국’도 신용어들의 범람과 그로 인한 집단의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구조, 안전, 재난관리, 그리고 ‘움직이지 말라’ 등의 언어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우리 의식에 큰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세월호 참사 학습효과로 ‘확실히 일어날 일’에 관해서만 대비하는 중진국적 사고에서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까지 대비하는 선진국적 국민의식을 가져야 한다. 또한 자유와 규제에 관한 정치·경제학적 담론이 이론적 지평에서 일상의 지평으로 내려와 우리 국민 모두가 피부로 느끼며 고민하고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개인적 자유를 신성하고 불가침한 것으로 여기고 살았던 미국인들도 9·11 재난 앞에서 국가의 규제와 간섭에 인내하고 용납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애국법안을 통해 국가로 하여금 개인의 정보와 사생활을 포괄적으로 감찰할 수 있는 지위를 부여했고 강화된 공항 보안검색으로 인한 불편함은 평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9·11 요금이라는 생뚱맞은 추가 비용도 넉넉히 수긍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얼마만큼의 자유를 양보할 수 있고 얼마만큼의 육체적 불편함과 경제적 비용을 감내할 수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규제 없는 사회는 구성원의 성숙한 시민성과 확고한 프로페셔널리즘 그리고 높은 도덕성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자유와 규제의 균형은 앞으로 우리 국민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될 것이다.

세월호가 국민에게 안겨준 국가에 대한 불신을 일소하기 위해 정부는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포스트 9·11 미국은 안팎으로 만연한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새로운 G.I. 법안은 군인들의 교육 보조금을 향상시켰고 2010년에는 40억달러를 그라운드 제로 구조대원들의 보건비로 할당했다. 미국은 조직의 질적·양적 성장뿐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 또한 돌아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대부분의 세월호 선원들이 계약직이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낮은 직업윤리나 책임감과 무관치 않다고 봐야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변화를 도모해야 할 부분이 이미 많이 드러난 상태다. 차가운 바다 밑에서 처절히 그리고 쓸쓸히 생을 마친 우리 아이들 그리고 이웃을 생각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죄책감에 울었던 국민들은 보다 나은, 보다 안전한 사회로 도약할 준비가 됐다고 본다. 국가 아니, 정부는 ‘포스트 세월호 한국’에 관해 준비가 되었는지 묻고 싶다.

<이성청 | 미국 핀들레이대 교수·종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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