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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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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개각·청와대 개편으로 바닥 친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국가개조’의 깃발로 정국 주도권을 쥐려 할 것이다. 새누리당은 당대표 선출로 활력을 되찾으려 할 것이다. 그럼 야당은? 통합, 세월호 참사 심판론, 총리 후보 낙마, 야권 단일화와 같이 유리한 여건에도 6·4 지방선거에서 이기지 못한 야당. 1년3개월간 박근혜 정권이 실정을 거듭하는데도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야당은 무슨 대책을 내놓았을까. 없다.
설령 극우 성향의 문창극 총리 지명이 예고하는 개각·청와대 개편과 국정 개혁이 실패하고 여권이 자중지란하는 행운이 또 온다 해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창극 지명과 같은 실수가 안겨주는 반사이익으로는 야당을 재건할 수 없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야당은 또 박 대통령을 좇고 있다. 이런 실망스러운 상황을 지켜볼수록 비관주의만 고개를 든다. 시선을 그쪽에 두지 말고 다른 곳으로 돌려보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서울. 서울시민은 서울시장, 구청장, 시의회, 교육감을 야당과 진보세력에 맡겼다. 야당과 진보세력은 서울에서 다수당이자 집권당이다. 여기서는 복지·경제민주화를 박근혜 정권에 의탁할 필요없이 직접 해볼 수 있다.
그동안 시장 만능·물질주의·양극화로 죽어가는 한국사회를 복지·연대·평등이 있는 공동체로 바꾸려는 많은 노력이 있었다. 유럽 모델의 도입을 고민하기도 했다. 시민사회와 전문가 집단은 수없이 대안 보고서·자료집을 냈다. 그런 노력으로 새 공동체 논의가 활성화되고 복지가 지배담론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여야 할 것 없이 그런 가치를 정강·정책에 반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추상적 이론, 외국 사례, 듣기 좋은 말과 글이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게 아니었고, 그 때문에 금방 잊혀지곤 했다. 그런데 마침 시장, 시의회, 구청장, 교육감이 얼마나 상호 협력하느냐에 따라 서울이라는 살아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박원순 시장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는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않고, 시민과 소통하는 능력이 있다. 아이디어도 풍부하다. 그러나 박원순은 행정가 이상이 되어야 한다. 행정가는 당면한 현안을 잘 알려진 수단을 통해 주어진 과제를 처리하는 이다. 반면 정치가는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시민을 설득할 수 있는 비전을 지닌 존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때 행정가로서 능력을 발휘했지만 좋은 정치가는 되지 못했다. 서울을 이 사회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건 정치가의 덕목이 요구되는 일이다. 박원순에게는 그게 부족하다. 그는 점심시간 식당 앞 주차 허용을 최고 업적으로 자랑하곤 했다. 그는 그런 성공사례를 수없이 갖고 있다.
하지만 서울모델은 그런 작은 조각들을 모아 놓는 게 아니라, 하나의 가치를 세우고 그걸 중심으로 서울 전체를 재구성한 결과물 같은, 단일 이미지를 지녀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에 차이를 두고 우선할 것, 나중에 할 것을 구별하고, 집중할 것은 집중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교육 문제는 주목도가 높기 때문에 조금만 개선해도 파급 효과가 크다. 김상곤 교육감의 무상급식이 일으킨 거대한 파도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조희연 교육감이 많이 바꾸려 욕심 낼 것 없다. 정확히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선 교육 개혁 하나만 성공해도 집권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박원순·조희연, 구청장이 협력해 통합된 계획을 짜고 야당과 진보세력은 자원을 서울에 집중해보자. 새정치연합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서울은 바꿀 수 있다. 그 서울로 박근혜의 나라와 대결하는 것이다. 서울 대 정부, 박원순 대 박근혜, 아니 박원순·조희연 대 박근혜 경쟁 구도를 만들자.
누가 소통 더 잘하는지. 누가 복지 더 잘하는지, 누가 양극화 해결 더 잘하는지, 누가 교육 문제 더 잘 푸는지 겨루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로 세상의 시선을 붙잡아 보자.
야당과 진보세력이 만일 실력이 있다면, 집권할 때 잘해보겠다고 미루지 말고 지금 여기서 보여줘야 한다. 다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고수는 한 획을 그어도, 벽돌 한 장을 쌓아도, 한 수를 놓아도 솜씨를 드러낸다. 만일 그렇게만 한다면 야당·진보세력을 보는 세상의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서울을 바꾸는 실력을 본 시민들이 나라도 맡길 것이다. 왜 서울을 집권 비전으로 제시하지 않는가.
<이대근 논설위원>
그동안 시장 만능·물질주의·양극화로 죽어가는 한국사회를 복지·연대·평등이 있는 공동체로 바꾸려는 많은 노력이 있었다. 유럽 모델의 도입을 고민하기도 했다. 시민사회와 전문가 집단은 수없이 대안 보고서·자료집을 냈다. 그런 노력으로 새 공동체 논의가 활성화되고 복지가 지배담론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여야 할 것 없이 그런 가치를 정강·정책에 반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추상적 이론, 외국 사례, 듣기 좋은 말과 글이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게 아니었고, 그 때문에 금방 잊혀지곤 했다. 그런데 마침 시장, 시의회, 구청장, 교육감이 얼마나 상호 협력하느냐에 따라 서울이라는 살아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박원순 시장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는 작은 일에도 소홀하지 않고, 시민과 소통하는 능력이 있다. 아이디어도 풍부하다. 그러나 박원순은 행정가 이상이 되어야 한다. 행정가는 당면한 현안을 잘 알려진 수단을 통해 주어진 과제를 처리하는 이다. 반면 정치가는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시민을 설득할 수 있는 비전을 지닌 존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때 행정가로서 능력을 발휘했지만 좋은 정치가는 되지 못했다. 서울을 이 사회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건 정치가의 덕목이 요구되는 일이다. 박원순에게는 그게 부족하다. 그는 점심시간 식당 앞 주차 허용을 최고 업적으로 자랑하곤 했다. 그는 그런 성공사례를 수없이 갖고 있다.
하지만 서울모델은 그런 작은 조각들을 모아 놓는 게 아니라, 하나의 가치를 세우고 그걸 중심으로 서울 전체를 재구성한 결과물 같은, 단일 이미지를 지녀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에 차이를 두고 우선할 것, 나중에 할 것을 구별하고, 집중할 것은 집중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교육 문제는 주목도가 높기 때문에 조금만 개선해도 파급 효과가 크다. 김상곤 교육감의 무상급식이 일으킨 거대한 파도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조희연 교육감이 많이 바꾸려 욕심 낼 것 없다. 정확히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에선 교육 개혁 하나만 성공해도 집권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박원순·조희연, 구청장이 협력해 통합된 계획을 짜고 야당과 진보세력은 자원을 서울에 집중해보자. 새정치연합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서울은 바꿀 수 있다. 그 서울로 박근혜의 나라와 대결하는 것이다. 서울 대 정부, 박원순 대 박근혜, 아니 박원순·조희연 대 박근혜 경쟁 구도를 만들자.
누가 소통 더 잘하는지. 누가 복지 더 잘하는지, 누가 양극화 해결 더 잘하는지, 누가 교육 문제 더 잘 푸는지 겨루는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로 세상의 시선을 붙잡아 보자.
야당과 진보세력이 만일 실력이 있다면, 집권할 때 잘해보겠다고 미루지 말고 지금 여기서 보여줘야 한다. 다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고수는 한 획을 그어도, 벽돌 한 장을 쌓아도, 한 수를 놓아도 솜씨를 드러낸다. 만일 그렇게만 한다면 야당·진보세력을 보는 세상의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서울을 바꾸는 실력을 본 시민들이 나라도 맡길 것이다. 왜 서울을 집권 비전으로 제시하지 않는가.
<이대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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