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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동업자들은 친목을 위해 모이더라도 항상 음모와 술수로 끝을 맺는다는 식의 얘기를 한 바 있다. 굳이 그래서는 아니지만, 가능하면 동업자인 경제학자들에 대한 비판은 삼가왔다. 누워서 침 뱉기일 수 있으므로. 그런데 오늘은 작정하고 경제학자들, 특히 한국의 경제학자들을 비판하고자 한다.
경제학은 인접 사회과학에 비해서도 좌파건 우파건 기본적으로 자유경쟁을 좋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일까? 서울 시내에 캠퍼스가 있는, 요컨대 우리가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경쟁 하나는 잘 통과해서(한국에서 그것은 시험을 잘 친다는 것과 동의어이며, 많은 이들의 오해와는 달리 “공부를 잘한다”는 것과는 동의어가 아니다.) 그 자리까지 온 사람들이다. 아버지 ‘빽으로’ 서른 살에 교수나 시의원이 되는 ‘함량 미달’은 별로 없다는 뜻이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대학은 스카이(SKY)를 나오고 대학원은 미국의 연구중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들이다. 그렇다면 IMF나 미국경제학계에서조차 불평등의 귀환, 심지어는 마르크스의 귀환이 이슈가 되는 작금의 시점에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터넷을 사흘만 들여다보지 않아도 따라 잡기 힘들 만큼 사건사고가 무궁무진하게 일어나고 서구 이론으로는 도무지 설명조차 되지 않는 현상들이 앞을 다투듯 생겨나는 이 사회과학적 연구주제의 보고인 한반도의 남쪽에서.
먼저 한국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석학’들이 계신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분들은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한 것을 평생의 훈장으로 여기면서 ‘석학’이 된 뒤엔 철학책 한 권 안 읽는 분들이다.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기 마련이므로, 그렇지 않은 분들께서는 부디 용서하시길!) 그러고는 “잃은 것은 예술이요,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라 했던 누군가의 말처럼이나, 평균적인 한국 경제학자보다 훨씬 오른쪽에 서서 권력을 위한 칼춤을 춘다. 얼마 전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마친 뒤, 나름 충격적인 질문을 받았다. 왜 경제학자들은 모두 성장지상론자이며 시장만능주의자인가? 그러나 사실 그 질문자의 시야에 들어온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이 부류의 분들이다. 서글픈 것은 바로 그분들이 ‘석학’으로만 머물면 좋으련만, 장관에서부터 국책연구원장까지 중요한 자리는 다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인류역사가 늘 그러하였듯이, 권력은 결국 인정욕구가 강한 이들의 몫일 따름이므로. 더 나쁜 것은 정권이 바뀌면 ‘실세’들은 힘을 잃어도 이분들은 경제전문가연하면서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좌파”정권이라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조차 일부 “굴러온 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제관련 포스트는 “박힌 돌”들의 차지였다.
그렇다면 우리의 젊은 경제학자들은 어떠한가? SSCI니 뭐니 하는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싣느라 여념이 없다. 학계에서 인정도 받아야 하고, 어쩌면 더 중요한 동기일 수도 있는데 어중간한 돈벌이보다는 논문 써서 받는 성과급이 현실적으로 훨씬 더 생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주 냉소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암환자의 왼쪽 두 번째 발가락에 생긴 티눈에 관한 연구로 논문을 쓰는 의사와도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러하므로 학문의 모국 격인 미국에서 활동하는 경제학자들보다도 오히려 한국의 문제를 잘 알지 못한다. 경제를 공부하는 경제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을 공부하는 경제학학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예전에 은사님 한 분이 즐겨 하시던 말씀이다. 슬프게도 그분 또한 경제학학자였다.)
그러하므로 대중이,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학생 제자들이 피부로 느끼되 이론으로는 재현하지 못하는 현실을 풀어주어야 할 막중한 역할을 경제학자들은 방기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외친다. 경제학자들이여! “보수꼴통”이라 욕을 먹어도 좋다. 거리로 뛰쳐나와, 경제학자만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엄청난 무게로 다가오는 이 현실을 연구하고 발언하자. 유명한 말을 비틀어 인용하자면, 경제는 ‘석학’들에게만 맡겨두기엔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먼저 한국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석학’들이 계신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분들은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한 것을 평생의 훈장으로 여기면서 ‘석학’이 된 뒤엔 철학책 한 권 안 읽는 분들이다.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기 마련이므로, 그렇지 않은 분들께서는 부디 용서하시길!) 그러고는 “잃은 것은 예술이요,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라 했던 누군가의 말처럼이나, 평균적인 한국 경제학자보다 훨씬 오른쪽에 서서 권력을 위한 칼춤을 춘다. 얼마 전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마친 뒤, 나름 충격적인 질문을 받았다. 왜 경제학자들은 모두 성장지상론자이며 시장만능주의자인가? 그러나 사실 그 질문자의 시야에 들어온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이 부류의 분들이다. 서글픈 것은 바로 그분들이 ‘석학’으로만 머물면 좋으련만, 장관에서부터 국책연구원장까지 중요한 자리는 다 차지한다는 사실이다. 인류역사가 늘 그러하였듯이, 권력은 결국 인정욕구가 강한 이들의 몫일 따름이므로. 더 나쁜 것은 정권이 바뀌면 ‘실세’들은 힘을 잃어도 이분들은 경제전문가연하면서 목숨을 부지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좌파”정권이라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조차 일부 “굴러온 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제관련 포스트는 “박힌 돌”들의 차지였다.
그렇다면 우리의 젊은 경제학자들은 어떠한가? SSCI니 뭐니 하는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싣느라 여념이 없다. 학계에서 인정도 받아야 하고, 어쩌면 더 중요한 동기일 수도 있는데 어중간한 돈벌이보다는 논문 써서 받는 성과급이 현실적으로 훨씬 더 생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주 냉소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암환자의 왼쪽 두 번째 발가락에 생긴 티눈에 관한 연구로 논문을 쓰는 의사와도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러하므로 학문의 모국 격인 미국에서 활동하는 경제학자들보다도 오히려 한국의 문제를 잘 알지 못한다. 경제를 공부하는 경제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을 공부하는 경제학학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예전에 은사님 한 분이 즐겨 하시던 말씀이다. 슬프게도 그분 또한 경제학학자였다.)
그러하므로 대중이,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학생 제자들이 피부로 느끼되 이론으로는 재현하지 못하는 현실을 풀어주어야 할 막중한 역할을 경제학자들은 방기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외친다. 경제학자들이여! “보수꼴통”이라 욕을 먹어도 좋다. 거리로 뛰쳐나와, 경제학자만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엄청난 무게로 다가오는 이 현실을 연구하고 발언하자. 유명한 말을 비틀어 인용하자면, 경제는 ‘석학’들에게만 맡겨두기엔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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