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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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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서울 종로 국회의원 노무현은 부산 출마를 말리는 측근에게 격정을 토로한다. “잘하면 종로에서 한 번 더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종로에서 더 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누군가는 희생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비록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부산에서 출마하는 것이 이 지독한 지역주의 정치를 청산하는 데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앞장서야 합니다. 모두가 벽만 바라보고 멈칫멈칫하고 있지, 나서는 사람이 없잖습니까. 내가 나서려 합니다.”
그리고 십수년이 흐르고 국회의원 4선 고지가 떼어 놓은 당상인 경기 군포를 버리고 지역주의 괴물과 싸우겠다며 ‘새누리당에 해가 지지 않는 땅’ 대구로 뛰어든 김부겸은 말한다. “제정구·노무현·원혜영 등의 선배들과 20년 전에 세웠던 통추, 그 막내로 내가 남았는데 내 세대에서 적어도 지역주의 문제에 대해 균열을 내지 않으면 앞으로 이걸 정치적 화두로 삼는 사람도 없을 거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꼭 풀어야 할 문제다. 그나마 정치권에 있는 내가, 대구 사람인 내가 마지막으로 몸을 바쳐보겠다는 거다. 나마저 이런 도전 안 하면 지역주의 문제는 아무도 깨지 못하는 현실이 돼버린다.”
한국 정치의 최대 난제는 여전히 지역주의 타파다.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지역구도를 허물고자 했지만 이뤄내지 못했다. 일찍이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국민정당을 만들겠다는 꿈이 뭉친 것이 1995년 결성된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이다. 통추는 진즉 사라졌으나 통추의 꿈은 살아 있다. ‘바보 노무현’에 이어 ‘바보 김부겸’이 살려낸 꿈이다.
대구시장 선거, 김부겸의 두번째 도전도 패배로 끝났다. 지난 30년 동안 야당 후보의 당선을 한번도 허용하지 않은 대구에서 ‘기호 2번 김부겸’은 애당초 무모한,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의 도전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바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눈물겨운 ‘벽치기 유세’로 치른 19대 총선(대구 수성갑)에서 40.42%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서는 40.33%를 득표했다. (무소속도 아닌) 야당 간판을 전면에 내걸고 대구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시장선거에서 이만큼 높은 득표율을 올린 것은 처음이다. 선거 환경을 감안하면 단순 숫자의 무게를 뛰어넘는다. 광역의원 후보를 한 명도 내지 못하는 허약한 새정치연합의 토대, 대구에서는 성역이나 다름없는 ‘박근혜의 눈물’ 속에서 일군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대구 전체에서 야권으로 분류되는 기초의원이 20명 이상 당선되는 “기적 같은” 풀뿌리 진출도 견인했다.
선거는 승리의 기록이다. 아름다운 패배도 결국은 패배다. 아름다움에 대한 주목은 잠시이고 패배의 잊혀짐이 강렬할 것이다. 더욱이 지역구도가 강화될수록 정치적 기득권이 공고해지는 이들에게 지역주의를 깨부수려는 ‘바보 정치’는 불편하고도 위험한 존재다. 이에 대한 견제와 폄하가 끈질길 터이다.
하지만 견고한 지역주의의 벽에 부딪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계속되는 김부겸의 무한도전은 여느 승리보다 소중한 성취로 기억되어야 한다. 수십년간 고착된 지역주의를 단박에 깨뜨릴 수는 없다. 온몸이 부서져라 도전하는 이들의 분루와 땀이 쌓여야 지역주의에 균열이 나고 변화가 생긴다. 노무현과 김정길 등이 그렇게 오랫동안 문을 두드린 결과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목도한 부산의 변화다. 야권 무소속 후보가 부산시장 선거에서 얻은 49.3%의 득표는 저절로 나온 게 아니다.
정치 인생의 마지막을 지역주의 해소 싸움에 두겠다는 김부겸은 “정치는 대구에서 끝을 낸다”고 스스로를 묶어 세운다. 재·보선이나 수도권 전출을 기웃대지 않고, 계속해서 “온몸을 던져” 대구의 지역주의 벽을 깨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2년 뒤 총선에서의 삼세번 도전도 또다시 패배를 예비하는 것일 수 있다. 애초 패배와 희생을 감수하며 사지로 뛰어든 ‘바보 정치’에서 승패는 부차적인 것이다. 지역구도 타파의 물꼬를 트는 마중물, 지역주의에 함몰해 있는 한국 정치를 격발시키는 탄환의 역할이 주어진 몫이다. 김부겸의 정치적 스승인 고 제정구 전 의원은 특유의 정치론을 갈파했다. “정치는 걸레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은 뛰어들어 더러워지더라도 그만큼 세상이 조금씩 닦인다면 그 각오를 하고 덤비는 게 정치다.” 2년 새 두 차례의 선거 패배, 자욱한 상흔과 얼룩을 짊어진 채 다시 거대한 지역주의 성채를 향해 돌진을 시작한 ‘바보 김부겸’을 응원한다.
<양권모 논설위원>
한국 정치의 최대 난제는 여전히 지역주의 타파다.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지역구도를 허물고자 했지만 이뤄내지 못했다. 일찍이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국민정당을 만들겠다는 꿈이 뭉친 것이 1995년 결성된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이다. 통추는 진즉 사라졌으나 통추의 꿈은 살아 있다. ‘바보 노무현’에 이어 ‘바보 김부겸’이 살려낸 꿈이다.
대구시장 선거, 김부겸의 두번째 도전도 패배로 끝났다. 지난 30년 동안 야당 후보의 당선을 한번도 허용하지 않은 대구에서 ‘기호 2번 김부겸’은 애당초 무모한, 계란으로 바위치기 격의 도전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바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눈물겨운 ‘벽치기 유세’로 치른 19대 총선(대구 수성갑)에서 40.42%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서는 40.33%를 득표했다. (무소속도 아닌) 야당 간판을 전면에 내걸고 대구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한 시장선거에서 이만큼 높은 득표율을 올린 것은 처음이다. 선거 환경을 감안하면 단순 숫자의 무게를 뛰어넘는다. 광역의원 후보를 한 명도 내지 못하는 허약한 새정치연합의 토대, 대구에서는 성역이나 다름없는 ‘박근혜의 눈물’ 속에서 일군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대구 전체에서 야권으로 분류되는 기초의원이 20명 이상 당선되는 “기적 같은” 풀뿌리 진출도 견인했다.
선거는 승리의 기록이다. 아름다운 패배도 결국은 패배다. 아름다움에 대한 주목은 잠시이고 패배의 잊혀짐이 강렬할 것이다. 더욱이 지역구도가 강화될수록 정치적 기득권이 공고해지는 이들에게 지역주의를 깨부수려는 ‘바보 정치’는 불편하고도 위험한 존재다. 이에 대한 견제와 폄하가 끈질길 터이다.
하지만 견고한 지역주의의 벽에 부딪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계속되는 김부겸의 무한도전은 여느 승리보다 소중한 성취로 기억되어야 한다. 수십년간 고착된 지역주의를 단박에 깨뜨릴 수는 없다. 온몸이 부서져라 도전하는 이들의 분루와 땀이 쌓여야 지역주의에 균열이 나고 변화가 생긴다. 노무현과 김정길 등이 그렇게 오랫동안 문을 두드린 결과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목도한 부산의 변화다. 야권 무소속 후보가 부산시장 선거에서 얻은 49.3%의 득표는 저절로 나온 게 아니다.
정치 인생의 마지막을 지역주의 해소 싸움에 두겠다는 김부겸은 “정치는 대구에서 끝을 낸다”고 스스로를 묶어 세운다. 재·보선이나 수도권 전출을 기웃대지 않고, 계속해서 “온몸을 던져” 대구의 지역주의 벽을 깨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2년 뒤 총선에서의 삼세번 도전도 또다시 패배를 예비하는 것일 수 있다. 애초 패배와 희생을 감수하며 사지로 뛰어든 ‘바보 정치’에서 승패는 부차적인 것이다. 지역구도 타파의 물꼬를 트는 마중물, 지역주의에 함몰해 있는 한국 정치를 격발시키는 탄환의 역할이 주어진 몫이다. 김부겸의 정치적 스승인 고 제정구 전 의원은 특유의 정치론을 갈파했다. “정치는 걸레가 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은 뛰어들어 더러워지더라도 그만큼 세상이 조금씩 닦인다면 그 각오를 하고 덤비는 게 정치다.” 2년 새 두 차례의 선거 패배, 자욱한 상흔과 얼룩을 짊어진 채 다시 거대한 지역주의 성채를 향해 돌진을 시작한 ‘바보 김부겸’을 응원한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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