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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3:1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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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http://www.john316.or.kr |
요한계시록(23) 용서하고 기다리시는 주님
(계3:19-22)
주님이 일곱 번째로 라오디게아 교회에 회개를 권면하면서 여전히 라오디게아 교회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19절). 일곱 교회 중 책망만 받은 두 교회는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이고 그 중에서도 라오디게아 교회는 더욱 심하게 책망 받은 교회이기에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크게 미워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처럼 희망이 없는 교회인 줄 알았는데 주님은 그 교회도 사랑하신다고 하며 또한 사랑하시기에 책망하고 징계하신다고 했습니다(19절).
하나님의 자녀가 책망 받고 징계 받는 것은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관심과 기대가 그에게 있고 그를 버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20절).”
주님이 라오디게아 미워했다면 문밖에 서서 문을 열기를 기다리며 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고 같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려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라오디게아 교회가 회개하고 열심을 내어 주님께 돌아올 때 축복을 약속하는데 그 축복의 내용이 다른 교회에 주신 축복보다 더 크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21절). 그처럼 라오디게아 교회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사랑과 기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처럼 주님은 때로 사랑하는 성도에게도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마가복음 4장 말씀을 보면 주님이 탄 배에도 풍랑이 일었습니다. 그때 풍랑이 있었던 것은 제자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풍랑은 주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그 능력으로 제자들의 믿음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처럼 고난이 있을 때 고난만 보고 절망하지 말고 고난 너머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고난과 시험을 통해 복 주십니다. 작은 시험엔 작은 선물이 있고 큰 시험엔 큰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을 믿고 어떤 고난과 시련이 있어도 인내하십시오.
라오디게아 교회는 현대 교회를 상징합니다. 현대 교회와 현대 교인의 모습을 보면 초대 교회와 초대 교인과 비교해 환경은 좋고 살기도 좋아졌지만 신앙적으로는 많이 뒤떨어져서 하나님 보시기에 책망 받을 모습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기대가 낮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처럼 살기 편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님을 찾고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하면 주님이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
< 용서하고 기다리시는 주님 >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돌아오면 하나님은 언제나 맞아 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힘과 용기가 됩니까? 가장 야단을 많이 받는 라오디게아 교회도 하나님이 그처럼 놀라운 축복의 기회와 가능성의 문을 열어 두셨다면 우리에게도 그런 축복의 기회와 가능성은 여전히 많습니다. 살다 보면 가끔 자신에 대해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기대를 생각하며 실망을 희망으로 만들어 가십시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용서해놓고 우리가 돌아서기만 기다리십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사랑하던 아벨을 질투해서 쳐 죽였지만 하나님은 가인을 용서했고 용서의 표를 주어 죽임을 면케 했습니다. 인간의 폭력에 하나님은 비폭력으로 대응하신 것입니다. 그처럼 용서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기독교는 한 마디로 용서의 종교입니다. 즉 하나님의 용서를 확신하고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기독교인임을 나타내는 핵심 요소입니다.
본문 20절에 나오는 주님이 문을 두드리는 모습은 믿지 않는 자의 문을 두드리시는 장면이 아닙니다. 즉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믿는 자의 문을 두드리는 장면입니다. 그 주님의 노크 소리를 듣고 용서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마음 문을 활짝 열고 꿈과 비전을 향해 나가면 현재의 모습과 처지와 환경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얼마든지 다시 복된 자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행복의 원천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서로 나누는 것에 있습니다. 이 험한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고 새롭게 만드는 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사랑을 나눌 때만 가능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게 사는 이유는 결국 하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한다고 말하고 사랑을 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섞이지 않은 인간적인 사랑은 사람의 마음에 차원 높은 기쁨과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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