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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대상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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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집념과 집중력의 결실
본문: 대상9:33
‘또 찬송하는 자가 있으니 곧 레위 우두머리라 그들은 골방에 거주하면서 주야로 자기 직분에 전념하므로 다른 일은 하지 아니하였더라’
에디슨은 어린 시절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신문팔이를 하여 생계를 꾸려나갔습니다. 어느 날 그의 친구가 학교를 졸업한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 에디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내 아들이 앞으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에게 도움이 될 말을 좀 해주면 좋겠네."
그때 에디슨은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실무에 종사할 때는 절대로 시계를 보지 말게나."
그는 일을 할 때면 언제나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만큼 그는 자신의 일을 즐겼고, 그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에디슨이 80세 생일을 맞이했을 때였습니다. 친구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요즈음 자네는 어떻게 생활하는가?"
에디슨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매일 잠자는 시간 5시간을 빼고 나면 그 나머지는 죄다 연구실에서 보낸다네, 아마도 나는 나의 장례식 3일 전까지는 쉬지 않고 내 연구실에서 계속 일하게 될 것이라네."
에디슨이 세계적인 발명왕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그의 집념이 있었기에 발명품 개발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삶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고집스러울 만큼 강한 집중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마치 레이저 불빛처럼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들은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 단 한 치의 곁눈도 팔지 않습니다. 집중력은 정신력과도 통합니다. 자신이 세운 선한 목표를 끝까지 이어가는 힘, 자신의 모든 시간과 삶을 통째로 걸고 곁눈 팔지 않는 힘, 그래서 때로는 경외감마저 불러 일으키는 것, 그것이 바로 무서운 정신력이고 집중력입니다.
우리나라 격언에 ‘짐승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해 있는 자는 한눈을 안 판다는 뜻입니다. 또 우리나라 속담 가운데는 '우물을 파더라도 한 우물을 파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포기하지 않고 한 우물을 계속해서 파 내려가면 언젠가는 그곳에서 물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집념을 가지고 한 곳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가”(갈6:9)
등산객이 시골의 한적한 길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길 옆 조그마한 쪽문에 ‘다불유시(多不有時)’라는 한자어가 적혀 있었습니다. 등산객은 그 말뜻이 알쏭달쏭했습니다. 시간은 있는데 많지가 않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문구였습니다. 그는 옆에 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주인을 불렀습니다. 허리가 굽은 노인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뭔 일인가요.” 등산객이 정중하게 물었습니다. “저 한자성어는 누구 작품인가요. 그리고 무슨 뜻인가요.”
노인은 여전히 귀찮은 표정이었습니다. “내가 쓴 거요.” “그럼 뜻을 좀 가르쳐 주시지요.” 등산객은 노인에게 정중히 말했습니다. 그때 노인이 시큰둥하게 대답했습니다. “뜻은 뭔 뜻? 그냥 다불유시(WC)야. 화장실도 몰라?”
우리는 가끔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지나친 관심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헛된 것에 미혹되는 것이 인간의 나약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붙잡는 일에 더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2)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14)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2:42)
집중력과 일의 우선순위, 이게 안되면 매사 헝크러진 사람이 되고 맙니다. 늘 어수선하고 중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갖춘 사람은 세상이 아무리 바빠도 여유가 있고, 언제나 한가한 듯 한데도 일의 진척도 빠르고 중심도 잡혀 있습니다.
어떤 목사가 성도가 7백 명쯤 되는 교회에 새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7백 명의 입맛을 맞추려니 힘들겠어요”라고 말하자 목사가 말했습니다.
“저는 7백 명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여기에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직 한 분만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처럼 바른 집중은 능력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온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오로지 복음전파에만 몰두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서 내게 주신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다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행20:24)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21:13)
저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많이 만나 봤지만 사도 바울처럼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극소수였습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자신의 금쪽같은 시간, 돈, 욕구를 희생하는 그리스도인,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얻기 위해서 어떤 것이든 포기하려는 그리스도인은 별로 없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신의 직업, 명성, 신분, 우정, 재산, 심지어 생명까지 바치려는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 어린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 기도: 결단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오로지 주님과 말씀에 집중하게 하소서. 우리가 한 가지 목포를 세우고 실행에 옮겼을 때 끈질기게 노력하는 강한 집념을 주옵소서. 맡은 일에 죽도록 충성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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