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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스3: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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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최장환 목사 |
참고 : | http://cafe.daum.net/smbible/5JQI/737 |
스3;1-13 쓴맛 속에 깊은맛
혀로 단맛(혀끝), 신맛(혀 양쪽), 쓴맛(혀 뒤쪽 중앙), 짠맛(혀 가장자리)을 느낀다고 합니다.
쓴맛은 깊은 맛이다. 단맛이 줄 수 없는 깊은 맛이 쓴맛에 있습니다.
쓴맛은 혀뿌리의 중앙부에서 느끼는 맛이다. 쓴맛이 깊다고 해서 쓴맛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은 달콤한 맛을 좋아한다. 사람은 달콤한 것을 맛보면 그 맛을 반복해서 추구한다.
달콤한 맛을 우리는 쾌락이라 일컫는다. 단맛은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느끼는 맛이다.
그런데 문제는 쉽게 느끼는 단맛이 우리 몸을 해롭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생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이 너무 맛있으면 조심해야 한다. 조미료가 많이 가미된 음식일수록 맛이 있다. 탁월한 요리사는 조미료 없이 깊은 맛을
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 경지는 쉬운 경지가 아니다. 고통스런 수련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경지다. 쓴맛까지 가미해서 만들어낸 예술품이다. 입에 설설 녹는다고 말하는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음식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에 달수록 몸에는
독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너무 쉽고, 너무 달콤할수록 독이 될 수 있다.
인생에서 배운 교훈은 깊이 있는 삶을 위해서는 쓴맛 나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숙한 사람은 먼저 즐거움을 선택하고 후에 고통이라는 대가를 지불한다.
반면에 성숙한 사람은 먼저 고통을 선택하고 나중에 즐거움을 누린다.
영성 훈련이란 참된 즐거움을 위해 고통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다.
즐거움을 잠시 보류하고 고통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다. 인생의 쓴맛은 고난의 맛이다.
고난의 맛은 달콤하진 않아도 그 맛이 깊다. 커피의 맛은 쓴맛에 있다.
쓴맛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은 깊은 맛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고난의 깊은 맛은 깊은 깨달음에서 온다. 가볍게 사는 사람은 고난의 쓴맛을 모른다.
반면 깊이를 추구하는 사람은 쓴맛을 음미하고, 쓴 나물을 좋아한다.
그는 쓴 약이 몸에 좋으며, 쓴 음식이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음을 안다.
쓴맛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쓴맛을 만드셨다면 우리는 쓴맛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때로 실패의 쓴잔, 상실의 쓴잔, 외로움의 쓴잔,
고통의 쓴잔을 마시게 하신다. 그 이유는 고통의 쓴잔이 인생의 깊은 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마신 잔은 쓰디쓴 고난의 잔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난의 십자가다.
고난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쓴맛 속에 담긴 인생의 깊은 맛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험한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이다. 진짜 좋은 약은 쓰다.
쓴 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것이다. 쓴맛 뒤의 단맛은 더욱 달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쓴맛의 환경이 와도 불평하거나 도망가거나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이며 그 안에서는 하나님의 귀한 뜻이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드리고 깊은맛을 느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은 포로에서 돌아와 7월에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동료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동료들이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규정된 대로 번제를 드릴 수 있도록,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제단을 쌓았다. 그들은 그 땅에 사는 백성들이 두렵기는 하지만, 제단이 서 있던 옛 터에 제단을 세우고, 거기에서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초막절이 되니, 기록된 대로 그 절기를 지켰다. 그들은 또한 규례를 따라서, 날마다 정해진 횟수대로 번제를 드렸다. 그런 다음부터, 그들은 늘 드리는 번제 외에도, 초하루 제사 때와,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모든 절기를 맞이할 때와, 하나님께 자원예물을 바칠 때마다 번제를 드렸다. 하나님의 성전 기초는 아직 놓지 않았지만, 그들은 7월 초하루부터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백성은 석수와 목수에게는 삯을 주어서 일을 시키고,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는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어서, 바사 왕 고레스가 그들에게 허락한 대로,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베어 바닷길로 욥바까지 띄워 보내게 하였다. 백성이 하나님의 성전 터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지 이태째가 되는 해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들의 나머지 동료 제사장과 레위 사람과, 사로잡혀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모든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스무 살이 넘은 레위 사람을 하나님의 성전 건축 감독으로 세웠다.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친족과, 호다위야의 자손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님의 성전 짓는 일을 감독하였다. 레위 사람 헤나닷의 아들과 손자와 친족들도 그들과 함께 일을 하였다. 집 짓는 일꾼들이 주님의 성전 기초를 놓을 때에, 예복을 입은 제사장들은 나팔을 들고, 레위 사람 가운데서 아삽 자손들은 제금을 들고, 이스라엘 왕 다윗이 지시한 대로, 저마다 주님을 찬양하려고 자기의 자리에 섰다.
그들은 서로 화답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의 찬송을 불렀다. 하나님은 어지시다. 언제나 한결같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성전 기초가 놓인 것을 본 온 백성도, 목청껏 소리를 높여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을 본 나이 많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가문의 우두머리들은, 성전 기초가 놓인 것을 보고 초라하여 크게 통곡하였다.
또 다른 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 성전을 보지 않은 자들은 기뻐하며 즐거이 노래하였다. 환성과 통곡이 한데 뒤섞여서, 소리가 너무나도 크고 시끄러웠다.
그 소리는 멀리서도 들을 수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환성인지 통곡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즉 이스라엘 자손이 귀환해서 7월에 예루살렘에 모여 지도자들이 다 일어나 하나님의 단을 만들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두려움 중에서 번제단을 재건하고 번제를 드리며 초막절을 지키고 성전 건축을 위해서 사람과 재료들을 준비하고 하나님 전에 이른 지 2년 2월에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자들이 역사를 시작하는데 스룹바벨과 예수아등 감독자들을 세워 일꾼들을 감독하고 건축자가 여호와의 지대를 놓을 때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레위 자손들은 제금으로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주는 지선하시므로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하니 백성들도 여호와를 찬송하고 성전 지대가 놓인 것을 보고 즐거움으로 인하여 기쁨의 환호성치는 무리가 있고 반대로 초라한 모습에 실망하여 크게 통곡하며 우는 소리가 뒤엉켜서 분별할 수가 없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쓴맛과 같은 어려운 환경을 주셨을 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므로 깊은맛을 느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을까요 본문에서 알아 봅시다
첫 번째로 은혜 깨닫고 영적 준비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고향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하였는데 7월이 되었을 때,
그들은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동료 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이 모여서 하나님의 제단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그 제단은
모세의 율법에 적혀 있는 대로 태워 드리는 제물인 번제물을 바치는 제단입니다.
그들은 주변에 사는 다른 나라 백성들을 두려워했지만,
제단을 다시 쌓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그 위에 여호와께 번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런 뒤에 율법에 적혀 있는 대로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그들은 절기 기간 동안 날마다 정한 수대로 희생 제물을 바쳤는데, 초막절이 끝난 뒤에도
그들은 번제물과 달의 첫날에 드리는 초하루 제물과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온갖 절기의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도 바쳤습니다. 7월 첫날에
그들은 하나님께 번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전의 기초는 놓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즉 성전 재건을 위한 영적인 준비로 예루살렘에 다시 모여 제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고
전 지대는 놓지 못했는데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7월1일부터 날마다 드렸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깨닫고 영적 준비하는데서 70년이라는 포로의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히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도
삶속에서 하나님의 은혜 깨닫고 영적 준비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예수믿는 자들을 잡으려고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눈이 어두워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이 떠져서 다메섹으로 가서 예수를 전하다가 죽게되었을 때
도망을 나왔고 먼저 아라비아로 가서 혼자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여 은혜를 받고
영적으로 준비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끼므로 이방인들을 위한 사역을 감당합니다.
우리도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은혜 깨닫고 영적 준비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을까요
두 번째로 다시 하려고 자료 준비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뒤에 그들은 돌 다듬는 사람과 나무를 다루는 사람에게 돈을 주어 일을 시켰습니다.
시돈과 두로의 여러 성에 음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보내 주고, 레바논에서 욥바 항구까지 백향목을 실어 오게 했습니다. 그 일은 바사 왕 고레스가 허락하였습니다.
즉 성전 재건을 위한 재료의 준비로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두로와 시돈 사람들에게 백향목을 물로 운반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다시 심령성전을 지으려고 자료 준비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벧전2;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
우리도
다시 심령선전을 건축하려고 자료 준비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첫 번째 인구 조사를 하고 실패하여 두 번째 인구조사를 하게 됩니다.
가나안 땅을 들어갈 준비를 다시하려고 인구조사를 두 번째 하게 됩니다.
우리도
심령선전을 다시 지으려고 자료 준비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을까요
세 번째로 기뻐하시는 일을 시작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돌아온 지 2년째 되는 해의 2월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동료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과 포로 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모두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십 세 이상 된 레위 사람을 뽑아서 여호와의 성전 짓는 일을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짓는 일을 맡은 사람은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 호다위야의 자손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헤나닷의 아들들과 손자들과 형제들로, 모두 레위 사람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일꾼들이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는 일을 마치자, 제사장들이 제사장 옷을 입고 나팔을 들었습니다. 레위 사람들과 아삽의 아들들도 제금을 들고 모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말한 대로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그들은 찬양하고 감사하며 여호와께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은 영원하시다.
그러자 모든 백성도 성전의 기초를 놓은 것을 보고, 여호와를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든 제사장과 레위 사람, 각 집안의 지도자들은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솔로몬 왕 때에 처음 지었던 아름다운 성전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금 놓여진 이 성전의 기초를 보고 큰 소리로 울었고, 다른 백성들은 기쁨에 겨워 소리를 질렀습니다. 백성이 내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으므로, 기쁨에 겨워 지르는 소리와 슬퍼서 우는 소리를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그 소리는 멀리서도 들렸습니다.
즉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성전 재건 역사를 시작하고 공사를 감독할 자들을 세우고
성전의 지대가 놓여질 때에 다윗의 규례대로 하나님을 찬송하며 통곡하고 기뻐하였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시작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7;24-25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우리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심령성전을 만드는 일을 시작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야곱 일행의 선발대로 형들에 의해서 도단에서 팔리게 되는데 보디발의 종으로 팔리고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옥에 가둬지나 술맡은 관원장과 떡굽는 관원장을 만나고
그들의 꿈을 해몽하여 바로의 꿈을 해몽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서 바로의 꿈을 해몽하자
총리가 되어 나중 기근이 들어서 형들이 곡식을 사러왔을 때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당신들이 아니고 하나님이셨다고 고백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
우리도
무엇을 해도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시작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만나고 사건과 문제와
질병과 어려운 환경들을 만나는데 거기서 쓴맛을 보며 좌절하고 포기하고
낙심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안되고 그것을 통해서
도리어 더 깊은맛을 느끼는 계기가 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 될 것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들 합니다.
실패의 쓴맛 속에서 더 깊은 맛을 느끼는 것이 귀한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은혜 깨닫고 영적 준비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고
두 번째로 다시 하려고 자료 준비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고
세 번째로 기뻐하시는 일을 시작하는데서 쓴맛 속에 깊은맛을 느낄 수 있어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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