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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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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얼마 전 소방 점검을 나왔다. 검사 직원들이 우리 집 소화기를 흔들어보더니, 소화액이 굳어서 사용할 수 없는 소화기라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갖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았던 것이다. 이어서 검사 직원들이 현관방 베란다로 간다. 베란다에 있는 붙박이 벽장문을 열더니 하는 말. “만약에 불이 나면 벽장 안의 이 벽을 뚫어 탈출하세요. 이 얇은 벽을 뚫으면 옆집이 나옵니다.” 이 집에서 산 지 4년 만에 처음 듣는 얘기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는 이사를 왔을 때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소화기를 사려고 어느 업체에 문의 전화를 했더니, 가정용 소화기가 주문폭주로 품절 상태란다. 세월호 이후,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소화기 주문에 실패한 그날 밤, 나는 악몽을 꾸었다. 큰불이 났고, 지구 전체가 불에 휩싸여 피할 곳이 없다는 절망적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죽고 싶었다. 불길이 머리에 닿았다. 말할 수 없이 뜨겁고 고통스러웠다. 그 순간 잠이 깼다. 그런데 안도의 숨을 쉴 수 없었다. 꿈보다 현실이 전혀 덜 무섭지 않기 때문이었다.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어이없이 쉽게 일어나는 나라, 한국. 건물이 무너졌고, 다리가 무너졌고, 배가 가라앉았다. 다음 순서는 어쩌면 핵사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불길한 예감을 떨쳐낼 수 없다.
현재 한국의 원전은 23개이고, 추가로 5개가 건설 중이며, 정부는 2024년이 되면 총 42개의 원전을 운영할 계획이다. 한국은 원전밀집도 세계 1위이다. 땅 넓이에 대비한 원전 개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사고가 났을 때 받는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나면, 남한 땅 전체가 방사능으로 오염된다. 피할 곳이 없다. 후쿠시마에는 총 10개의 원전이 일렬횡대로 늘어서 있었는데, 지진과 쓰나미 충격에서 1, 2, 3, 4호기만 사고를 일으킨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30년 넘은 원전은 모두 폭발했고, 30년이 안된 원전은 폭발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남긴 교훈은 ‘핵발전소는 30년 이상 운영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에는 설계수명을 넘긴 원전이 두 개나 있다.
지난 5월, 일본에서 탈핵 실현을 앞당기는 획기적인 사법판결이 나왔다. 후쿠이 지방재판소가 오이(大飯) 핵발전소 3·4호기 가동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성도 보장되지 않은 채 재가동된 오이 핵발전소 3·4호기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운전 금지를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었다. 판결문에서 “(핵발전소는) 법적으로는 전기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경제활동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고, 헌법상 ‘인격권’보다 낮은 위치에 놓여야 한다”며 “자연재해와 전쟁 외에 (인격권이라고 하는) 근원적 권리를 극히 광범위하게 박탈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핵발전소 사고밖에 없다”고 했다. 간사이 전력이 주장하는 국부(國富)의 상실에 대해서도 “국토와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국민의 삶이야말로 국부”라며 “그것을 상실하는 것이 바로 국부의 상실”이라고 간사이 전력의 주장을 강하게 일축했다.
체르노빌 사고 30년이 지났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아이들이 기형과 심장병, 암에 시달린다. 후쿠시마 이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대만 등이 탈핵을 결정했다. 세계는 탈핵으로 가고 있는데 오직 한국만 세계 흐름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고리 원전은 무리한 수명연장과 비리로 잦은 고장을 일으키며 계속 가동되고 있고, 핵 마피아는 원전으로 이익을 챙길 ‘나쁜 꿈’을 계속 꾸고 있다. 원전이 위험하다고 외치는 밀양의 노인들이 경찰에 끌려가고, 뻐꾸기 우는 아름다운 이 계절에 나는 매일 밤 지구가 불타는 ‘나쁜 꿈’을 꾼다.
<황윤 | 다큐영화 감독>
현재 한국의 원전은 23개이고, 추가로 5개가 건설 중이며, 정부는 2024년이 되면 총 42개의 원전을 운영할 계획이다. 한국은 원전밀집도 세계 1위이다. 땅 넓이에 대비한 원전 개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사고가 났을 때 받는 충격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한국에서 원전 사고가 나면, 남한 땅 전체가 방사능으로 오염된다. 피할 곳이 없다. 후쿠시마에는 총 10개의 원전이 일렬횡대로 늘어서 있었는데, 지진과 쓰나미 충격에서 1, 2, 3, 4호기만 사고를 일으킨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30년 넘은 원전은 모두 폭발했고, 30년이 안된 원전은 폭발하지 않았다. 후쿠시마 사고가 남긴 교훈은 ‘핵발전소는 30년 이상 운영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에는 설계수명을 넘긴 원전이 두 개나 있다.
지난 5월, 일본에서 탈핵 실현을 앞당기는 획기적인 사법판결이 나왔다. 후쿠이 지방재판소가 오이(大飯) 핵발전소 3·4호기 가동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안전성도 보장되지 않은 채 재가동된 오이 핵발전소 3·4호기에 대해 지역 주민들이 운전 금지를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었다. 판결문에서 “(핵발전소는) 법적으로는 전기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 경제활동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고, 헌법상 ‘인격권’보다 낮은 위치에 놓여야 한다”며 “자연재해와 전쟁 외에 (인격권이라고 하는) 근원적 권리를 극히 광범위하게 박탈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핵발전소 사고밖에 없다”고 했다. 간사이 전력이 주장하는 국부(國富)의 상실에 대해서도 “국토와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국민의 삶이야말로 국부”라며 “그것을 상실하는 것이 바로 국부의 상실”이라고 간사이 전력의 주장을 강하게 일축했다.
체르노빌 사고 30년이 지났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아이들이 기형과 심장병, 암에 시달린다. 후쿠시마 이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대만 등이 탈핵을 결정했다. 세계는 탈핵으로 가고 있는데 오직 한국만 세계 흐름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고리 원전은 무리한 수명연장과 비리로 잦은 고장을 일으키며 계속 가동되고 있고, 핵 마피아는 원전으로 이익을 챙길 ‘나쁜 꿈’을 계속 꾸고 있다. 원전이 위험하다고 외치는 밀양의 노인들이 경찰에 끌려가고, 뻐꾸기 우는 아름다운 이 계절에 나는 매일 밤 지구가 불타는 ‘나쁜 꿈’을 꾼다.
<황윤 | 다큐영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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