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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05: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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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만족한 생활
본문: 시105: 40, 고후3:5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로 오게 하시며 또 하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케 하셨도다"(시105: 40)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3:5)
독일태생의 미국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미국의 한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루는 학생들이 그의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학생들은 아인슈타인의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세계적인 과학자의 부인이 되셨으니 자랑스러우시죠?"
그러자 부인은 아무 대답도 없이 미소만 지었습니다. 잠시 뒤에 한 학생이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부인은 교수님에게서 상대성 윈리에 대해 많이 들으셨으니까 잘 이해하시겠지요?"
부인은 웃으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학문적인 이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답니다. 그러나 내가 내 남편에 대해 분명히 아는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 분에 대한 나의 사랑이 불붙는 동안 그의 사랑도 틀림없이 불붙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이해하고 있는 우리 부부의 상대성의 원리입니다.”
사랑의 기준이나 행복의 척도는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졌으며 무엇을 얼마나 많이 아느냐에 달려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원망과 불평 속에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며 사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한 남보다 많은 학문을 탐구한 박사가 일자무식꾼보다 더 불행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누리는 영화배우나 가수들이 평범한 삶을 사는 서민들보다 훨씬 더 고독하게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 눈에는 화려하게 보이는 외적 요소들이 행복의 척도는 될 수 없습니다. 화려한 무대 뒤에는 불행의 요소도 많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그림은 자기 자신이 직접 그려가는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그곳에 행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 6-8)
수세식으로 화장실과 욕조와 샤워 시설 정도는 요즘 필수 품목이지만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만 해도 유럽의 일부 왕후장상이 아니면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들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최고의 영화를 누렸다는 왕이나 비빈들까지도 궁궐 후원에다 차일을 쳐놓고 하늘을 지붕삼아 목욕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옛날 어떤 특권계층의 사람도 누리지 못했던 영화를 누리고 사는 셈입니다. 밟기만 하면 붕붕 날아갈 듯 치달리는 승용차를 감히 옛날의 진시황인들 상상했겠습니까? 자동으로 부채질을 해주는 선풍기 하며, 그것도 모자라 요즘 널리 보급된 에어컨이 여름 더위를 무색케 합니다.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성경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다"(전 5:1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한즉 메추라기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탐욕이 인간의 최대 비극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질병을 치유하는 길은 절대만족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17: 15)
옛날에 병으로 시달리던 성주가 있었습니다. 한 신하가 지혜로운 사람들의 말을 듣고 성주에게 "병을 고치려면 항상 만족한 생활을 하는 사람의 내의를 입어야 한다."고 보고 했습니다. 성주는 즉시 전 영토를 뒤져 그 사람을 찾아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 신하들이 돌아왔으나 빈손이었습니다. "항상 만족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찾았는가?"
"예, 우여곡절 끝에 한 사람들 찾았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빈손인가?"
"그 사람은 내의를 입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우리 사람들이 목마르게 찾고 또 그것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족한 생활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이사야 55장, 1, 2절)
무슨 말씀입니까? 세상의 물질이나 육신의 쾌락은 사람에게 참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짐승은 본능대로 살고 본능을 충족시키면 그것으로 다 됩니다. 그러므로 짐승에게는 고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물질적인 것만 가지고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쾌락도 그렇습니다. 마치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릅니다. 얻으면 얻을수록, 누리면 누릴수록 더욱 목이 말라집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몸이 마실 물이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 없이 참 만족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영혼의 갈급함을 채워 주시는 분입니다. 사실, 영혼의 만족을 채워주지 못하는 단순한 세상적인 것의 번영은 오히려 고통만 더할 뿐입니다. 어거스틴의 참회록 첫 페이지에 있는 말은 꼭 옳습니다. 그리고 참 만족한 생활을 하는데 한가지 조건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만족한 생활을 하게 하실 수 있는 분에게 나아와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에게 나아오면 됩니다. 혹 어떤 이는 스스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그에게 나아가야지. 그러나 이대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나? 어느 정도 내 지금의 생활을 청산하고 나아가야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그대로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나아오기만 하면 모든 짐이 벗어지고, 불만이 해소되고, 참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2대 왕인 다윗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23편).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만족합니다. 이렇게 주님께 나아오는 것을 회개라고 하며, 예수님 안에서 만족한 생활을 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생활입니다. 실지로 내가 그대로 해보아야 그것이 무엇임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서 만족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구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종래에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 앞에 나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비로소 참 만족을 얻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성경은 말씀합니다.
‘음부와 유명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잠27: 20)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여러 처첩들을 거느리고 사는 헬라의 도시 국가의 어느 왕이 하루는 그들을 모아 놓고 '너희들이 날 사랑하기 때문에 나라의 주권만 빼놓고 원하는 것은 모두 선물로 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모두들 보석이니 집이니 하는 좋은 것은 서로 갖겠다고 야단법석이었으나 어떤 부인 한 사람만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이상히 여겨 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라고 하자 '그것은 다름 아닌 당신 자신입니다. 왕 자신만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주님만을 원할 때 참 만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 기도: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 때때로 제 욕심 때문에 주님을 외면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주님과 함께함으로 제 자신을 살피게 하소서. 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소서. 모든 일에 자족하며 감사할 수 있게 하소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게 하시고 진실하고 성실하게 살게 하시며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 만족의 주체가 되시는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살아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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