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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6: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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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승호 목사 |
참고 : |
예수 안에 잠긴 인생(롬6:1-11)
기독공보에 “푸른꿈 심는 우물할머니”
아프리카 빈곤층에 깨끗한 물 로 사랑 전하는 노국자 권사님은
아프리카 아이들이 물을 길르기 위해 2-4크로미터 걸어야 하는데 약 1-3시간 걸린다. 이로 인해 학교 지각과 결석도 높다. 땅속 15미터 우물을 팔 수 없어 흐르는 물에 짐승과 같이 먹고 씻고하는 일들도 허다하단다..이를 방송으로 본 온누리 교회 노국자 권사님은 엉엉 한없이 울고 다짐하기를 이 불쌍한 지역에 우물을 파 줘야 겠다고 다짐하고 그날의 기도 후 노국자권사는 8년이 넘도록 국제구호단체 기아 대책 수자원개발캠페인 의 헝거세이버이자 아름다운 우물 할머니로 활동 중이다 2006년 2월부터 아프리카의 케냐 모잠비크 짐바브웨 우간다 에티오피아 등 외딴 마을에 7개의 우물을 파내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 희망을 전하며 어린 아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있다. 노숙자권사는 손수레를 끌고 헌옷 신문지 빈병등을 주워모아 3년동안 1000여만을 모아 기아대책에 기부해 물 부족이 극심한 곳에 우물을 파주는 일에 협력하기도 했다. 바로 이분이야 말로 예수 안에 잠긴 인생이 아닐까요?
본문의 말씀은 정체성의 혼란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세례자의 삶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예수 안에 잠긴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씀에 빗대어 하신 말씀입니다.
사실상 이 세상에 죄악상을 보면 한숨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보상금을 타내기 위해 각 신체의 부의를 자르지 않는가 하면 부인을 살해하고 가족을 살해 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믿는 자들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로 죄 짓는 일에 앞장서서 자행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국민일보 남성현의 구도자들에 보니까?
기독교의 여성 기피증은 기독교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와의 타락은 여성에 대한 결멸과 혐오의 교리적 근거였다. 그 원조는 사도 바울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3절에서 “뱀이 간사한 꾀로 하와를 속였다”고 했다.
뱀에게 먼저 속은 것은 여자이고 남자는 여자의 말에 넘어갔을 뿐이다. 하와가 속지만 않았어도 원죄는 없었고 낙원에서 추방되지도 않았으며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
인류의 고통과 불행과 죽음의 모든 책임은 하와에게 있다 원죄와 고통을 여자에게 덮어씌우는 사도 바울의 원죄 신학은 초대 기독교 저술가들에게서 흔하게 발견되는 것이며 중세에는 더 극단적으로 강화된다..결국 여자는 그대 이름은 마귀이니 라고 까지 했다. 그러니 항상 죄의 본산은 여자에서부터 시작한다.
세상에 범죄는 여자 없이는 시작되는 일이 없고 가정이나 교회나 모든 불화의 요인은 여자에게서부터 시작 된다.. 그래서 기독교인들도 주로 인용하는 메시지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일에 동조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기독교인의 정체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시대의 신앙인의 문제는 올바로 믿음 생활을 하지 않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데서 기인합니다.
세상사람과 구별되지 않다는 문제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자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구별 되야 합니다. 기름과 물이 하나 되지 않고 다르듯이 신앙인과 불신자와의 관계는 기름과 물이어야 합니다. 확실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데 드러나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신앙인인지 아닌지 구분되지 않습니다.
신앙인들이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아 버린다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없어져 버리고 세상 사람으로 되어 버린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간첩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간첩입니다. 북한 사람이 남한에 간첩으로 파견 되어 있을 때 이 사람은 절대 북한 사람으로 드러나지 않고 남한 사람과 똑같이 살아 가면서 밤에나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이북과 무전기로 전화로 암호로 접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정체성이 없다면 이와 같습니다. 몰래 교회 나오거나 예배당에서는 그리스도인 것 같은데 세상에서는 똑같이 행동해 버립니다. 일이 있으면 주일 범하여 세상 사람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확실한 정체성을 가질려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세례를 받았으며 모두가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 일합니다
세례의 뜻을 4절에서 잘 밝히고 있습니다.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세례를 받았다 함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러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입니다..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는 세례를 받았으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정체성이 확실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간첩으로 살고 있습니까?
이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왜 불순종합니까? 아직도 죄에 본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백하기를 롬7:15“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16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치 않고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불순종만 하게 됩니다.
사도바울 계속 고백합니다. 19내가 원하는 바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이와같이 죄의 법이 안전히 자기를 사로 잡아 죄짓게 하고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죄를 회개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밝히기 위해서 죄를 회개 해야 할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직도 죄성이 있어서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죄의 법이 나를 얽어메어 죄짓게 하고 불순종하니 날마다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더 문제가 무엇입니까?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날마다 죄를 회개할 수 있습니까?
신앙생활이 이처럼 산 넘어 산입니다. 새벽기도 나오지 않기에 언제 기도합니까? 집에서 할 수만 있다면 좋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 나오지 않고 기도가 됩니까?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밝히기 위해선 무엇부터 해결 해야 합니까? 새벽기도부터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새벽기도 나와서 날마다 회개하는 심령이 되야 될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례를 받은 자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간첩으로 살지 마시고 이제부터는 기도하고 회개하므로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밝히고 사는 귀한 역사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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