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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30일 국회에 발의된 환경오염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의 통과가 불투명하다. 이 법률안은 여야 타협을 거쳐 이름이 ‘환경오염 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로 바뀌어 가까스로 지난 4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는데, 법사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렸다는 말이 들린다. 지난해 9월 발생한 경북 구미시 불산 누출사고가 벌써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피해액이 550억원을 넘었는데, 피해 구제는 지연되고 사고를 낸 기업은 공장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 당시 통탄스럽게도 환경오염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법이 없었다.
‘환경오염 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의 핵심 취지는 환경오염 피해에 대한 신속하고 충실한 구제이다. 신속한 구제를 위해 무과실책임과 인과관계 추정 규정을 두고 있으며 충실한 구제를 위해 보 험제도, 국가의 구제 급여 등을 두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인과관계 추정 규정에 대해 말이 많다. 논란의 핵심은 ‘적법한 운영의 경우’ 인과관계 추정을 배제하는 규정을 두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압축된다. 배제하는 규정을 두자는 쪽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산업계일 것이다. 인과관계 추정을 배제할 경우 책임 면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법률안이 ‘적법한 운영의 경우’ 인과관계 추정을 배제하는 규정을 두는 것은 판례가 인정해온 개연성이론보다 후퇴하는 꼴이 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개연성이론에서는 ‘적법한 운영의 경우’라는 이유로 인과관계 추정을 배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법한 운영인지 여부는 인과관계와는 무관하고 위법성을 판단하는 단계에서 다루어야 할 요소이기 때문에 기존 법체계와 조화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당사자 간에 적법 운영 여부를 둘러싸고 불필요하고 지루한 논쟁이 제기되면서 신속한 구제를 방해할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점에서 인과관계 추정 배제 규정을 삭제하기로 한 환경노동위원회의 결론은 지극히 타당해 보인다. 문제는 정부와 법사위원회이다. 산업계를 달래기 위해 추정 배제 규정을 만지작거리기 때문이다.
법률안의 추정 규정은 기존 개연성이론이 ‘배출’ ‘유해성’ ‘도달’ ‘손해 발생’ 등 4가지 요소만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해 주는 것을 그 밖에 다른 요소(예컨대 시설의 가동 과정, 배출물질의 종류와 농도, 피해 발생의 시간과 장소 등)도 두루 살펴 인과관계 여하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개연성이론이 확립되어 있음에도 막상 인과관계를 쉽게 인정하지 않았던 법원으로 하여금 여러 요소를 다각적, 적극적으로 심리하게 하여 인과관계 입증의 곤란과 소송 지연을 돌파해 보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추정 배제 규정을 두는 것은 이런 깊은 의미를 허무하게 퇴색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을 두느니 차라리 추정 규정조차 포기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자조론도 나올 만하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 규제 완화가 능사가 아니다. 규제 완화의 진정한 의미는 약자, 피해자에 대한 고려이다. 목전의 통과만을 목적으로 비정상적인 규정을 두는 것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추후 개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타이밍도 중요하다.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고도 벌써 10개월 정도가 지나고 있다. 오랜만에 좋은 취지의 법이 만들어지는가 싶었는데, 산업계의 입장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허둥지둥하면서 이제는 법률안이 좌초될 위기를 맞고 있다. 법 제정을 실기해 피해 구제에 실패할까 걱정된다. “비극은 그 게임에서 진다는 것이 아니라 이길 뻔한 게임을 놓친다는 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김홍균 |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률안이 ‘적법한 운영의 경우’ 인과관계 추정을 배제하는 규정을 두는 것은 판례가 인정해온 개연성이론보다 후퇴하는 꼴이 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개연성이론에서는 ‘적법한 운영의 경우’라는 이유로 인과관계 추정을 배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법한 운영인지 여부는 인과관계와는 무관하고 위법성을 판단하는 단계에서 다루어야 할 요소이기 때문에 기존 법체계와 조화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당사자 간에 적법 운영 여부를 둘러싸고 불필요하고 지루한 논쟁이 제기되면서 신속한 구제를 방해할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점에서 인과관계 추정 배제 규정을 삭제하기로 한 환경노동위원회의 결론은 지극히 타당해 보인다. 문제는 정부와 법사위원회이다. 산업계를 달래기 위해 추정 배제 규정을 만지작거리기 때문이다.
법률안의 추정 규정은 기존 개연성이론이 ‘배출’ ‘유해성’ ‘도달’ ‘손해 발생’ 등 4가지 요소만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해 주는 것을 그 밖에 다른 요소(예컨대 시설의 가동 과정, 배출물질의 종류와 농도, 피해 발생의 시간과 장소 등)도 두루 살펴 인과관계 여하를 결정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개연성이론이 확립되어 있음에도 막상 인과관계를 쉽게 인정하지 않았던 법원으로 하여금 여러 요소를 다각적, 적극적으로 심리하게 하여 인과관계 입증의 곤란과 소송 지연을 돌파해 보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추정 배제 규정을 두는 것은 이런 깊은 의미를 허무하게 퇴색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규정을 두느니 차라리 추정 규정조차 포기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자조론도 나올 만하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어려울 때일수록 단순하게 생각해야 한다. 규제 완화가 능사가 아니다. 규제 완화의 진정한 의미는 약자, 피해자에 대한 고려이다. 목전의 통과만을 목적으로 비정상적인 규정을 두는 것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추후 개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타이밍도 중요하다.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고도 벌써 10개월 정도가 지나고 있다. 오랜만에 좋은 취지의 법이 만들어지는가 싶었는데, 산업계의 입장 때문에 정부와 국회가 허둥지둥하면서 이제는 법률안이 좌초될 위기를 맞고 있다. 법 제정을 실기해 피해 구제에 실패할까 걱정된다. “비극은 그 게임에서 진다는 것이 아니라 이길 뻔한 게임을 놓친다는 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김홍균 |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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