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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영광을

마태복음 김남준 목사............... 조회 수 1062 추천 수 0 2014.06.21 23: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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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6:13 
설교자 : 김남준 목사 
참고 : 2012.02.19 http://www.yullin.org(안양 열린교회) 

하나님께 영광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6:13)

 

I. 본문해설

 

본문에는 주기도문의 송영이라 불리는 한 구절이 괄호 속에 제시되고 있습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라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가 아니기 때문에 주기도문에 포함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이 낭독되어 오면서 역사적으로 송영 부분이 첨가되어서 교회에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II. 주기도문의 송영

 

A. 사본상의 증거

 

누가복음에는 이 부분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사본상의 증거를 보면, 초기 사본에는 생략되어 있고 시내산 사본, 바티칸 사본, 베자 사본이라고 불리는 권위 있는 희랍어 성경의 사본들에도 생략되어 있습니다.

 

B. 후대의 첨가임

 

그래서 거의 모든 학자들은 송영 부분이 원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니고 후대에 첨가 됐다라는 것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의 학자들에 따라서 주기도문에 송영을 생략할지 첨가할지를 놓고 의견이 갈라져 왔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주기도문에 넣자고 한 사람들은 소수였고 많은 학자들은 넣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송영을 넣는 것을 적합하지 않다고 믿었고, 칼빈과 벵갈같은 학자들은 넣는 것이 적합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역사를 보면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송영 부분을 주기도문에서 사용했습니다. 또한 기독교 이전의 유대주의 문헌에서도 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고 하는 송영의 어구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유대주의에서는 모든 기도문들이 송영으로 끝나는 예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송영이 없는 기도문은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서라고 하는 학자는 ‘유대인들에 있어서 기도가 간구로 끝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주기도문 뒤에 붙은 송영은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준 기도문은 아니지만 주기도문을 우리가 받아서 낭송할 때에는 아주 적합한 요소다’라고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저는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를 할 때 마지막에 자기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신앙고백을 송영으로 바치는 것이 주기도문의 아름다운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송영을 포함하여 예전적으로 주기도문을 낭송하는 것을 지지하는 바입니다.

 

III. 아버지께 영원히 있음

 

A. 그 나라(바실레이아)

 

본문을 해석하기 전에 주기도문의 구조를 살피고 송영과의 관계를 규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구하고 그 나라의 도래, 그 뜻의 성취를 간구한 수직적인 기도를 드리고 수평적인 기도를 드리는 것은 구조적으로 그 나라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나라는 희랍어로 ‘바실레이아’(βασιλε?α)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그 통치아래 살아가고 있으나 아직은 그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 전체는 그 긴장 관계 속에서 투쟁하며 충성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전투적인 삶을 회화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속에는 매일매일 개별적인 삶에 있어서 전투적인 삶을 살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모든 싸움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이기시고 이 세상 누구도 꺾을 수 없는 권세로 임하게 하신 하나님의 왕국이 이미 도래하였고, 그 나라는 영원히 이 세상에서 완성될 것이라고 하는 확고한 신념 속에서 이 기도를 하나님 앞에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B. 그 권세(뒤나미스)

 

이런 기도를 하나님 앞에 간절히 올리는 이유 두 번째는 권세가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뒤나미스’(δ?ναμι?)라고 나오는 이 권세는 능력과 혹은 힘을 가리키고 폭발적인 위대한 권세를 가리킵니다. 그 권세는 아버지께서 도입하신 그 나라를 성취할 능력이며, 각 사람들의 의지와 지성을 하나님의 사랑 앞에 꺾어지게 함으로써 사랑으로 주님께 돌아오는 까리따스의 나라를 오게 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나라를 성령의 능력과 복음의 은혜를 가지고 사람들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함으로 이 세상에 잘못된 질서들과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고 구원하신 목적에 어긋나는 질서들에 항거하며 살게 하는 것입니다.

 

잠시는 선이 패한 것 같고 잠시는 신앙이 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이며 궁극적으로 권세가 하나님께 영원히 있기 때문에 그 권세 아래 악들이 다시 무너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능력이 아버지께만 영원히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삶의 초점을 예수 그리스도께 맞추고 주기도문의 삶을 살면, 잠시는 꺾어지는 것 같지만 당신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을 믿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C. 영광

 

마지막으로 영광입니다. 희랍어로 ‘독사’(δ?ξα)인데,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실 가치가 있는 유일한 존재이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모든 만물이 존재하게 된 원인이며 모든 만물이 회개하여 돌아가게 될 목적이기도 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피조 세계 속에 펼쳐 보이시기 위하여 우주를 창조하셨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무한한 우주의 세계, 지금도 폭발하며 팽창하고 있는 끝없는 우주의 세계를 통해 그 충만한 신성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 세계와 우주 안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지금도 도처에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특별히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는 인류의 구속의 사건을 통하여 당신의 충만한 영광을 아름답게 드러내고 계십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선교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방의 땅에서 나타나는 복음의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의 정수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시대 말에 나타날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의 도래에 비하면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에는 지금과는 비교되지 않는 찬란한 영광이 온누리를 뒤덮을 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이 온누리에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모자라 불의하게 사는 자들이 없을 것이고, 그 사랑이 모자라 악을 행하는 자들이 없을 것이니 그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이 땅에 오게 하시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사셨던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의 마지막 열매로서의 영광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 나라는 아버지께 영원히 있고, 이미 도래하기로 작정된 나라이고, 무엇도 그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이 땅에 임하는 것을 가로막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IV. 결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기도문을 버리고 주기도문과 상관없는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그 나라는 올 것이고, 그 권세는 임할 것이며 영광은 충만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주기도문의 삶을 잃어버리고 주기도문과 반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들은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어둠속을 걷고 있는 빛의 자녀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들은 갈등과 두려움과 어두움에 가득 찬 삶을 살 것이고 환란과 시련을 만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이바지하는 것이 없는 방종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세상 나라의 기쁨에도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신앙이 없어 버림받고 세상 나라에서는 세상을 버렸기 때문에 또한 버림받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목적에 정면으로 위배하는 삶인 것입니다. 모든 그 위대한 나라, 그 끝없는 권세, 그 한없는 영광이 바로 하나님께 영원히 있을 것인데 그 하나님이 바로 오늘 우리의 아버지라고 명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와 그 권세와 영광을 생각하면서는 우리는 티끌 같은 피조물이라는 생각 때문에 위대하신 하나님 위엄 앞에 무릎을 꿇고 두려워 떠는 자들이 되지만 아버지라는 이 신앙 고백 앞에서 우리는 알 수 없는 힘으로 하나님의 그 위대한 사랑에 이끌리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의 소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그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이루어져 아버지의 뜻이 성취됨으로 그 안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그 안에서 한없이 행복한 존재들이 되는 이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소명된 것입니다.

 

우리의 혈관에 피가 흐르고 우리의 입술의 혀가 굳어지기 전까지 우리는 주기도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며 이러한 삶을 알지 못하는 모든 창조의 목적을 떠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주기도문에 담긴 위대한 경륜들을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말로, 우리의 복음의 전파로, 우리의 윤리적인 삶으로 사람들에게 빛처럼 드러내며 사는 사람들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씻어 다시 이 세상에 빛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의 강해는 열네 번의 설교로 끝을 맺었지만 주기도문의 삶은 이제 겨우 시작일 뿐입니다. 마지막 주님의 품에 안기는 날까지 주기도문을 따라 사는 충성스런 주님의 자녀들이 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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