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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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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12.03.10 http://www.yullin.org(안양 열린교회) |
3.목회자의 지성적 준비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눅1:80)
I. 본문해설
세례 요한은 빈들에서 성장했고, 자라면서 심령이 강하여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이나 먹으면서 할 일 없이 세월을 보내면서 자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떠한 식으로든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경건을 익히며 선지자로 자라갔을 것입니다. 한 시대를 깨워 그리스도 오시는 앞길을 예비하는 선지자로 살기 위한 영적인 준비는 지적인 준비 없이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빈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결정적인 소명 사건을 체험하기까지 그는 긴 세월을 광야에서 자라며 하나님의 성품과 언약백성들의 역사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갔을 것입니다.
II. 신학이란 무엇인가?
A. 기독교의 힘
기독교의 힘은 기독교 사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한 시대에 진리의 말씀을 전달하게 하시고, 그들의 섬김 위에 성령의 권능을 더하심으로써 무지와 어둠을 밝혀 그들의 악한 의지를 사랑으로 감화시켜 하나님을 향하여 살게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복음 사역입니다. 세상은 기독교를 파멸하고자 무진히 애를 썼습니다. 지역교회는 파괴되기도 하고 배교에 삼킨바 되기도 하였으나 보편교회는 무엇에 의해서도 파멸되지 않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채 오히려 영적으로 번영하여 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가 가진 힘의 정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힘의 근원을 말함에 있어서 가시적인 영역과 비가시적인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 가시적 영역: 사상+윤리
가시적 영역에서 기독교의 힘은 사상의 힘과 윤리의 힘입니다. 사상은 하나님을 아는 길이요, 윤리는 그렇게 알고 사랑하게 된 사람들의 삶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상이 믿어야 할 규칙들(regulae credendi)과 살아가야 할 삶의 교훈들(praecceptae vivendi)의 체계라면, 윤리는 그 가치의 체계와 규범을 따라 살아감으로 드러난 도덕적인 삶입니다. 그리고 윤리는 그 자체가 옳음과 그름의 기준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신학 사상이 없는 종교적 윤리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혹시 그것이 가능하다면 종교의 모양을 기독교에서 취하고 윤리의 기준은 세상에서 도입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과 윤리의 분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 사상의 기술(記述)은 지적인 형식을 띠고 계몽주의의 학문 형태를 따른다는 점에서 가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윤리적인 삶은 종교 유무와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도덕과 관련하여 판단할 수 있도록 드러난다는 점에서 가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비가시적 영역: 은혜
기독교의 위대한 힘이 철저한 신학 사상과 엄격한 윤리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가 정치(精緻)한 신학 사상을 따르고 있어도 윤리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부패한 경우가 많으며, 또한 윤리적인 삶을 살아간다할지라도 그것들을 통하여 자신이 신앙하는 진리의 내용들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은혜라는 신비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비가시적 영역의 힘으로, 이성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신비의 영역에 속합니다. 은혜의 힘은 사상과 윤리를 연결해 주는 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지성적이며, 윤리적일 뿐 아니라, 영적인 사람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B. 지성과 감성의 진자운동
오늘날 우리는 두 가지 극단의 시대를 살아갑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신앙의 중심이 지성인가, 혹은 정서인가에 대한 진자운동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생명력 있는 역사가 일어나지만, 점점 성령의 불길이 식어갑니다. 유능한 변증가들이 나타나 기독교는 점점 지성 중심으로 흐르게 됩니다. 교회가 생명력을 잃어갈 때 ‘몬타누스주의’(Motanism)가 일어나게 됩니다. 몬타누스는 자신을 성령이라고 주장하면서 극단적인 신비체험과 열정, 감성을 중시한 운동을 펼치고, 테르툴리아누스 같은 저명한 교부들도 그 유혹에 굴복하게 됩니다. 2,3세기에는 지성 쪽으로 치우치면서 거대한 지성주의적인 이단, ‘영지주의’(Gnosticism)를 맞이하게 됩니다. 영지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지식은 구원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그 후 4~10세기경에는 수도와 개인의 체험, 내적인 광명과 직관을 중시하는 수도원주의가 성 안토니우스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11세기에 강력한 지성주의 운동인 ‘스콜라주의’(Scholasticism)가 일어납니다. 그리스 철학의 체계를 가지고 하나님과 인간의 구원, 세계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교회는 성경에 기록된 예언과 영적인 은사, 체험들을 철저히 무시하기 시작하였고, 신앙적인 열정을 하찮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는 14, 15세기에 와서 다시 체험과 열정, 내적인 교통을 중시하는 신비주의 운동이 일어납니다. 중세 후기 신비주의는 마이스터 에카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 요한 타울러(J. Tauler, 1300-1361), 하일리 수소(H. Suso, 1295-1366) 등의 신비주의자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 후 얀 후스의 영향을 받은 공동생활의 형제단과 라위스 브레이크 등에 의하여 새로운 경건 운동이라 불리는 데보티오 모데르나(Devotio moderna) 운동이 일어납니다.
그 후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위대한 16세기에는 불변하는 계시의 말씀을 성경에서 찾게 됩니다.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 곧 ‘스피리투스 쿰 베르보’(spiritus cum verbo)라는 신앙고백을 낳았던 종교개혁의 신학이 태동하게 됩니다. 교회의 강단은 지식과 감정의 통일성을 강조하면서, 개혁교회의 중요한 교리를 완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후 개신교 안에서 분파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첨예한 교리 논쟁들 속에서 논쟁을 위해 다시 스콜라주의가 채택 되고, 이러한 변증의 과정을 거치면서 16, 17세기까지 건전했던 신학들이 18세기로 넘어가면서 1825년을 마지막으로 개혁파 정통주의의 경건과 지식의 온전한 결합의 시대가 끝이 나고 이성으로 흐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의 역사에서는 종종 간과하지만 종교개혁과 경건주의시대 사이에 개신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 네덜란드에서 일어납니다. 역사적으로 ‘나데레 레포르마티오’(Nadere Reformatio) 라고 제 2의 종교개혁 운동입니다. 역사적으로 기스베르투스 보에티우스, 윌리엄 에임즈(William Ames, 1576-1633), 페투루스 판 마스트리히트 등이 활동하였습니다. 특히 이 일을 위하여 당시 우트레흐트 대학의 신학 교수였던 보에티우스가 아주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17세기 말과 18세기에는 교리 보다는 삶이라는 구호를 내건 경건주의운동이 일어납니다. 독일의 할레 대학을 중심으로 진젠도르프 백작(Nicolaus Ludwig Zinzendorf, 1700-1760)과 프랑크푸르트의 목회자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 1635-1705) 등에게서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 후로는 경건주의 시대가 지나가면서 계몽주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과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자유주의 사상이 들어오게 되고, 계몽주의의 망명아래 기독교는 엄청난 타격을 받고 쓰러지게 됩니다. 그리고 1900년대에 접어들면서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이성주의도 계몽주의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오늘날은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자유주의, 동시에 과학주의에 신물이 나서 무엇인가 초월적인 것을 꿈꾸는 신비주의, 진리가 기독교에만 있겠느냐고 이야기하는 다원주의, 인간중심주의적인 인본주의운동들이 아주 혼란스럽게 얽혀있습니다.
C. 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은 발견한 성경의 진리들, 믿음으로 알게 된 지식들을 인과관계 속에서 엮으면서 체계를 형성하고, 가르치고 전파할 수 있는 체제를 세운다는 점에서 학문입니다. 그러나 학문의 대상이 신입니다. 유한자는 무한자를 파악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인간에게 알리기를 기뻐하십니다. 계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종교 행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지식이 신학의 질료가 됩니다. 그래서 신학은 다른 학문과는 다르게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해야 하며 철저히 공부해야 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입니다. 즉, 신학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가르침과 모든 규칙을 포괄합니다. 신학은 ‘삶의 방식’(way of living)에 대한 지식입니다. 페투르스 판 마스트리히트가 ‘교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다’(doctrina est viendi Deo per Christum)라고 정의한 것도 바로 신학의 이러한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계몽주의 시대를 거쳐 19, 20세기 넘어오면서 삶의 지혜(sophia)로서의 신학에 대한 관점을 거의 다 상실하였습니다. 모든 신학의 목적은 ‘삶의 방식’(the way of living)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참된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경건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하나님이 세계를 어떤 의미로 창조하셨고 인간은 어떠한 위치이고 나에게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알고, 그 앎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상이 없는 경건도 경건이 없는 사상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경건은 우발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삶 전체를 포괄하는 체계에서 우러납니다.
III. 우리 시대에 신학을 한다는 것
A. 거목의 숲을 꿈꾸며
조국교회가 아름다운 거목의 숲이 되기 위해서는 목회자는 큰 나무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은 이러한 거목의 숲이 사라져 가는 살림 황폐화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무가 어렸을 때는 산의 신세를 지지만, 나무가 자란 후에는 산이 그들에게 신세를 집니다. 거목과 같은 목회자가 될 것인가 분재와 같은 목회자가 될 것인지를 생각하며 우리가 목회자로서 자신을 제대로 준비하며 살고 있는 지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더욱이 우리는 그 어는 시대보다도 보편적인 가치를 부인하는 상대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는 다원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더욱 배척을 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믿는바 신학의 내용 뿐 아니라 그것을 믿지 않으려는 이 세상의 정신에 대하여도 숙고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B. post-modernism과 탈신학화
1. 모더니즘과 탈근대주의
오늘날 교회가 기독교사상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그것을 실용적이지 않은 공리공담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반지성적인 태도는 심각한 질병이며 이로 인하여 신자들은 교회로부터 자신들이 믿는바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배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시대정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계시와 은총 아래 복종하여야 할 이성은 계몽주의를 통하여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없이도 인간의 이성만으로써 인간의 도덕규범을 위한 보편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모더니즘은 데카르트를 통해서 도입되고 칸트(Immanuel Kant) 같은 사람에 의하여 발전됩니다. 그들은 이제껏 존재론 중심 인간의 사고 체계를 인식론 중심으로 전환시켜 버림으로써 존재하시는 하나님보다 인식하는 인간을 사유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성이 판단의 최고의 기준이고 권위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공통적인 도덕적 감각이 있으므로 통일적인 체계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근대주의(modernism)입니다. 그러나 이십 세기에 들어서서 두 번의 세계대전과 많은 사회악들을 경험하면서 인간들은 이성을 신뢰하며 그것을 우위에 두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하여 회의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는 이성의 퇴위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절대적 가치는 없으며 세계의 목적이나 초자연적 의도는 없으며, 과학적인 법칙의 우연한 연속이 존재할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해체주의, 허무주의, 실존주의가 들어오고, 니체, 사르트르, 하이데거 같은 사상가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탈근대주의(post-Modernism)입니다.
2. 지식의 대상: 하나님+세계+인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과 구속 계획을 따라 살기 위해서는 세 대상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세계와 인간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지식은 보편적 존재로서의 인간 일반과 개별적 존재로서의 ‘나’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런데 세 대상에 대한 지식들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잘 계시되었고, 성경은 그리스도를 통한 지식의 계시의 정수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과 학문을 통하여 이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여 살도록 창조된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큰 의무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교리학교에 입학한 교인들에게 외우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스투데오 에르고 숨’(studeo, ergo sum) 즉, 나는 공부한다. 고로 존재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페투루스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을 해설하는 가운데, “인간의 행복은 인간의 ‘인텔렉투스’(intellectus), 지성에 속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행복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라면 그것은 지식을 통해서 획득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하여 신학 뿐 아니라 다른 모든 학문들을 진지하게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C. 개혁신학: 그 불멸의 가치
개혁신학은 우리의 신앙과 신학, 그리고 목회에 있어서 불멸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개혁신학이야말로 성경적인 기독교를 가장 잘 가르쳐 주는 신학사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변하는 진리를 변화하는 시대 속에 어떻게 적용하며 복음 사역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탁월한 기준과 방향을 제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1. 외로운 섬 하나,「기독교강요」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의 신학 사상이 개혁주의적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존 칼빈의『기독교강요』를 꼽습니다. 칼빈이 위대한 종교개혁의 신학자임에 틀림이 없고, 그의 책도 탁월함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한 권이 모든 개혁신학을 대변하지는 못합니다. 그 책은 거대한 개혁신학(여기서는 좁은 의미의 개혁신학을 가리키는 것임)의 역사적이고 찬란한 스펙트럼 중 중요한 줄기 중 하나일 뿐입니다. 더욱이 오늘날 개혁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조차도 신학교 시절에 그 책을 완독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 책은 원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본격적으로 성경 읽기 전에 읽는 기독교신앙에 대한 입문서입니다. 존 칼빈의 저작들을 열심히 탐구하여야 할 뿐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개혁신학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은 종적으로는 초대와 중세, 그 후에 일어난 후기 개혁파 정통주의와의 연관성 속에서, 횡적으로는 계몽주의와 근대주의, 후기 근대주의와의 연관성 속에서 탐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개혁신학의 탐구를 위하여 최소한 다음의 공부가 필요합니다.
2. 역사적 맥락에서 개혁신학을 공부함
첫째로, 보편교회와 그리스철학에 대한 공부입니다. 역사적인 맥락에서의 개혁신학을 공부할 때 이 둘의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철학의 영향으로 잘못된 것들과 유익하게 이바지한 것들을 구별하는 세심한 분석 작업과 판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상당한 양의 공부를 해야 합니다.
둘째로, 종교개혁과 인문주의에 대한 공부입니다. 인문주의의 이해 없이는 종교개혁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세속적 인문주의와 그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인문주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종교개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그 후에 전개되는 계몽주의에 대한 연구, 특히 18세기의 영국의 경험주의와 신플라톤주의운동과 함께 생겨나게 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의 학문적 부흥과 계몽주의와의 연관성에 대한 공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특히 당시 철학적 논의의 중심지였던 스코틀랜드가 어떻게 시간이 흐르면서 신학이 인본주의적인 부패에 물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은 매우 유익한 연구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전개되는 보다 더 극단화되어 간 인본주의와의 관계성을 살펴보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러한 시대정신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부흥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개혁파 정통주의(Reformed Orthodoxy)에 대한 공부입니다. 종교개혁 제3세대 이후로부터 시작되는 개혁파 정통주의에 대한 연구는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중요성과 한계를 아울러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대의 종교개혁가들이 굵은 붓으로 그려놓은 기독교 신학을 상세화하는 작업에 헌신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슐라이어마허(Friedrich Daniel Ernst Schleiermacher, 1768-1834) 이후로 개혁파정통주의 신학은 16세기 종교개혁 신학을 이성주의로 물들인 신학이라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편견이라는 사실이 최근 약 30년 동안의 연구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밝혀지면서 이제는 대체로 17세기의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에 대한 연구 없이는 개혁신학을 제대로 공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정통주의에 대한 이해는 이미 그 이전 세대들이 이루어놓은 중세와 인문주의, 중세와 종교개혁 사이의 역사적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연구의 업적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혁파정통주의 신학의 유산들 안에서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비옥한 신학적 자양분들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자료들이 라틴어와 화란어, 독일어, 불어들로 되어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틈나는 대로 라틴어를 익혀 그 자료들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상당부분의 자료들이 이미 그 당시 영어로 번역되기도 하였으므로 더욱더 연구에 도전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개혁파정통주의 신학의 유산들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우리의 목회와 선교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대사회와의 적실성이라는 한계들을 인식하면서 이 자료들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현대사회와 우리의 신학의 적실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또 다른 고민과 공부와 준비가 필요합니다.
IV. 그러면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시간관계상 저는 신학공부에 필요한 모든 학문의 범주와 저자들을 여러분들에게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개혁신학의 줄기, 그리고 현대사회에서 확고한 기독교신학을 가지고 목회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준비와 신학 자체의 분야들 중 교의학을 중심으로 주요 저자들을 소개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저작들을 구해서 꾸준히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A. 교과과정에 충실할 것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는바와 같이 신학교 시절의 우리는 대부분 과중한 교회사역과 많은 교과과정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 공부와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하는 신학공부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를 찾아야할지를 질문합니다. 이에 대한 저의 답은 분명합니다.
첫째로 할 수 있으면 신학교 1,2학년 시절에는 목회사역에 뛰어 들지 말고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은 교회에 출석만 하고 아무 봉사도 하지 말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교회에서 부지런히 봉사하여 꼭 필요한 사람이 되십시오. 교회에 여러 봉사들 중 여러분들은 영혼을 직접 다루는 일에 헌신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교사이든지 혹은 교육전도사이든지 혹은 무보수 전도자이든지 관계없습니다. 다만 영혼을 구원하고 회심에 이르게 하고 돌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가르치는 그 일을 위해 기도와 말씀으로 섬기며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그 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헌신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목회의 근육이 자라는 시기와 공부의 근육이 자라는 시기가 겹치기 때문에 둘 다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학교 커리큘럼에 충실하기 바랍니다. 그러나 학교 공부는 학교에서 끝내십시오. 그리고 토요일과 주일 월요일 3일 동안에는 교회봉사와 나름대로 세워놓은 장기적인 신학공부의 계획을 따라 독서하고 명상하십시오. 특히 방학 동안에는 꼭 필요한 시간만큼 헌신적으로 교회에 봉사하고 공부할 시간을 확보하여 마음을 쏟아 부으며 목회자로서 준비되기 위한 필수적인 공부들을 해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셋째로 아무리 목회사역이 바쁘고 힘든 일이 많아도 공부에 끈을 놓지 않으려는 과감한 결단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덜 자고 덜 쉬고 덜 먹으면서 공부에 마음을 쏟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얼마 후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B. 신학적 사유: 준비와 학문들
그러면 신학적인 사유를 위해서 어떤 준비와 학문들을 할 것인가?
첫째는 언어습득에 몰입을 해야 합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 영어, 라틴어를 부지런히 공부해야 합니다. 개혁파 신학을 위해서는 화란어 공부를 권장하며 독일어, 중세 불어 공부를 하면 아주 좋습니다.
둘째는 인문학적인 소양을 강화해야 합니다. 문학, 역사, 철학 공부를 계속해야 합니다. 과거와는 달리 공부할 수 있는 길이 상당히 많이 열려 있어 마음만 먹으면 사실 공부할 기회가 많습니다.
셋째는 철학을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주의 할 점은 객관적인 거리를 늘 유지하고, 절충주의적인 방식을 사용함으로 철학 사상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선 그리스철학부터 시작해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부터 플라톤(Plato, 424/423-348/347),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 플로티누스(Plotinus, 204/205?270)라는 사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특별히 플로티누스의 『엔네아데스』(Enneades)는 기독교신학을 조직화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 책입니다.
넷째는 자연과학에 대해서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신학 자체 안에서 보지 못했던 신학의 아름다움을 천문학을 공부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다섯째는 현대사회와 세계관에 대해서 공부해야 합니다. 프란시스 쉐퍼(Francis A. Schaeffer, 1912-1984)와 그의 계승자들인 낸시 피어스(Nancy R. Pearcey), 찰스 콜슨(Charles Colson) 그리고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의 저작들, 특히 개혁신학의 입장에서 교회와 현대사회의 관계를 선교와 연관 지어 광범위하고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는 데이비드 웰스(David Wells)의 4부작, 『신학실종』,『거룩하신 하나님』,『윤리실종』,『위대하신 그리스도』는 반드시 필독해야 할 책 입니다. 그 외에도 일반학문 분야와 기독교학문 분야에서의 과학, 철학에 관한 책들과 현대사상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수집하고 틈나는 대로 읽으시길 바랍니다.
C. 신학 자체의 분야들
1. 교의학과 성경신학의 중심성
신학 자체의 분야들은 교의학 혹은 조직신학과 성경신학은 물론 교회사 혹은 역사신학, 실천신학, 선교학 등 제 분야에 대하여 골고루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시간관계상 이 모든 것들을 제시하고 저자들을 소개할 수는 없어서 교의학 분야를 중심으로 여러분들이 꼭 공부해야 할 저자들을 역사의 순서를 따라 여러분들에게 제시하고자 합니다.
2. 보편교회의 신학
첫째로 초대교회 교부들에 대한 공부입니다. 초대교회 교부들 가운데 이레네우스, 오리겐, 터툴리아누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 그리고 갑바도기아 교부들 중에서 유명한 세사람 나지안수스의 그레고리(N. Gregoprius, 329-390), 바실(Basilius the Great, 330-379), 니사의 그레고리(Gregorius of Nissa, 335/40-394)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실상 동방교회의 마지막 신학자인 다메섹의 요한은 매우 중요한 저자입니다. 특별히 그의 『지식의 원천』(The Fountain of Knowledge)이라는 작품을 비롯하여 교의학에 관한 글들을 숙독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중세교회 교부들에 대한 공부입니다. 중세로 넘어가면 일평생 읽을 결심을 해야 하는 아우구스티누스를 만나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반드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저자입니다. 왜냐하면 역사상 나타난 모든 기독교신학의 공통적인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정통교회의 신조들과 종교개혁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신비주의자들 그리고 대부분의 중세철학자들, 그리고 18세기의 기독교 유신론의 신학, 현대저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신학자의 학문의 뿌리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대충 몇 권의 책을 읽고 넘어갈 저자가 아닙니다. 가능하면 그의 저작 전체를 숙독하기를 바라며 그것이 불가능하면 우선 그의 중요한 신학 저작들만이라도 숙독하여야 합니다. 특히 지금까지 기독교뿐만 아니라 철학에 영향을 주고 있는 선악, 인간의 의지와 자유, 시간과 영원에 관한 그의 사유는 주제별로 한 학기 이상씩 탐구하여야 할 매우 중요한 기독교신학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동방교회의 마지막 신학자인 다메섹의 요한(John of Damascus, 645/676-749)은 매우 중요한 저자입니다. 그 다음은 안셀무스와 피터 아벨라르도스(Peter Abelardus, 1079-1142)입니다. 칼빈에게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던 클레르보의 베르나르(Bernard of Clairvaux, 1090-1153)가 있습니다. 그의 그리스도와 연합의 교리는 칼빈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아랍 철학과 유대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아비첸나(Aviccena, 980-1037)와 아베로에즈(Averoez, 1126-1198)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대철학자 가운데는 유대교의 맥락에서 풀어놓았던 마이모니데스(Moses Maimonides, 1135-1204) 한 사람 정도만 기억 하면 됩니다. 알렉산드리아 필로(Philo of Alexandria) 같은 사람을 공부하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셋째로 스콜라주의에 대한 공부입니다. 스콜라주의로 넘어오게 되는데 대 알베르투스(Albertus Magnus, 1200-1280), 프란치스코 학파의 보나펜츄라(Bonaventura, 1217-1274), 그리고 거대한 산맥이 나오는데 토마스 아퀴나스가 나옵니다. 이 사람도 사실은 개혁신학과는 안 맞는 면도 많이 있지만, 신구교를 막론하고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이 세 사람은 가톨릭 신학의 기초가 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여러면에서 개혁신학자들에게 풍부한 신학의 자양분과 신학 방법론을 가르쳐준 인물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 사람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고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과 신학은 반드시 한번 살펴보고 넘어가기 않으면 안 됩니다. 특히 그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은 한권으로 된 축약본이 아니라 전체를 약 10여년에 걸쳐서 읽을 결심을 하고 공부하여야 합니다.
넷째로, 14세기 스콜라주의에 대한 공부입니다. 14세기 스콜라주의의 첫 번째 문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열었고 마지막 닫는 문은 둔스 스코투스(Duns Scottus, 1265-1308)에 의해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다섯째로, 근대로 가는 길목에 대한 공부입니다. 윌리암 오캄(William Occam, 1288-1348)과 유명한 실재론, 유명론, 관념론 논쟁에 대한 역사가 나옵니다. 이 시기는 중세 철학이 붕괴되고 분열이 일어나는 역동적인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서 탐독할 수는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존재론에 대한 논쟁들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그 핵심적인 내용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특히 이 시기는 존재론 중심의 철학에서 어떻게 인식론 중심 철학으로 넘어가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데카르트의 사유의 자양분도 바로 이러한 중세철학의 붕괴와 도전 속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개혁파 정통주의와 후기 개혁 신학자들의 형이상학에 큰 영향을 주었던 후사의 니콜라스(Nicholas of Cusa, 1401-1464)에 대해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3. 루터와 칼빈 이후 종교개혁자들과 후예
여기서는 루터와 칼빈 이후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들, 곧 개혁파 정통주의자들 중 신학적으로 공부하여야 할 중요한 인물들을 선별적으로 제시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주요 저작들을 숙독함으로써 개혁신학의 굵은 선과 함께 다양한 스팩트럼을 아울러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종교개혁 2세대에 대한 공부입니다. 종교개혁 2세대에 넘어가서는 칼빈, 츠빙글리, 필립 멜랑히톤(Phillip Melanchton, 1497-1560), 볼프강 무스쿨루스(Wolfgang Musculus, 1497-1563), 하인리히 불링거(Johann Heinrich Bullinger, 1504-1575), 그 다음에 아주 중요한 인물이 나오는데 피터 마터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 1500-1562)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안드레아스 히페리우스(Andreas Hyperius, 1511-1564), 피에르 비레(Pierre Viret, 1511-1571) 같은 사람이 나옵니다.
둘째로, 전성기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에 대한 공부입니다. 전성기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에는 테오도레 베자(Theodore Beza, 1519-1605), 자카라이아 우루시누스(Zacharius Ursinus, 1534-1583), 프란시스쿠스 유니우스(Franciscus Junius, 1545-1602), 윌리엄 퍼킨스(W. Perkins, 1558-1602), 부카누스(Buccanus), 윌리엄 에임즈, 아만두스 폴라누스(Amandus Polanus, 1561-1610), 프란시스쿠스 고마루스(Franciscus Gomarus, 1563-1641), 요한 폴리안더(Johann Poliander, 1568-1646)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에티우스, 존 오웬, 피터 판 마스트리히트, 튜레틴이 있습니다. 튜레틴은 개혁파 정통주의 역사에 빛나는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변증신학강요』(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 라는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특히 튜레틴의 변증신학 강요는 현대 개혁신학자 찰스 핫지(C. Hodge, 1797-1878)의 조직신학의 모체입니다. 튜레틴은 역사상 가톨릭과 기독교 이단들에 대해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신학자 중 한 사람이었으며 이단적 사상에 맞서서 기독교 진리를 옹호하기 위해 변증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내용이 쉬운 책은 아니지만 영어로 번역되어 있고 이 책을 읽는다면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지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또한 마스트리히트의 『이론실천신학』(Theoretico-Practica Theologia)은 개혁파 정통주의 역사에 있어서 길이 빛나는 교의학 교과서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성경 다음으로 탁월한 책이라고 극찬하였던 이 책은 라틴어로 쓰여 있으며 그 중 일부가 영어로 번역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최근 예일대학의 교수 안드리안 네일러(Adriaan C. Neele)가 그의 신학의 일부 논제에 대한 개관을 연구한 책, 『Petrus Van Mastricht』(Brill Academic Pub, 2009)를 내놓았으니 숙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브라켈(W. a Brakel, 1635-1711)이라는 사람이 『the Christian Resonable Service』을 저술하였습니다. 또한 토마스 리즐리(Thomas Ridgley, 1667-1734), 요한 하인리히 하이덱거(Johann Heinrich Heiddeger, 1633-1698)가 있습니다.
4. 현대개혁신학을 공부함
첫째로, 미국 복음주의의 뿌리 논쟁에 대한 공부입니다. 현대 개혁신학의 뿌리에 대한 논쟁에 있어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의 복음주의의 뿌리가 개혁파 정통주의인가, 혹은 18세기에 일어났던 부흥운동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복음주의는 이 둘을 모두 뿌리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좋은 증거가 조나단 에드워즈입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여러 명의 개혁파 정통주의 저자들을 인용합니다. 그리고 또한 부흥운동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대복음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역사를 함께 추적해 가야합니다.
둘째로, 지난 세기 3대 칼빈주의자들에 대한 공부입니다. 헤르만 바빙크, 아브라함 카이퍼, 벤자민 워필드입니다. 이 사람들의 저작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중요성은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틈나는 대로 이 세 사람의 작품들을 읽어가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학과 철학이 재조명되고 있는데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셋째로, 널리 읽히는 개혁주의교의학에 대한 공부입니다. 윌리엄 쉐드(William G. T. Shedd, 1820-1894),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1873-1957), 찰스 핫지, A. 핫지(A. Hodge, 1912-1979)입니다.
넷째로, 현대신학자들에 대한 공부입니다. 현대 신학자들 중에는 개혁신학과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도 있지만 꼭 읽어야 하는 사람들은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W. Pannenberg), 유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입니다. 이후에 나온 사람들은 개혁파 신학자들, 안토니 후크마(Anthony Hoekema, 1913-1988), 로버트 레이몬드(Robert Reymond), 도날드 맥클라우드(Donald MacLeod), 로버트 리담(Robert Letham), 싱클레어 퍼거슨(Sinclair Ferguson), 코넬리우스 반틸(Cornelius Van Til, 1895-1987), 에드먼드 클라우니(Edmond Clowney, 1917-2005),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 1862-1949), 그레엄 골즈워디(Graeme Goldsworthy), 고든 스파이크맨(Gordon J. Spykman, 1926-93), 리차드 린츠(Richard Lintz),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 빌럼 판 엇 스페이거르(Willem van't Spijker), 리차드 멀러(Richard Muller), 특히 리차드 멀러의 『Post-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Baker Academic, 2003) 네 권의 책은 꼭 읽기를 권합니다.
V. 주님을 영화롭게 한 지성
A. 마르틴 루터의 승리
1519년 7월 4일부터 14일까지 라이프지히(Leipzig)에서 마르틴 루터는 당대 최고의 입문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던 에크(Johann Eck)와 공개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 사람은 잉골슈타트(Ingolstadt) 대학의 교수였습니다. 에크는 루터의 논제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 '오벨리스크'(Obelisk)라는 제목으로 책을 써서 루터를 공격했습니다. 오벨리스크는 호메로스의 저작들 안에 있는 글에 표시되었던 사본학적인 표시인데, 이것은 원래의 본문인 것 같지 않다고 의심이 되면 붙이던 것이었습니다. 즉, 루터의 주장이 진리가 아닌 것 같다는 뜻으로 오벨리스크를 낸 것입니다. 그러자 마르틴 루터는 ‘아스테리스크’(Asterisk) 라는 제목으로 책을 썼습니다. 아스테리스크는 호메로스의 저작을 사본 비평하는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분에다가 표시를 해 놓는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인문학적인 지식과 소양, 누구와 논쟁해도 우리가 믿는 개혁신앙이 참된 진리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저력이 있었기 때문에 당대의 논쟁가들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었습니다. 이때 한 증인은 루터에 관하여 이러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중간 정도의 키로, 근심과 연구로 인해 살갗 위로 드러나는 뼈를 숫자까지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말라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음성은 또렷하여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는 학식이 풍부하며 성경을 많이 알고 있었으며 희랍어와 히브리어에 정통하여 성경에 관한 여러 가지 해석들을 충분히 판단 할 수 있었다.” 그는 천재적인 기억력과 폭포수와 같은 달변, 섬뜩할 정도의 통찰력으로 기독교 신앙을 변증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가로서의 지성적 준비가 충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B. 영력만큼 귀한 지성
1536년 어느 날 로잔에서 공개회담이 열렸습니다. 가톨릭과 개혁파 신학자들 양측이 만나서 토론을 통해 도시 전체가 가톨릭에 남든지 개혁파로 돌아가든지 합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3일 동안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칼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날의 주제는 성만찬이었습니다. 가톨릭 측의 유능한 변론자인 미마르가 등장해서 연설문을 읽고, 종교개혁가들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교부들의 교훈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고 비난을 했습니다.
바로 그 때 마른 체구의 젊은이 한 사람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칼빈이었습니다. 그는 준비된 원고가 없는 상태에서 가톨릭 측에서 제시한 여러 가지 의견들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든 논거들이 철저히 성경과 교부로부터 이끌어져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개혁파 사람들이 무시한다고 비난하던 교부들의 글을 통해서 자신들이 이렇게 궁지에 몰리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칼빈은 먼저 교부 터툴리안의 견해를 인용한 후 그것을 주석하기 시작했고, 교부 크리스소스톰의 설교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출처를 밝히기를 “이상은 크리스소스톰의 설교 제 11장 중간 부분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을 인용하면서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 23장 마지막 부분이며...” 마니교도인 아만투스를 반박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을 또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상 제가 말씀 드린 것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디만투스 반박 중간 부분에 있는 내용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편 98편 주석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요한복음 설교 시작부분인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8번째 설교 아니면 9번째 설교일 것입니다.”
칼빈은 상당한 시간동안 교부들의 저작들을 인용하고 주석했습니다. 그는 원고도 책도 없이 완벽하게 정리된 기억 속에서 어마어마한 신학적 자료들을 그들 앞에 쏟아냈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 사람의 천재성이 드러난 순간이 아니라 자기 신앙에 의해서 확증되고 성령에 의해서 감동이 된 거룩한 진리가 드러나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가톨릭 측의 사제들도 경악에 가득 차 질린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때 프란시스 교단의 탁발 수도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대중들에게 인기를 모으던 유능한 가톨릭의 설교자, 장 탕디로서 개혁을 반대하는 연설을 하며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성서가 말하는바 성령을 거스르는 죄라는 것은 명백한 진리에 반하는 완고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들은바 칼빈 선생의 연설을 통해 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 동안 무지 때문에 오류 속에서 살았고, 그릇된 가르침을 널리 퍼뜨려 왔습니다. 나의 무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거슬려 행했던 모든 것에 대해서 용서를 빕니다. 여기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도 내가 그릇된 것을 가르친 것에 대해서 용서를 구합니다. 나는 이 순간부터 그리스도와 그의 순수한 가르침만을 따르기 위해 성직의 옷을 벗어버리겠습니다.”
120명의 사제들이 수개월 내에 수도원을 탈출해서 개혁교회로 돌아오고 로잔은 개혁신앙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은 바람 잡는 허세, 소위 이야기 하는 영력이라고 하는 겉만 번지르르한 태도, 뭔가 사람들을 휘어잡으려는 정치적인 수단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심오한 능력과 강한 은혜가 있었고 거기에는 아주 분명한 지식에 대한 신념, 그 진리를 능히 확신하고 변증할 수 있는 담대함과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창, 칼로도 이룰 수 없었던 엄청난 일들을 스위스 로잔에서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종교개혁의 기폭제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의 신학적인 지식은 영적인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고, 새롭게 태동하는 교회에 형태를 부여하며, 개혁 신앙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백하게 정리함으로써 사실상 종교개혁을 마무리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적으로 준비된 칼빈을 사용하셔서 역사적인 개혁을 마무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목회자가 신학적인 식견으로 무장되는 일은 그의 영력만큼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V. 결론: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부지런히 학문을 습득하기 위하여 애쓰십시오. 항상 마음속에 ‘나는 고3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치열하게 공부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준비 되어야 합니다. 항상 게으름과 싸우며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쓰지 마십시오. 무엇보다도 지식을 얻기 위하여 전심전력하여서 지성적인 진보가 눈에 띄게 해야 합니다.
둘째는 성경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절대 자유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내 영혼 날마다 주를 만나 신령한 말씀을 배우도다.’ 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말씀을 보고 탐구하십시오.
셋째는 성경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진리라는 것을 느끼면서 공부하는 사람일지라도 공부를 많이 하면 교만해 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는 기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마지막으로 교회에서 봉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몸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고 교회를 온전히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지만 이렇게 준비된다면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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