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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뜨거운 의자] 타인을 악한으로 만드는 ‘박해감’을 아시나요?
뉴스언론 김형경 소설가............... 조회 수 1101 추천 수 0 2014.06.23 18:10:55
직장 생활을 하는 후배 여성들이 가끔 조직에서 처신하는 어려움에 대해 토로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업무보다 힘든 것이 사람 관계라고 말한다. 업무는 혼자서만 열심히 하면 되는데 인간관계는 이쪽에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저쪽에 독자적이고 유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타인이 있기에 어렵다고 한다. 그런 이들 중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부장님이 나를 미워하는 것 같다”고 느끼는 이도 있다. 그런 말을 하는 여성은 대체로 온순하고 조용한 말투를 사용하며, 선량한 사람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웃으면서 말해준다. “부장님은 자기를 미워할 여유가 없어요.” 그러면 후배 여성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중간 관리자쯤 되는 자리에 있는 이들은 회사 업무에 책임이 무거워지고, 집에서 가장으로서의 역할에도 하중이 더해진다. 목소리 커진 아내와 의견을 조율하는 문제, 사춘기로 접어든 자녀들의 반항을 받아주는 문제 등이 산적해 있다. 어쩌면 노년에 접어든 부모가 치매에 걸려 긴급한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부장의 연배에 있는 이라면 자기 문제가 너무 절박해서 부하 직원을 미워하는 데까지 사용할 시간, 열정이 없다. 부장님이 원하는 것은 부하 직원이 맡은 일을 잘해내는 것뿐이다. 그러면 후배 여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고 해서 한순간에 모든 의혹이 거둬진 것 같은 표정은 아니다.
의외로 많은 젊은이들이 연장자인 누군가가 자신을 미워한다고 느끼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 감정이 ‘박해감’이며, 사실무근의 인식 오류라고 설명하면 그런 단어를 처음 들어본다고 말하기도 한다. 박해감 역시 생애 초기 부모와의 관계에서 만들어 가지는 감정이다. 아이의 공격성을 소화시켜주지 못한 채 고스란히 분노로써 되돌려주는 부모는 아이의 내면에 박해감을 심어줄 수 있다. 아이의 실수를 감싸주지 않고 처벌부터 하는 부모,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까지 아이에게 가혹한 책임을 묻는 부모, 자기의 불안 때문에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는 부모들과 관계 맺으며 자란 아이는 당연히 부모가 자신을 공격한다고 느낀다. 성격 내부에 박해감이 자리 잡게 되며, 공격하는 부모와 관계 맺기 위해 온순하고 순종적인 태도를 만들어 가진다. 성인이 된 이후 그들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공격한다는 감정을 자주 경험하며, 공격을 피하기 위해 선량하고 유혹자적인 태도를 생존 전략으로 사용한다.
그들은 심지어 타인의 중립적 언어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느낀다. 후배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특정 행동에 대해 “왜 그랬어요?”라고 묻는 일이 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그 질문에 대해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자기 입장을 해명하는 식으로 대답한다. 왜 그랬느냐는 질문을 공격이나 비난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질문을 변형시켜야 한다. “그 행동의 이유와 배경을 설명해보세요”라거나 “그렇게 말한 자기 마음은 무엇인 것 같아요?”라고 다시 묻는다. 그러면 비로소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자기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런 다음 나오는 대답은 대체로 이것이다. “잘 모르겠어요.”
박해감을 느끼는 이가 내면에 억압하고 있는 진짜 감정은 분노이다. 그동안 분노는 공격성이나 우울증으로 표현되었다. 사회적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허용되던 시기에 남자들은 분노를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직접 표현했다. 상대적으로 화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여성들은 분노를 자기에게 돌려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남자들의 분노 표현은 점차 금지되고 여자들의 자기표현은 다소 허용되는 사회 분위기로 변화하자 많은 이들이 분노를 소극적으로 표현하는 통로를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남녀 구분 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분노 대신 박해감을 더 많이 경험하는 듯하다. 인터넷에 악플을 쓰거나, 타인을 험담하는 이들의 공통된 감정도 시기심이 포함된 박해감이다. 그런 이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공격한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타인들을 공격한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의 말이나 글에 대해서도 공격받은 듯 느끼거나 모욕감을 경험한다. 앞서 달리는 초보 운전자에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초보 운전자는 단지 운전에 서툴렀을 뿐인데 박해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가 자기 앞길을 가로막으며 알짱거렸다고 느낀다.
그들은 심지어 타인의 중립적 언어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느낀다. 후배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특정 행동에 대해 “왜 그랬어요?”라고 묻는 일이 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여성들이 그 질문에 대해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거나 자기 입장을 해명하는 식으로 대답한다. 왜 그랬느냐는 질문을 공격이나 비난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면 질문을 변형시켜야 한다. “그 행동의 이유와 배경을 설명해보세요”라거나 “그렇게 말한 자기 마음은 무엇인 것 같아요?”라고 다시 묻는다. 그러면 비로소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 자기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그런 다음 나오는 대답은 대체로 이것이다. “잘 모르겠어요.”
박해감을 느끼는 이가 내면에 억압하고 있는 진짜 감정은 분노이다. 그동안 분노는 공격성이나 우울증으로 표현되었다. 사회적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허용되던 시기에 남자들은 분노를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직접 표현했다. 상대적으로 화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던 여성들은 분노를 자기에게 돌려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남자들의 분노 표현은 점차 금지되고 여자들의 자기표현은 다소 허용되는 사회 분위기로 변화하자 많은 이들이 분노를 소극적으로 표현하는 통로를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남녀 구분 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분노 대신 박해감을 더 많이 경험하는 듯하다. 인터넷에 악플을 쓰거나, 타인을 험담하는 이들의 공통된 감정도 시기심이 포함된 박해감이다. 그런 이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공격한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타인들을 공격한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의 말이나 글에 대해서도 공격받은 듯 느끼거나 모욕감을 경험한다. 앞서 달리는 초보 운전자에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초보 운전자는 단지 운전에 서툴렀을 뿐인데 박해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가 자기 앞길을 가로막으며 알짱거렸다고 느낀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
▲ ‘남이 나를 이유없이 미워한다’고 느끼는 감정이 ‘박해감’
이는 자기 자신의 내면에 억압된 분노·왜곡된 시기심에 의해 나타나
사람들은 타인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현실 받아들여야
성인으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초기부터 품었던 의문이 있다. 우선, 사람들은 왜 자기와 아무 관계없는 타인들을 미워하고 심지어 비난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다음은 누군가에 의해 혹평이나 악담을 듣는 이들을 실제로 만나보면 제삼자를 통해 받은 이미지와 아주 다르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뒷담화하며 비판했던 당사자보다 한층 성숙하고 온전한 인격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투사의 감정에 대해 알고 나서야 그 기이한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었다. 박해감을 가진 이들은 타인을 악한이나 공격자로 만드는 기술에 능하다. 선한 얼굴, 온순한 태도로 상대가 자기를 공격했다고 말하면서 경쟁자를 제거하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혹은 약자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상대방의 공격 행동을 실제로 유도한다.
박해감을 가진 이들에게 공격하고 협박하는 부모가 있었던 것처럼, 그들 역시 부모의 행동을 내면화시켜 가지고 있다. 그런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부모가 되면 똑같은 것을 자녀에게 물려주게 된다. “어떻게 부모에게 이럴 수 있느냐, 마음이 아프구나”라고 말하면서 자식이 불효자처럼 느끼게 만들고, “그렇게 멋대로 살다가 부모가 세상을 떠나봐야 그때 후회하지”라며 자녀를 감정적으로 협박한다. “우리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로 희생자 역할을 과장하면서 자식에게 죄의식과 부채감을 떠안기기도 한다.
치유와 변화는 당사자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왜곡된 인식을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된다. 부장님은 부하직원을 미워할 여유가 없으며, 사람들은 이유 없이 타인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실은 모든 사람들이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느라 타인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객관적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가 자기를 공격한다고 느끼는 마음은 “땅바닥이 벌떡 일어나 이마를 때렸다”고 말하는 만취자의 언어처럼 농담이거나 망상이다.
<김형경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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