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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3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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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본문: 시편 37편 1∼6절
독일 동화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너무 너무 가난한 부부가 살았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밤 그 부부가 사는 집에 문득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내가 그대들의 소원 세 가지를 들어 주겠노라. 어서 말해 보아라’. 그러자 한참 춥고 배고팠던 참이라 그 부인이 불쑥 ‘아이고, 그저 뜨끈뜨끈하고 구수한 쏘세지 하나 먹었으면 좋겠네’ 하였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식탁 위에 그 부인이 마음에 그린대로의 그런 쏘세지가 턱 나타났습니다“. 그것을 본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고 이 미련퉁이 마누라야 소원 하나가 날라 갔잖아! 이 마누라야 너나 실컷 먹어라!’. 그러자 그 쏘제지가 그 마누라 입에 꽉 처박히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사람 죽네. 숨 막혀 죽것네!’. 아무리 쏘세지를 떼 내려해도 쏘세지는 그 마누라 입에 철커덕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부부는 소원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쏘세지를 입에 달고 살 수 없는 법. 할 수 없이 ‘이것 좀 떼어 주오!’ 하니 쏘세지가 뚝 떨어졌습니다. 세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맞아 이들 부부가 이룬 소원이 무엇이었습니까? 겨우 쏘세지 하나입니다.
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야기 속의 가난한 부부는 겨우 쏘세지 하나를 얻는데 그쳤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가 한참 잠에 취해 있는데 비몽사몽간에 천사가 나타나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곧 바로 말씀드릴 수 있는 소원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소원이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네 진짜 소원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주저할 사람이 많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 그런가요?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 10장 46- 52절에 보면 소경 거지 바디매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디매오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하고 주변 사람에게 묻습니다. 누가 오고 계시는가? 누군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고 계신다고 알려줍니다. 바디매오는 아! 나사렛 예수, 그 분말인가!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지릅니다. 소원이란 본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지극히 어려운 것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 제목이며 소망이며 바램입니다. 아울러 소원이란 그 본성 상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바디매오에게는 그런 소원이 있었습니다. 바디매오는 그 소원을 이룰 수 있는 길은 오직 나사렛 예수 뿐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시라는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매오는 <소원>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소원을 이루기 어려운 것은 소원을 가로막는 방해와 장벽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디매오가 소원을 이루려고 예수께 나가고자 하였을 때 예수를 둘러싼 사람들이 그를 가로막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그를 꾸짖었습니다. 이놈아 시끄럽다. 거지 주제에 웬 소란이냐. 우리가 예수님과 귀한 대화를 나누는데 네 놈이 왜 방해하느냐. 좀 조용히 못해!
오늘 우리의 현실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슨 소원을 이루려고 하면, 이놈아 네까짓 게 될 법이나 하냐. 넌 안돼. 네가 아무리 그래봤자 네 출신이 뻔한데 될 것 같니. 송충이는 그저 솔잎을 먹어야 하는 게야. 다시 말하자면 외적으로 조롱, 멸시, 방해, 무시, 억압의 방해가 있고, 내적으로는 열등감, 주눅, 의심, 좌절, 포기와 같은 장벽이 있습니다.
그래도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3)는 말씀은 과연 진리입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왜 나를 그토록 간절히 찾았느냐?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네 소원이 무엇이냐?’
바디매오는 대답했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얼마나 분명합니까? 주저함도 의심도 없었습니다. ‘보기를 원하나이다!’ 바로 그것이 바디매오의 소원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무엇이라 말씀 드리겠습니까? 바디매오처럼 ‘분명한 소원’을 말씀 드릴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소원은 곧 믿음입니다. 믿음 없는 소원은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신 말씀이 우리 모두의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일반성도의 7대 소원입니다.
첫째, 심신의 건강을 원하고
둘째, 마음의 평화를 원하고
셋째, 신앙을 원하고
넷째, 행복한 가정생활을 원하고
다섯째, 적성에 맞는 창조적인 일터를 원하고
여섯째, 좋은 친구를 원하고
일곱째, 재물을 원한다고 했다.
그런데 대개의 세상 사람들은 재물만 가지면 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존 록펠러라는 사람은 "돈밖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 말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가 교회에서 조용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토마스야, 토마스야. 너는 나에 대해 참 잘 썼구나. 그래,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잘 썼다고 주님이 칭찬한 것은 당시 그가 저술하고 있던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을 일컫습니다. 이 책은 수천 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으로 512개 질문을 던지고 그걸 세분해 무려 2669개의 논문에 가까운 대답을 했습니다. 또 예상되는 반박 질문 1000개에 대한 답변이 실려 있습니다. 토마스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오직 당신뿐입니다, 주님!(Only yourself, Lord).”
이 한 마디는 그의 사상을 완성하고 모든 저술을 능가합니다. 또한 가장 위대한 질문에 대한 가장 위대한 대답입니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해 모든 성도의 단 한 가지 기도 제목이자 유일한 소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넉넉히 주시는 ‘하나님’을 구합시다.
어릴 때 우리는 주님의 복을 받고 싶어합니다. 조금 자라서 우리는 오직 주님을 알고 싶어합니다. 조금 더 자라면 우리의 소원은 오직 그분을 위하여 죽기 원하게 되며 우리의 피가 그분을 위하여 흘려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450장 ‘내 평생 소원 이것뿐’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1)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
(2) 꿈같이 헛된 세상 일 취할 것 무어냐
이 수고 암만하려도 헛된 것 뿐일세
(3) 불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구주의 권능 크시니 이기고 남겠네
(4) 금보다 귀한 믿음은 참 보배되도다
이 진리 믿는 사람들 다 복을 받겠네
(5) 살같이 빠른 광음을 주 위해 아끼세
온 몸과 맘을 바치고 힘써서 일하세 아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각자 소원이 있을 줄 압니다. 열왕기상 3장에 보면 솔로몬이 왕이 되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분별하는 지혜를 달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소원을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그에게 주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위대한 신앙인 사도 바울의 소원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는 것”(빌 1:20)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작사한 찬송가가 450장 1절입니다. 이 찬송가는 “내 평생소원 이것뿐 주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별하는 날 주 앞에 가리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 왕처럼, 사도 바울처럼, 어떻게 하면 성경에 나오는 이들처럼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4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장 먼저 주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Seek your happiness in the LORD, and he will give you your heart’s desire”(시37:4)라고 돼 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대신에 “주 안에서 여러분의 행복을 찾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나의 행복을 찾는 일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또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 길을 그에게 맡겨야 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37:5).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소원이 무조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소원은 사람에게 있지만 그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시145:19).
하나님은 당신을 기뻐하는 자들의 마음의 소원을 묵살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악인이 형통하며 번영하도록 방치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마음의 소원에 따라 공의로 불의한 자들에게 갚으십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실 것입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의 소원은 남북통일입니다.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가이오를 향한 마음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요한3서 1:2).
나의 소원은 온몸과 마음을 바쳐 주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나의 소원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나의 소원은 하나님께 사랑받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소원은 많은 사람을 의의 길, 진리의 길로 인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소원은 성령의 열매,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소원은 하나님 나라 확장의 귀한 도구로 쓰임받는 것입니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가 평화롭게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고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가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소원은 온 세계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찬송하는 날이 속히 오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 성도들의 소원은 재림하실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소망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안에서 간절한 소원을 갖게 하옵소서. 나의 소원을 이루어주십시오.. 나의 인생에 나를 홀로 있게 마시고 언제나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시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나의 소망의 샘은 마를 수밖에 없사오니 내가 주의 은혜를 입어 소망 중에 거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안전한 손안에서 저희를 보호하시되, 거친 세파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소서. 어려움을 당할 때, 저희들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소서.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우리의 힘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소서. 인간의 수단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소서. 그리고 소외계층을 향한 우리의 관심이 깊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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