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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법률을 위반한 죄를 지었다며 그를 가두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양심이나 도리에 따르려고 발버둥쳤던 사람이다. 위 지회장은 삼성전자서비스 기사였다. 어릴 때부터 전자제품을 뜯어보고 전자회로 세트를 사서 납땜해가며 만들기를 좋아했다. 결국 전자통신을 전공해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에 입사했다. 그는 삼성 유니폼을 입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게 됐다.
그러나 삶은 고단했다. 끊임없이 주어지는 일 때문에 점심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집에 갈 수 없었다. 죽어라 일을 하는데도 손에 쥐는 돈은 몇 푼 되지 않았다. 10여년 전만 해도 수리하러 가면 ‘기사님 고생하신다’며 밥까지 챙겨주던 고객들도 갈수록 달라졌다.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고압적인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 늘었다. 회사에선 고객만족도를 철저히 관리했고 ‘삼성은 소리치면 다 해준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세계적인 일류 회사의 서비스 엔지니어라는 자부심보다는 ‘하류인생’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점심도 못 먹고 밤 10시나 11시에 들어오는데도 돈을 많이 못 벌어다주니까, 미안해서 본인이 알아서 밥 챙겨먹는다. 애들은 곤히 자고 있고, 양치하러 욕실에 들어가서 피곤에 절어 있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면 이유 없는 눈물이 떨어지곤 한다.” 그가 전한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들의 삶이었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니지 싶어 회사에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다 그는 해고됐다. 멀쩡했던 이가 빠져나갈 정도로 극심한 고통의 나날들을 겪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출범했고 그는 지회장을 맡았다. “다른 말보다, 그냥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고 했다. 헌법과 근로기준법대로, ‘준법’을 원했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것은 스스로 생각할 때, 죄였다.
조합원들은 출범식 때만 해도 ‘투쟁’이란 말조차 어색하고 쑥스러워했으나 1년이 지난 지금은 눈빛부터 달라졌다. 그 시간 동안 한 명의 동료가 과로로 숨지고,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 본관 앞 찬 바닥에서 노숙하며 겨울을 났고, 지난 5월부터 한 달 반가량 다시 비바람을 맞으며 버텼다. 그들의 변화는 피눈물나는 투쟁의 산물이다. 그런 그들이 결국 지난달 말 회사 측과 노조활동 보장, 노동조건 개선을 담은 단체협약을 체결해냈다. 그 씨앗은 위 지회장이 뿌렸다.
평범한 사람이 평생 살면서 감옥살이를 할 확률은 극히 낮을 것이다. 위 지회장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다르다면, 전자기타를 멋들어지게 치고 “컴퓨터 음악도 좀 한다”며 어깨를 으쓱하는 정도일 것이다.
다르다면, 남들보다 부당함에 대해 좀 더 분노하고 행동할 줄 알았던 점일 것이다. 회사 측은 노조와 합의하면서 위 지회장과 라두식 수석부지회장, 김선영 영등포분회장 등 구속자들의 석방 탄원서를 내기로 했다. 우리는 ‘가만히 있어라’가 빚은 참극에 여전히 몸서리치고 있다. 위 지회장이 ‘가만히 있지 않은 죄’에서 속히 풀려나기를 바란다.
<박철응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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