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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민주주의를 제외하고 자율적 결사체를 장려했던 체제는 없었다. 결사체들은 쉽게 불온시되고 ‘집단 이기주의’로 비난받았다. ‘결사체 중의 결사체’라고 할 수 있는 정당 역시 사회를 부패·분열시키는 파벌집단으로 매도됐다. 이 점에서는 고대 민주주의나 공화주의도 다르지 않았다. 집단의 이름으로 특정 정치 조직에 투표하고 그들이 정당 정부가 되는 일은 오로지 현대 민주주의에서만 가능했다. 현대 민주주의의 최초 모델을 일궈 낸 영국에서 민주주의가 ‘정당이 정부가 되는 것’으로 정의됐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우리 역시 박근혜 정부나 이명박 정부, 노무현 정부, 김대중 정부와 같은 사인화된 호칭이 아니라 새누리당 정부, 민주당 정부로 불릴 수 있어야 책임 정치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기 있는 정치인일수록 소속 정당과의 일체감보다는 무당파적 개인 이미지를 부각하려고 애쓰는 것, 나아가 정치적 계파들이 공통의 가치나 비전보다는 친박-반박, 친이-반이, 친노-반노, 친디제이-반디제이 등 사인화된 대통령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게 볼 수는 없다.
정치가 결사체적 기반을 상실하고 개인화될수록 사회는 불평등해진다. 민주주의는 시민을 위한 시민의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져서가 아니고, 갈등하는 이해당사자들 사이에서 다원적 결사체들이 사회적 균형을 형성할 수 있을 때 좋아진다. 비정규직이든 빈곤층이든 그들이 향유해야 하는 결사의 자유와 교섭 능력이 좋아지는 것 없이, 제아무리 개인적 야심 없는 정치가를 선출하고 그들이 시민을 위한 행정을 펼친다 한들 사태가 개선되지는 않는다. 우리사회의 경험을 돌아보더라도, 그간 복지예산은 계속해서 늘었지만 빈곤과 불평등 문제는 악화됐다. 정규직으로의 전환 사례는 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비정규직 문제는 더 나빠졌다.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관련 제도도 확장됐지만 한국경제가 자유롭고 공정해지지는 않았다. 무상급식도 실시되고 학생인권조례도 만들어지고 대안학교나 혁신학교와 같은 실험이 있었지만 교육문제가 좋아진 것도 아니다. 아마 앞으로도 서민을 위하고 비정규직을 보호하고 빈곤층과 약자를 대변하겠다는 정치가들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책의 수요자로서 이해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조직할 권리는 강화되지 않은 채 정책의 공급자가 갖는 선의만 앞세워진다면, 그것이 온정주의일 수는 있어도 민주주의와는 관련이 없다. 온정주의는 오히려 권위주의의 다른 얼굴일 때가 많다.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자원이 결코 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지 않은 조건에서 시민이 개인으로 참여하고 투표하는 것에 그친다면, 민주주의에서도 소수의 사회적 강자들이 승자가 되는 결과가 얼마든지 만들어진다. 어떻게 해야 갈등하는 이익들 사이에 결사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관료제와 법인기업이라고 하는 거대 조직들 속에서도 평등한 시민권이 실현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정당들이 시민 권력의 조직자이자 책임정치의 보루가 될 수 있을까. 오늘날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과제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데 있지 않을까 한다.
<박상훈 |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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