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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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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외국인이고 한국인의 마음에 들고 싶다면 배워둘 게 하나 있다. 한국인이 흔히 외국인으로부터 듣고 싶어 하는 말이다. “된장찌개 좋아해요.” 이런 말을 덧붙이면 더 좋다. “김치 만들 줄도 알아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이 서울에 왔을 때 그렇게 했고, 한국인들은 좋아했다. 지난주 한·중 서울 정상회담의 핵심은 북핵, 경제협력이 아니었다. “친척집 나들이 같은 방문”의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그건 시진핑 부부의 감성적 발언, 부드러운 말투, 다정한 몸짓, 공손한 태도에서 찾아야 한다. 대국의 지도자가 왜 “겸허하게 배우는 국가가 되겠다”고 한국 대학생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는가라는 질문 속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이 모든 측면에서 겸손한 것은 아니다. 베트남·필리핀을 대할 때는 오만하고 거칠다. 한국인을 향해 “이익보다 의리”라고 하면서도 북핵 입장을 박근혜 대통령이 바라는 대로 바꾸지도 않았고, 북한이 싫어하는 드레스덴 통일 구상을 지지함으로써 북한을 자극하지도 않았다. 그는 한국을 영향권 안에 두고 싶어 하지만, 그 때문에 북한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북한을 버리고 한국을 얻을 계산이었으면 그렇게까지 겸손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주목할 것은 그가 근육과 미소 둘 다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한국에 근육을 드러내지 않고 미소 띤 얼굴로 다가오고 있는 현실이다. 박 대통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중국이 띄운 상승 기류에 살짝 올라탔다. 지난 5월 미국이 불편해하는 중국 주도의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에 통일장관을 보냈고, 이번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가입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박 대통령은 한국에 깊숙이 들어오는 중국과 어디까지 갈까, 아니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대중(對中) 접근은 미·중 경쟁, 한·일 및 중·일 갈등, 북·일 관계 진전과 빚어낼 동북아 정세변동을 고려한 전략적 구상 속에서 추진되는 것일까? 아마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드레스덴 통일 구상,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있지 않으냐고 할 것이다. 이 구상이 신뢰·평화가 남에서 북으로, 통일의 길로, 동북아로, 유라시아로 부챗살처럼 뻗어나가는 부푼 꿈을 담고 있는 건 맞다.
외교부의 설명 자료에 따르면 신뢰 프로세스는 드레스덴 통일 구상을 촉진시키고, 드레스덴 구상은 남북간 신뢰를 쌓고 평화를 정착시켜 동북아 안보위협을 완화함으로써 주변국에 평화와 이익을 준다. 역으로 동북아 구상으로 역내 국가간 신뢰·평화가 증진되면 드레스덴 구상이 지향하는 통일을 앞당기고 역내 국가들이 북한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신뢰 프로세스에 자연스레 동참한다. 이는 유라시아를 평화의 대륙으로 만드는 데도 이바지한다. 이렇게 하나의 구상은 다른 구상의 한 측면이자 서로 원인이고 결과가 되어 밀고 당기며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얽혀 있다. 이 얽힘이 논리상의 것만은 아니다. 이 구상들은 어떤 물리적 실체에 의해서도 하나로 얽혀 있다. 바로 북한이다.
이 얽힘 상태에서 북한이라는 고리가 빠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상상할 필요 없다. 우리는 이미 목격하고 있다. 남과 북은 불신 프로세스의 한가운데 있다. 신뢰 프로세스는 북·일 간에 진행되는, 남의 일이다. 대북 불신과 혐오를 가득 담아 던진 드레스덴 제안은 북한에 의해 즉각 거부당했다. 에너지·환경 등 가벼운 의제 중심의 협력을 정치·안보 분야로 확산한다는 동북아 구상은 두 불안 요인인 북한·일본에 막혀 있다. 평화를 주도하겠다던 한국은 북·일과 대립하며 갈등을 주도했고, 동북아는 더 불안해졌다. 유라시아로 가는 길은 북한에 의해 막혀 있다.
북한에 손 놓고 있는 사이 껍데기만 남은 구상들은 겉돌고, 한반도와 주변 안보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북한 문제 실패는 모두의 실패를 낳을 수 있다. 한국이 언제까지 중국과 탱고를 출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남북관계, 북핵 문제를 우회하는 길은 없다. 어느 길로 가도 다시 부딪친다.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를 보내는 북한과 마주할 건지, 서해에서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북한군과 대포로 맞설 것인지 다를 뿐이다.
이 상황에서 외교장관은 사돈 남 말 하듯 “작은 사건으로도 큰 충돌 가능성” “아시아 질서의 대변화”운운하며 평론가 행세를 하고 있다. 이 나라의 새 외교안보 사령탑이 된 장군 출신은 지금 정세를 아는지 모르는지 임명되자마자 전방으로 달려가 “적이 도발하면 가차 없이 응징”하라며 용맹을 과시했다. 선군사상을 버려라. 외교의 시대다.
<이대근 논설위원>
박 대통령은 한국에 깊숙이 들어오는 중국과 어디까지 갈까, 아니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대중(對中) 접근은 미·중 경쟁, 한·일 및 중·일 갈등, 북·일 관계 진전과 빚어낼 동북아 정세변동을 고려한 전략적 구상 속에서 추진되는 것일까? 아마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드레스덴 통일 구상,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있지 않으냐고 할 것이다. 이 구상이 신뢰·평화가 남에서 북으로, 통일의 길로, 동북아로, 유라시아로 부챗살처럼 뻗어나가는 부푼 꿈을 담고 있는 건 맞다.
외교부의 설명 자료에 따르면 신뢰 프로세스는 드레스덴 통일 구상을 촉진시키고, 드레스덴 구상은 남북간 신뢰를 쌓고 평화를 정착시켜 동북아 안보위협을 완화함으로써 주변국에 평화와 이익을 준다. 역으로 동북아 구상으로 역내 국가간 신뢰·평화가 증진되면 드레스덴 구상이 지향하는 통일을 앞당기고 역내 국가들이 북한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신뢰 프로세스에 자연스레 동참한다. 이는 유라시아를 평화의 대륙으로 만드는 데도 이바지한다. 이렇게 하나의 구상은 다른 구상의 한 측면이자 서로 원인이고 결과가 되어 밀고 당기며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얽혀 있다. 이 얽힘이 논리상의 것만은 아니다. 이 구상들은 어떤 물리적 실체에 의해서도 하나로 얽혀 있다. 바로 북한이다.
이 얽힘 상태에서 북한이라는 고리가 빠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상상할 필요 없다. 우리는 이미 목격하고 있다. 남과 북은 불신 프로세스의 한가운데 있다. 신뢰 프로세스는 북·일 간에 진행되는, 남의 일이다. 대북 불신과 혐오를 가득 담아 던진 드레스덴 제안은 북한에 의해 즉각 거부당했다. 에너지·환경 등 가벼운 의제 중심의 협력을 정치·안보 분야로 확산한다는 동북아 구상은 두 불안 요인인 북한·일본에 막혀 있다. 평화를 주도하겠다던 한국은 북·일과 대립하며 갈등을 주도했고, 동북아는 더 불안해졌다. 유라시아로 가는 길은 북한에 의해 막혀 있다.
북한에 손 놓고 있는 사이 껍데기만 남은 구상들은 겉돌고, 한반도와 주변 안보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북한 문제 실패는 모두의 실패를 낳을 수 있다. 한국이 언제까지 중국과 탱고를 출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남북관계, 북핵 문제를 우회하는 길은 없다. 어느 길로 가도 다시 부딪친다.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를 보내는 북한과 마주할 건지, 서해에서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북한군과 대포로 맞설 것인지 다를 뿐이다.
이 상황에서 외교장관은 사돈 남 말 하듯 “작은 사건으로도 큰 충돌 가능성” “아시아 질서의 대변화”운운하며 평론가 행세를 하고 있다. 이 나라의 새 외교안보 사령탑이 된 장군 출신은 지금 정세를 아는지 모르는지 임명되자마자 전방으로 달려가 “적이 도발하면 가차 없이 응징”하라며 용맹을 과시했다. 선군사상을 버려라. 외교의 시대다.
<이대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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