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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스4: 6-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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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모함과 누명
본문: 에스라4: 6- 16
사자가 병이 들자 이리를 포함한 많은 동물들이 병문안을 했습니다.
이리는 여우를 죽이기 위해 사자에게 『이곳에 여우만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여우가 왔을 때 사자는 왜 이리 늦었느냐며 소리를 질렀습니다.『대왕님의 약을 구하느라고 늦었습니다』『그래 약은 구했느냐?』『이리의 가죽을 뒤집어 쓰시면 낫는다고 합니다』 사자는 즉시 이리를 잡아 가죽을 뒤집어썼습니다. 여우는 물러나면서 중얼거렸습니다.『이리야. 네가 사자에게 선한 말을 했더라면 내가 악으로 갚지 않았을텐데…』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북 이스라엘의 왕으로 이방 여인 이세벨을 왕후로 삼았습니다. 이세벨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로서 바알 신과 그의 선지자들을 왕궁으로 데리고 와서 이스라엘을 우상의 나라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실한 사람들을 핍박했던 것입니다. 아합의 죄 가운데 또 다른 것을 말한다면 이웃의 소유를 탐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르엘에 있었던 아합의 별궁 근처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는데 그것을 탐하다가 결국 이세벨로 하여금 나봇을 죽이는 더 큰 죄를 범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세벨은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불량자 두 사람을 거짓 증인으로 세워 나봇을 모함하여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습니다.(왕상21:10)
마침내 이세벨은 죄악으로 인해 창에서 떨어져 죽고, 그 피와 살을 개들이 먹습니다.(왕상9: 30- 37)
산마을 밑에 금광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영광광산에서는 금광개발을 위해 산마을 주변 일대의 땅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금광개발을 하면 수박농사도 지하수 고갈로 망해 버릴 것입니다. 이미 일부 사람들은 영광광산에서는 매수했습니다. 이 목사는 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와서 희망을 일군지가 이미 30년이 넘었습니다. 이 희망의 땅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없습니다. 일부의 사람들이 땅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자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여러분들의 의견을 묻기 위해 오늘 모임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의견을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영산광산에서 돈을 받는 이장이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오래 살았지만 우리 동네 밑에는 금광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땅을 비싼 값으로 치러 준다고 하니 그것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였으면 합니다. 꼭 이곳에 있어야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산마을에는 이미 천여 명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중풍에 걸린 사람, 무의탁 노인, 장애인 대부분 홀로의 힘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이곳이 영광광산에 팔린다면 이 사람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반대입니다.”
이 목사는 단호히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면 산마을만 팔지 않으면 될 것 아닙니까? 우리들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것입니다. 그러니 반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근 마을 사람을 대표한 김 이장은 강력히 매각할 것을 말했습니다. 주변 마을에서는 금광개발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산마을에서는 끝까지 금광개발을 반대하였습니다. 주민들을 설득하고 서명을 받았습니다. 금광개발은 일시 중단되었습니다. 그러자 영광광산은 산마을을 상대로 업무방해명목으로 고소하였습니다. 이 목사는 업무상 횡령과 사기 등의 혐의로 고발되었습니다. 경찰과 군청 직원들이 합동으로 산마을에 들이닥쳤습니다.
“무슨 이유입니까?”
“횡령 및 부동산 투기 의혹과 불법 산림훼손에 관한 진정서가 접수됐습니다. 우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경찰에 불려갔습니다. 경찰에서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검찰에 사건은 넘어갔고 산마을에 대한 계좌추적 등 전방위 내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신문에 ‘산마을 성자 20억 횡령 의혹’이라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그동안 성자로 불리던 이 목사는 죽일 놈이 되었습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공개재판을 받아 버렸습니다. 산마을을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어 버렸습니다. 후원금은 급감했습니다. 회원들은 항의 전화를 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어려운 살림에도 후원하였는데 목사님이 횡령하다니요. 그럴 수 있습니까? 양의 탈을 쓴 이리였군요.”
산마을은 '비리의 온상'이 되어 버렸고, 설립자 이 목사는 '파렴치한 사기꾼'처럼 매도되었습니다. 천 여 명이 가족이 살고 있는 산마을은 현상유지조차 힘겨웠습니다. 자원 봉사자들도 실망하였습니다.
“목사님이 그럴 줄 몰랐습니다. 어떻게 후원금을 횡령합니까? 어떻게 목사님이 현행 법을 어깁니까?”
“아닙니다. 목사님이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입니다. 금광개발을 반대하자 우리 산마을을 없애기 위해 내부자와 공모하여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목사님이 동생 앞으로 땅을 매입했는데도 그것이 횡령이 아닙니까?”
“시설이 부족하여 땅을 매입할 때 농지라 어쩔 수 없이 동생의 이름으로 우리 복지 재단에 포기각서를 써 주고 매입한 것입니다.”
“그건 모르는 소리입니다. 목사님은 분명 불법을 저질렀습니다. 차명으로 농지매입을 했습니다.”
매사 이 목사에게 반대하던 회개를 맡은 김 장로가 말했습니다.
“김 장로님이 그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면서요?” 이사건의 진실과는 상관없이 언론에 보도됨으로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떠났습니다. 1심 공판만 2년에 걸쳐 25회가 열렸습니다. 그때마다 이 목사는 법정에 출석해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산마을은 다리 밑에서 죽어가는 노인을 간호하면서 시작하였습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노인을 살려야 하겠다고 산마을 교회에 데려와 보살폈습니다. 노인은 살아났고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언론의 힘은 무서웠습니다. 그 후 무의탁 노인, 장애아, 중풍병자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후원자도 봉사자도 밀려 왔습니다. 그런데 산마을을 그렇게 큰 봉사재단으로 만들어 놓은 언론에 의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려면 가난한 사람보다 더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유재산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믿어 주었고 계속적으로 산마을을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이미 떠나버렸습니다. 10년이라는 긴 법정 싸움으로 가까이에서 섬겼던 봉사자들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을 알아 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이 싸움에서 포기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음해하는 자들을 사랑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10년 만에 대법원에서 ‘업무상 횡령과 사기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성경을 폈습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 2:20)”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창세기 39장에 이하에 보면 요셉은 애굽이라는 나라의 왕의 시위 대장(오늘날로 치면 대통령 경호실장)과 같은 보디발의 집 노예로 팔려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 요셉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은혜를 입어 그 집의 가정 총무로 발탁이 됩니다.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 하고 자기 식구 외에는 간섭 하지 아니 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그 후에 그 주인의 처가 요셉에게 눈짓 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은 용모가 준수 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음탕한 보디발의 아내인 것입니다. 그 여자는 아직 젊고 준수한 요셉에게 반하여 눈짓 하며 동침 하자고 날마다 유혹을 합니다. 이에 요셉이 거절하자 어느 날 강제로 요셉의 옷을 벗기고 노골적으로 요구하자 요셉은 그 옷을 그 여자의 손에 남기고 도망을 합니다. 자기 정욕을 채우지 못한 분함에 오히려 이 여자는 요셉이 자기를 겁간 하려 했다고 모함하여 결국 이일로 요셉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그는 왕께 범죄한 자들을 가두어두는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옥에 있는 중에 함께 갇혀있는 두 관원의 꿈을 해석해 주었고, 2년 후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 석방되어 일약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서 6장에 보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잡혀간 다니엘은 바벨론 왕인 다리오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이를 시기한 간신배들은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자기 나라를 향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알고 다니엘을 모함하기 위해 왕에게 다음과 같은 금령을 세우라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30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 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을 것입니다." (단6:7)
이에 다리오 왕은 이 조서에 어인을 찍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했습니다. 간신배들은 다리오 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면서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서에 도장을 찍었던 다리오 왕은 어쩔 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었습니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마자 왕은 급히 사자굴로 가서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죽은 것으로 알았던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습니다"(단 6:22)
무릎으로 사는 사람은 이러한 기적의 역사가 수없이 많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그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니엘을 모함(참소)하여 다니엘을 사자굴에 넣게 한 자들은 도리어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죽게 되였습니다.(단6:24)
오늘날에도 거짓으로 남을 모함하고 누명을 씌워 돈을 뜯어내거나, 명예를 잃게 하거나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하는 일들이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딤후3: 1- 3)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성전재건을 하려하자 사마리아인들은 성전재건을 방해하기 위해 아닥사스다 왕에게 거짓으로 모함하는 고소를 합니다.
‘왕에게 아뢰나이다 당신에게서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우리가 이제 왕궁의 소금을 먹으므로 왕이 수치 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사람을 보내어 왕에게 아뢰오니 왕은 조상들의 사기를 살펴보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왕들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지라 이 성읍이 무너짐도 이 때문이니이다 이제 감히 왕에게 아뢰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이 준공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건너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에스라4:12- 16)
이 모함으로 인해 아닥사스다는 사마리아 거주민들의 계략에 넘어가 결국 성전재건이 중단되었습니다.
즉 사단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됨으로 인해 자신의 영력이 축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의 하수인들을 동원하여 이 일을 방해합니다. 그럴수록 성도들은 믿음 가운데서 인내하며 더욱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는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마10:22).
우리는 모함과 누명을 씌워서라도 우리를 쓰러뜨리려는 사단의 세력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능력 있게 싸워나가야 할 것입니다.(엡6:11) 억울한 모함과 누명을 썼을 때에 결코 낙심좌절하지 말고 역경 속에서 오히려 더 큰 믿음의 능력을 발휘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시다.
* 기도 : 사랑의 주님,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시며 인도하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옵소서. 눈물로 씨를 뿌리지만 기쁨으로 거두게 하옵소서. 오, 나의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이시여, 북한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억울함을 굽어 살피사 저들을 구원하여 주소서. 제가 저를 위해 스스로 변호하지 않겠사오니 주께서 나의 변호사가 되어 주소서. 그러나 주여, 행여나 이 억울함의 과정에 저의 잘못함이 있었다면 저를 교정하여 주소서. 다만 주 앞에 올곧게 서는 자가 되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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