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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빌4: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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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훈 목사 |
참고 : | 예수그이름교회 |
생각 (빌4:6∼7)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능력은 무한하십니다. 끝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생각은 좋은 생각이 있고 나쁜 생각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있고 부정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고 영의 생각이 있습니다. 살리는 생각이 있고 죽이는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이 운명을 결정합니다.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 영의 생각, 살리는 생각은 마음을 새롭게 하고, 삶을 건강하게 하고 미래를 창조해 줍니다.
남편 때문에 힘든 분이 계십니까? 아내 때문에 불행 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아내나 남편 때문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생각이 불행하게 하고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려움 중에 생각이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생각을 소유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동차 운전을 합니다. 전진 기어를 넣으면 앞으로 나갑니다. 그러나 후진 기어를 넣으면 후진합니다. 기어를 넣는 대로 자동차는 움직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행복의 기어로 들어가면 행복으로 나가고 불행의 기어로 넣으면 불행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똑같은 상황 속에서 생각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서 삶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은혜를 생각하면 은혜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불행 하다는 생각하면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은 환경을 탓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생각이 환경을 바꿀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복을 받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환경의 지배를 받지 마시고 여러분의 생각이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변할 때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바울 사도께서 본문 빌립보서를 어떤 형편에서 썼습니까? 옥중에서 빌립보서를 썼습니다.
감옥 안에 있으면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이 넘치는 권면의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감옥이 그를 불행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옥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아니 감옥 밖의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은혜로운 생각, 감사한 생각, 행복해 지는 생각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무리 은혜로운 생각을 하려고 해도 복 받고 은혜 받을 만한 생각의 근거가 없으면 결국은 나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바울사도는 우리에게 복 받을 생각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 즉 여러분의 생각은 말을 통해서 표현됩니다.
(마 12:36-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은혜로운 사람,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원망과 불평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도리어 감사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어려움 중에도 큰일 났네, 차라리 죽을까. 다 너 때문이야 그렇게 말하지 마시고 문제없다, 잘 될 것이다. 기도하니까. 여보. 힘냅시다.
(고후 1:9 하)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벧전 3:10)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왕하 6:24) 선지자 엘리사 시대에 아람군대가 이스라엘의 사마리아 성을 완전히 에워 쌓습니다, 포위하였습니다. 성문출입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성안에 있는 사람들은 양식 공급이 끊어짐으로써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위기에 직면하였습니다.
(28-29) 어떤 사람은 너무 배가 고파서 아들을 삶아 먹었습니다. 오늘은 네 아들을 내어 놓으라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이런 극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왕하 7:1)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한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서 말합니다.
(왕하 7:2) ---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아람 군대가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그래서 해질 무렵에 도망하였습니다. 장막과 나귀와 말을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습니다.
한편 사마리아 성문밖에 있던 4명의 나병환자들이 생각하기를 기왕에 굶어죽을 바에야 우리가 아람나라 군대 진영으로 가자하고 그 곳에 갔더니 군대는 다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진영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었습니다.
다른 장막에 가서도 마찬가지로 먹고 마시고 갖고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마리아 성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자 하고 나병환자들이 그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아람의 진영으로 나아가서 노략하니 이에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왕은 어제 엘리사가 말할 때에 하나님의 예언을 우습게 알고 불경건하게 대했던 그 장관을 문지기로 세웠습니다. 문지기 장관은 사람들이 밀고 밀어서 쓰러졌고 사람들에게 밟혀서 죽게 되었습니다. 곡식을 보고 음식을 보고도 먹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믿든지 안 믿든지 하나님 말씀대로 모든 것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믿음의 경주자들로서 승리하기 위하여 거추장스러운 것들, 불필요하고, 방해요소를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부정적인 생각과 말입니다.
(민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믿고 그 말씀 붙잡고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말씀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즉 성도는 염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구절은 ‘한 가지라도 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염려를 분석한 한 보고서가 있습니다.
100가지를 염려한다면 그 중에서 40가지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을 염려한답니다.
예를 든다면 하늘의 별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또 남은 60개 중에서 30가지는 염려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을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또 예를 듭니다. 초음파검사를 통하여 태아의 성별이 딸이라고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딸이면 어떻게 그렇게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또 30개 중에서 12가지는 건강에 대한 염려인데 예를 들면 몸이 좀 아프면 이거 죽을 병 아닌가. 어떻게 하지 그러면서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18개 중에서 10가지는 생각을 잘못해서 염려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 아이가 앞으로 성공하게 될까? 왜 벌써부터 염려합니까?
자 그렇다면 염려의 92%, 거의 전부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을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즉 대부분의 염려는 할 필요가 없는 것을 염려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염려는 막연하고 단순한 걱정일 뿐입니다.
우리 속담에 ‘걱정도 팔자야’라는 말이 있습니다. 염려하는 사람을 관찰해 보면 거의 습관적으로 염려를 끌어안고 살아갑니다. 무슨 일을 해도 걱정부터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로 번역된 헬라어 '메덴 메림나테'는 금지를 나타내는 현재 명령법으로 '염려를 중단하라'는 뜻입니다.
염려에 대한 해결책은 '기도'와 '간구'입니다. '기도'의 헬라어 '프로슈케'는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가 하나님을 향해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구'의 헬라어'데에세이'는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것을 뜻합니다.
한편 '감사함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타 유카리스티아스'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에 반드시 감사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기도하는 자가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염려하다’의 영어단어는 ‘질식시키다’ ‘목 졸라 죽이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염려하게 되면 육체와 영혼의 목을 조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질식됩니다.
염려하게 되면 생활의 활력을 잃고 자신감을 잃게 됩니다. 유익함이 없습니다.
신앙과 불신앙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생각의 차이입니다.
염려는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홍해바다도 앞길을 가로 막을 수 없습니다. 그 무엇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 막겠습니까?
이스라엘의 앞을 가로 막았던 홍해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헤엄쳐서 건넜습니까? 다리 놓고 건넜습니까? 배 타고 건넜습니까? 아닙니다. 무엇으로 건넜습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으로 건넜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말씀대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구하여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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