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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1
서산군 부석면 봉락리,
처음교회는 우리 사랑방에 괴 짝 하나 앞에 놓고
주일이 되면 전도사님 오셔서 예배드리곤 했다
십리 길 홀로 예수님과 함께 걷던 어머니
하나, 둘 동행하는 이 늘고 봉락감리교회 현판을 올렸다
2
아버지께서 산소통을 종삼아
덩~, 덩~ 교회가 열려졌음을 알리면
하나, 둘 모여 파견 나오신 전도사님 모시고
설교를 향해 앉아 봉락리에 예배가 시작 된 것이다
3
나를 잉태하고 '딸이면 목사의 아내이기를 원 합니다',
기도하신 어머니
하나 밖에 없는 딸
'왜 배고프게 살기를 기도 하느냐' 따져 묻던 나에게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며
기도로 대신하던 어머니
4
다섯 남매 조카가 다섯, 동갑나기 쌍둥이 까지
가난한 살림에 유난히 고집스럽기까지 하던 나
고등학교 진학 앞두고 신경전 벌이다 끝내
깃발 높이 쳐들고 좋아하는 나를
한숨으로 바라보시던 눈길
5
사회에 눈을 뜨자
나는 우체국 공무원 뺏지 달고 출근하게 되었다
그 날부터 앞 산 너머로 비켜가던 해, 어머니 얼굴에서 떴다
어머니 얼굴 생각하면
내 안에서 떠오르던 부푼 보름달 하나
그 때마다 사연들은 내 손을 지나쳐 또 다른 이들의 세계로 옮겨지곤 했다
6
내게 사랑이 다가 왔다
스물다섯, 소리 내지 않아도
눈이 안보일 만큼 웃게 되는 사람이 생겼다
외국에 파견 된 2 년 편지 하나에 사랑담아
오대양을 넘나들어도 행복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다시 얼굴 마주 보았을 때
우리는 토닥토닥, 투덕투덕
비온 뒤에 땅처럼 싸움도 해 보았다
그것이 결혼으로 가는 길인 줄도 모르는 듯이
7
그러나 결혼 후 채 1 주일도 안 되어
급성간염, 위염, 장티푸스, 머리 흔들림에 붙들린 남편
사 명 자
난, 나는 그 말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 고통 속에서도
수줍음만은 떨치지 못하던 미소년, 남편은 그랬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눈물 콧물 다 쏟던 날
내 머리가 시원 해졌네 남편의 한마디
‘주님 당신을 사랑 합니다’
남편의 입에서 받아낸 한 잎 고백
신학교 입학 원서를 쓰던 날은 그렇게 저물었으리라
그것은 목회의 길을 외면해 왔던 나의 길이기도 할 줄이야
8
딸 하나를 낳고 행복해하던 즈음
서울 사는 아들집에 머물며 고향교회 그리워하다
삭정이 꺽이듯 풍으로 쓰러지신 어머니 몸져누우시니
지금까지 받은 기도 되돌려 줘야할 의무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 어머니께서 천국 아버지 품에 안기는 그 날까지
지금껏 동행하신 주님으로 인해
평안한 마음 잃지 않게 하시고
소망으로 주님 나라 바라보게 하옵소서
평소 애창하시던 찬송 '내 평생소원 이것 뿐' 을 불러 드리며
올케 언니의 극진한 섬김 속에
행복한 모습으로 아버지 품에 안기셨다
9
남편은 목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아주 선한 목사' 란 칭호를 달아 주었다
주신 은혜에 마냥 행복했다
성도들은 내게서도 무언가를 얻고자 했다
내게 맡겨진 일 고단하고 무거운 짐들과의 상담이 나의 몫 이었다
그 고통의 무게들은 거름이 되고 주님의 향기가 되어
내게 시를 일깨워 주었다
그림을 그렸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10
문득 베란다 창문에 비친 어머니를 본다
'내 평생소원 이것 뿐' 찬송을 회상하며
어머니의 길을 나 또한 걷고 있음을 느낀다
끊임없는 노력
하나님의 능력은 그런 나와 함께 하시고
매일매일 은혜를 찬양하게 한다
내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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