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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
비가 쏟아졌다
달력에 적힌 내 하루분량의 시간이 분주했다
은행에 가야 했고
친구도 만나야 했고 문병도 가야했다
그러나 빗줄기가 굵기를 더해가는 동안
귓속 비의 풍경은
내 안의 나를 오른쪽부터 젖게 했고
나, 소리의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풍경 속 비를 빠져나오지 못한 채,
시간은 그런 것일까
하루쯤 일탈을 꿈꾼 적 있는가
베란다를 비워 놓고 차 한 잔 초대했다
달그락,
무심코 내려놓은 평온함이 잔 받침의 가장자리에서 몇 번쯤...
일탈이야말로 중심에 대한 얼마나 오래된 그리움의 진동인가
조용히 하루의 위치를 고쳐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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