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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4가지 정의

룻기 이한규 목사............... 조회 수 1157 추천 수 0 2014.08.05 21: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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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룻3:14-15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http://www.john316.or.kr 

사랑의 4가지 정의

(룻3:14-15)

 

< 사랑은 말이 아닌 책임입니다 >

 며칠 전 LA 다저스 소속 마이너리거 포수 올리보가 시비 끝에 팀 동료 유격수 게레로의 귀를 물어뜯었습니다. 게레로는 다저스가 거금을 들여 영입한 쿠바출신 선수로 올 시즌 크게 활약해서 구단의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귀 접합 수술로 몇 달을 결장하게 되자 결국 올리보는 팀에서 바로 퇴출되었습니다. 이빨 관리를 못해서 인생이 순식간에 추락한 것입니다.

 1986년 미국의 타이슨은 역대 최연소인 20세에 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그는 한때 37전 전승 33KO의 대기록을 세우며 핵주먹이란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가 1997년 6월에 경기하다가 상대선수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별명은 핵주먹에서 핵 이빨로 바뀌면서 복싱 역사상 가장 수치스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복된 삶을 살려면 무엇보다 이빨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중학교 때 옆 반에서 주먹 좀 쓴다는 A란 학생과 복도에서 한 판 불었습니다. 그가 친구들 보는 데서 맞아 큰 창피를 당했습니다. 그날 방과 후 2명이 저를 따라오면서 A가 또 싸움을 걸어와 후미진 주택가 골목에서 둘이 한 판 더 붙었습니다. 그때 한참 때린 후 마지막 항복을 받아내려고 머리를 헤드록으로 걸었을 때 A가 치사하고 비열하게 이빨로 저의 광대뼈를 물었습니다. 그때 분노해서 더 무섭게 때려주고 집에 왔습니다.

 그때부터 광대뼈 주위로 얼굴이 크게 부어 선풍기 아줌마처럼 되었습니다. 사람 이빨에도 독이 있어서 독사가 사람을 물으면 독사 이빨 독에 사람이 죽지만 사람이 독사를 물어도 사람 이빨 독에 독사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 부모님에 왜 얼굴이 그렇게 부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싸운 사실을 감추려고 얼떨결에 세빠뜨(셰퍼드) 개에게 물렸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부모님이 걱정하시면서 억지로 웃음을 참으셨습니다.

 다음 날 얼굴이 퉁퉁 부은 채 학교에 갔습니다. 선생님도 왜 그렇게 얼굴이 부었느냐고 했습니다. 골목에서 싸웠다면 벌을 받으니까 그때도 세빠뜨 개에게 물렸다고 했습니다. 그때 A는 저에게 감사해야 했습니다. 싸우다가 그가 이빨로 물었다고 하면 학교 주먹세계는 물론 친구세계에서도 치사하고 비열한 자로 낙인찍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최소한의 명예만은 지켜주고 싶어서 그가 이빨로 문 사실을 비밀로 해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제 별명이 세빠뜨가 되면서 전교에서 가장 유명한 학생이 되었고 선생님들도 그 별명을 다 알았습니다. 그때 개 얘기만 나오면 교실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수업하다 말합니다. “얘들아! 요새는 사람이 개보다 못할 때가 많아.” 그런 식으로 개 얘기만 나와도 다 나를 쳐다보면서 교실은 한참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사람이 유명해지는 것이 그렇게 부담되는 것인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또한 그때 핵 이빨의 무서움도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이빨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특히 이빨로 무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속어로 이빨 깐다고 하는 것, 즉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해서 좋은 인생 펼쳐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말로 흥하면 말로 망합니다. 말을 안 하면 최소한 중간은 갑니다. 말이 많은 것보다 차라리 말이 없는 것이 낫습니다.

 1970년대 말 핵 이빨로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서울 서대문의 석굴암 다방에서 디제이를 하던 서세원입니다. 그는 야한 농담을 섞어 손님들을 가지고 놀면서 몇 시간 동안 1분도 쉬지 않고 웃겼습니다. 당시 서세원이 디제이를 할 때는 다방 자리가 꽉꽉 찼습니다. 저도 서세원 때문에 석굴암 다방을 자주 갔었습니다. 정말 핵 이빨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방송인으로 떴지만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마침내 50대 중반에 목사 안수까지 받았습니다. 늦게 목사안수를 받으면 그 전의 교회와 교인들에게 직분과 호칭 문제로 부담스런 존재가 되면서 정체성 문제로 심적인 고통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목사 안수 받은 것을 후회하고 심지어는 목사 신분을 감추며 지내기도 합니다. 물론 교회개척도 시도해보지만 흔히 40대에 교회를 생짜 개척하면 성공확률이 1%이고 50대에 교회를 생짜 개척하면 성공확률이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요새 한국에서 교회가 성장하려면 배경이 있거나 일단 교회가 크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서세원 목사님은 다를 줄 알았습니다. 유명인이고 핵 이빨을 가졌고 아내 서정희 씨도 적극 도와주었고 서울 강남에서 인테리어를 잘 한 상태로 개척했으니까 금방 부흥해서 교계의 새로운 역사를 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작은 개척교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마음고생도 심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성공을 못하면 왠지 무능력하게 보입니다. 그런 시각이 가족과 교인 간의 갈등을 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일전에 TV 힐링 캠프에서 차인표는 성도다운 언행으로 불신자들도 다 칭찬했습니다. 인터넷 댓글도 대부분 칭찬 글이었습니다. 그는 기부도 은밀하게 했고 봉사도 은밀하게 했습니다. 또한 가난을 극복한 얘기도 겸손하게 했고 자랑스러운 얘기도 자랑처럼 들리지 않게 애썼습니다. 반면에 나눔의 가치관을 전할 때는 확신에 찬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는 하나님 얘기, 교회 얘기, 기도 얘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언행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언의 엄청난 전도였습니다.

 반면에 같은 날 한 케이블 TV에 서세원 목사님이 출연했습니다. 말은 여전히 잘했습니다. 하나님 얘기도 했고 은혜 얘기도 했고 목사 사역에 만족한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적인 언행의 신중함이 부족했습니다. 그 방송 이후로 서정희 씨가 운영했던 고가의 사치품 쇼핑몰 문제와 방송에 나온 화려하게 꾸민 집 문제 등이 네티즌의 집중공격을 받으면서 본인 이미지도 나빠졌고 교회 이미지도 나빠졌습니다. 사람은 다 단점이 있기에 어느 한 단면으로 쉽게 평가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한 단면이 전체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요새 무엇을 배웁니까? 입만 열었다 하면 하나님, 기도, 능력, 축복 등을 말하는 사람보다 그런 얘기를 하나도 안 하면서 언행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의 행복’을 보여주는 사람이 더 많은 영혼을 전도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래서 어떤 유명한 간증집회 인도자는 음지에서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결심하고 더 이상 간증집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핵 이빨의 허무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결국 서세원 목사님 가정에 일이 터졌습니다. 서정희 씨가 말다툼 끝에 남편이 자신을 밀쳤다고 입원한 후 남편의 접근을 금지시키고 강력히 처벌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왜 그녀가 그토록 용서를 거부하는 말을 했을까요? 그 동안 불신과 상처가 쌓였다는 뜻입니다. 아마 남편의 무책임하고 때로는 엽기적인 언행이 중요한 이유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 언행이 튀어나올 때마다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는 얼마나 속이 타고 조바심이 나겠습니까? 그래서 서정희 씨가 이불 뒤집어쓰고 운 적도 많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무책임하게 보이면 그 전에 좋게 보였던 것까지 밉게 보입니다. 그렇다면 서정희 씨에게는 서세원 목사님의 최대 장점인 핵 이빨조차 점차 밉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처럼 남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상처와 갈등도 커집니다. 게다가 딸 명의의 강남 오피스텔이 경매에 붙여질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갈등은 더 커졌을 것입니다.

 돈을 잘 벌면 믿음직하게 보고 돈을 못 벌면 무시하고 불신하는 식으로 살면 안 됩니다. 부족해도 위로하고 격려하며 배우자를 인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물론 서정희 씨도 그런 인물의 소원을 가지고 힘써 내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끔 나오는 엽기적인 언행으로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면서 극도의 실망감 때문에 결국 며칠 전의 사건이 생겼을 것입니다. 사랑은 말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책임입니다. 본문은 그런 책임적인 사랑의 중요성을 잘 말해줍니다.

< 사랑의 4가지 정의 >

 어느 날,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흉년을 피해 모압 땅으로 이주했습니다. 모압에서 엘리멜렉은 죽었지만 나오미는 두 아들을 모압 여인과 결혼시키며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두 아들도 죽으면서 세 여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오미가 한 많은 모압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는데 며느리 룻이 한사코 어머님을 모시고 살겠다고 해서 결국 두 여인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룻은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우며 시어머니를 먹여 살렸습니다. 이방여인의 지극한 효성에 동네 사람들은 다 감동했고 그 사실을 보아스도 알고 룻에게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게 했습니다. 보아스의 마음이 룻에게 있는 것을 알고 시어머니 나오미는 룻을 그의 아내로 들이려고 코치를 해주었습니다. 그 코치대로 룻은 보아스가 수확한 보리를 타작하고 파티를 끝낸 후 곡식 단 끝에 누웠을 때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습니다.

 밤중에 보아스가 몸을 뒤척이다가 자기 발치에 여인이 있는 것을 보고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룻이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여종 룻입니다.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당신은 저희 기업을 무를 자입니다.”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남편이 후손 없이 죽었을 때 가장 가까운 친족이 연을 맺어 후대를 이어주는 풍습입니다.

 기업을 무를 자가 되어달라는 룻의 과감한 청혼에 보아스는 “이 요부야!”라고 야단치지 않고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네 말대로 하겠다.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성읍 백성이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새벽까지 같이 있다가 사람들의 오해가 없도록 그 상황을 비밀로 붙이게 하고 룻의 겉옷에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지워준 후 성읍으로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 장면은 사랑이 무엇인지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사랑이 무엇일까요?

1. 계산이 없는 것

 인간적으로 보면 룻은 손해 보는 일만 합니다. 남편이 죽고 자식도 없는데 가난한 시어머니를 따라 조국을 떠난 것도 손해 보는 일이었고 친어머니도 아닌 시어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나이가 한참 많은 보아스에게 청혼한 것도 손해 보는 일이었습니다. 그처럼 계산이 없었기에 결국 다윗의 증조모가 되고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랑은 계산이 없는 것이고 계산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면서 손해도 각오하고 손해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인색하고 약삭빠르고 손해를 절대 안 보려고 하면 성공도 없고 행복도 없고 진짜 축복도 없습니다. 계산하는 마음을 잘 덜어내야 진짜 사랑과 진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계산이 없으면 사람 눈에는 어수룩하게 보이고 맨 날 손해 보고 당할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인생과 자녀와 앞날을 반드시 축복하실 것입니다.

2. 책임을 지는 것

 룻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되어달라고 했을 때 보아스는 이미 마음을 열었지만 당시 법도에 따라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으로부터 기업 무를 자의 권리를 먼저 얻으려고 이불로 들어온 룻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본문 14절에서 “룻이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는 말은 둘 사이에 육체관계가 없었음을 암시합니다.

 당시 전통에 따르면 공식 결혼 전에 성적 관계를 의심 받으면 기업을 무르는 계대 결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둘 사이의 관계가 깨끗해도 사람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었습니다. 또한 룻이 밤에 보아스의 타작마당에 함께 있었음을 사람들이 알면 보아스 자신보다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여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룻에 대한 평판이 나빠질 줄 알고 룻을 위해 그렇게 신중하게 조치한 것입니다.

 또한 당시 기업을 무르려면 상당한 책임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팔았던 땅을 희년 전에 사줄 책임도 있었고 대가 끊어진 가정의 대를 이어줄 책임도 있었습니다. 그 기업 무를 권리는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있었는데 보아스는 자기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음을 알고 그 권리를 넘겨받기 전까지는 룻에게 손을 대지 않은 것입니다. 얼마나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입니까? 사랑은 책임입니다. 진짜 사랑은 순간적인 충동을 따라 행동하지 않고 법적, 윤리적, 물질적 책임까지 지는 것입니다.

3. 사려가 깊은 것

 그때 보아스는 이불 속에 들어온 룻에게 손을 대지 않으면서도 당장 그곳을 떠나게 하지 않고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고 했습니다(13절). 밤에 타작마당을 떠나면 어두운 들판을 걷는 것도 위험하지만 이미 성문이 닫힌 상태에서 성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기에 그냥 자기 곁에 머물게 한 것입니다. 결국 룻은 새벽까지 보아스의 발치에 누웠다가 보아스가 자신의 타작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들이 모르게 하라고 해서 새벽에 조용히 그곳을 떠나 귀가했습니다(14절). 얼마나 사려 깊은 모습입니까?

 어떤 사람은 책임감은 투철하지만 너무 차갑습니다. 반면에 보아스는 책임감이 있으면서도 차갑지 않고 남의 처지를 생각할 줄 아는 사려 깊은 태도를 가졌습니다. 사랑은 열정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냉정함도 필요합니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니까 남의 눈치를 볼 것이 없다면서 “우리 둘만 좋으면 돼!”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속으로는 누구보다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해도 겉으로는 때로는 차분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 사려 깊은 태도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복된 삶이 펼쳐집니다.

 새벽에 기도할 때 보면 어떤 분은 크게 기도하고 어떤 분은 작게 기도합니다. 그때 억지로 소리를 크게 내려고 할 것도 없고 억지로 소리를 작게 하려고 할 것도 없습니다. 기도하다 보면 성령의 흐름을 느낍니다. 그 흐름을 따라 때로는 크게 해서 서로의 기도를 격려하고 때로는 작게 해서 서로의 기도를 배려하면 됩니다. 긍정적인 태도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긍정이 남에게 부정이 되지 않도록 하는 사려 깊은 태도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처럼 사려 깊은 마음을 가지고 사랑의 하모니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4. 자신을 주는 것

 보아스는 그 밤의 일을 비밀에 붙이게 한 후 룻에게 보리를 잔뜩 담아주었습니다. 당장 가난한 룻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한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빈손으로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고 하며 룻의 시어머니까지 생각했습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을 위해 더 주고 싶어 하는 모습입니다. 보아스가 자신의 식량을 준 것은 결국 자신을 준 것입니다.

 사랑의 가장 핵심 요소는 자기를 주는 것입니다. 자기를 주는 것이 없는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로는 드리고 옆으로는 나누고 아래로는 베푸는 ‘드나베의 삶’이 넘치는 신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입니다. 자기 손을 펴지 않고 그 손을 모아 기도만 하는 것은 기복주의입니다. 두 손을 모아 기도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두 손을 펴서 나눌 줄도 알아야 합니다.

 손을 꽉 쥐면 하나님이 주지도 않고 주어도 받지 못합니다. 두 손을 펴야 하나님이 그 편 손에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와 구원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기도할 때 ‘자신을 주는 사랑’을 수시로 새롭게 다짐하십시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도 없이 달라고만 하면 오히려 기도응답이 더 멀어집니다.

 어느 날, 한 동안 뜸하던 사람이 갑자기 찾아오거나 전화를 걸어 한참 돌려 말하면 뭔가 부탁하려는 것입니다. 마침내 그로부터 돈 얘기나 사업 얘기가 나옵니다. 그러면 마음이 아파도 거절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사전 교제입니다. 기도할 때도 너무 달라고만 하지 말고 먼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깊이 만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필요를 채워주시기 전에 먼저 더 좋은 ‘자신’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하나님의 응답보다 우선적인 것입니다.

< 나눔의 철학으로 사십시오 >

 어느 날, 한 가난한 스승의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가져갈 것이 없자 도둑은 실망한 채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구석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스승이 소리쳤습니다. “잠깐만요. 이 추운 밤에 그렇게 먼 길을 왔는데 빈손으로 가게 해서 미안하오. 다음에 올 때는 미리 알려주면 힘써 뭔가를 준비해보겠소. 이번에는 초라해도 이 외투를 가져가시오.” 도둑은 얼른 외투를 가지고 달아났습니다. 그날 밤 그 스승은 보름달이 뜬 창가에 앉아 노래했습니다. “저 아름다운 달을 그 도둑에게 주면 좋으련만! 그 불쌍한 사람이 그렇게 멀리서 찾아왔는데.”

 사람은 도둑 심보를 가지고 늘 하나님의 주머니만을 노립니다. 그래도 그 스승처럼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하시고 더 나아가 자신 전체를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추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드리면 언젠가 반드시 행복과 축복의 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과실나무는 뿌리가 튼튼해야 열매도 많이 맺힙니다. 기도는 주는 마음을 배양하며 영혼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작업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손을 펴며 기도할 때 그 기도가 응답 받는 능력의 기도가 됩니다.

 삶의 기본 철학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두십시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라! 그러면 받을 것이니 곧 후하게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계속 나눠주면 가난해질 것 같고 계속 모아두면 부자가 될 것 같지만 그 반대입니다. 무엇이든지 계속 들어오게만 하고 나가게 하지 않으면 작은 것은 얻어도 더욱 중요한 것을 잃습니다. 반대로 열심히 나누면 신기하게 어디선가 좋은 소식이 생기고 좋은 것들이 주어집니다.

 2008년 그 전에 무더기로 들어온 그룹이 기존 교인들을 끌고 무더기로 나가면서 큰 시련을 겪었을 때 저희 교인은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온라인 말씀사역에서 큰 은혜를 주신 것처럼 이제는 오프라인 교회사역에도 부흥의 은혜를 주소서!” 그때 하나님이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힘들어도 나누려고 해라!” 그래서 선교와 나눔을 강조하고 없는 재정을 쪼개 더욱 선교와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뭘 저렇게까지 하나?” 그러나 저는 나눔의 축복을 믿었습니다.

 그 후 지금까지 6년 동안 교인이 시련을 겪었을 당시보다는 많이 늘었지만 내세울만한 큰 성장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2009년 이후로 교회에 잘 다닌 사람 중에 한 명도 떠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다 한 마음으로 뭉친 천국 가족이고 비전 동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은혜가 있게 되었습니까? 모든 성도들의 기본 마음이 ‘받음’에 있기보다 ‘나눔’에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대개 상처와 갈등은 받으려는 마음에서 생깁니다. 그런데 받으려는 마음이 없으니까 평화가 넘치게 된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 각 성도의 마음에서 나눔의 비전은 크게 성장했습니다. 나눌 줄 아는 인물 한 명은 때로는 대형교회 하나보다 더 큰 일을 합니다. 추신수 선수 한 명이 야구 방망이만 잘 휘둘러도 1년에 약 2백억을 법니다. 그런 사람이 나눌 줄 아는 인물이 되면 그 한 인물이 몇 만 명 대형교회보다 더 선교하고 더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 각 성도가 나이를 불문하고 그런 인물의 꿈을 다 키우고 있는 것이 더욱 중요한 성장입니다. 심지어 우리 자녀들에게도 선교와 나눔의 비전이 커지고 체질화되고 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배설이 없으면 몸이 퉁퉁 부어서 죽습니다. 장마철에 배수구가 막히면 난리가 납니다. 그처럼 쌓기만 하면 가정도 죽고 후대도 죽고 심지어는 부부와 형제간에도 원수가 됩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배수구를 뚫고 어둔 세상에서 물질의 선순환을 이루는 첨병이 되십시오. 그러면 다윗과 같은 인물을 예비하는 룻의 축복이 우리에게도 나타날 것입니다. 항상 보아스와 룻 사이에 있었던 비계산적이고 책임적이고 사려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자기 것을 힘써 나눔으로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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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9 요한복음 예수님께서 빌립을 시험하심 요6:1-13  조용기 목사  2014-08-02 1285
11048 시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시23:4  조용기 목사  2014-08-02 1285
11047 마가복음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막15:33-34  조용기 목사  2014-08-02 880
11046 고린도후 위로 고후1:3-11  조용기 목사  2014-08-02 982
11045 잠언 마음가짐 잠4:20-27  조용기 목사  2014-08-02 985
11044 고린도후 심은 대로 거둔다 고후9:6-10  조용기 목사  2014-08-02 1287
11043 에배소서 예정하사 엡1:3-12  강승호 목사  2014-08-02 965
11042 창세기 형제와 화해 창32:22-31  강승호 목사  2014-08-02 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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