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어딜 그리 서둘러 가는 거니?”
발밑에서 졸졸 소리 내며 흐르는 개울한테 앵두나무가 물었어요.
“바다로 간다.”
“바다? 거기가 어딘데? 어떤 곳인데?”
“몰라.”
“한번도 가보지 않았어?”
“응.”
“그러면서 네가 바다로 가는 줄은 어떻게 알았니?”
“날 보렴. 이렇게 끊임없이 가고 있잖아?”
“그래, 넌 조금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줄곧 가고 있지.”
“나는 한 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지 않아.”
“그래. 너는 조금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줄곧 흐르고 있어.”
“이렇게 한 쪽으로만 가다 보면 어딘가 닿지 않겠니?”
“어디?”
“거기가 어딘지는 아직 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아무튼 더 내려갈 수 없는 그런 데까지 갈 것 아니야?”
“그렇겠지. 나도 봄에 꽃이 피면 꽃이 지고 꽃이 지면 앵두가 달리고 앵두가 달리면 앵두가 익고 앵두가 익으면 앵두가 떨어지고 앵두가 떨어지면 잎이 떨어지고 잎이 떨어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오면 더 이상 떨어질 것도 떨어질 데도 없지. 그래, 어디로 가는 것은 더 갈 데가 없는 데까지 가는 거야. 네 말이 맞아. 그런데 너한테는 거기가 바다라고?”
“응.”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거기가 바다인 줄은 어떻게 알고 있니?”
“넌 저 달한테 가봤니?”
“아니.”
“그런데 저 달이 달인 줄 어떻게 알지?”
“가보진 못했지만, 보이잖아?”
“나도 바다에 가보진 못했지만, 바다를 몸으로 느낄 수 있단다. 바다가 없으면 이렇게 흘러갈 수도 없지. 생각해보렴. 넌 땅이 없는데 그렇게 서 있을 수 있겠니?”
“땅이 없으면 서 있을 수 없지.”
“거봐. 땅이 없으면 너는 서 있지 못하고 서 있지 못하면 꽃을 피우지 못하고 꽃을 피우지 못하면 앵두가 달리지 않고 앵두가 달리지 않으면 앵두가 익지 못하고 앵두가 익지 않으면 넌 앵두나무가 아니지.”
“그렇구나? 바다가 있어서 네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로구나? 땅이 있어서 내가 이렇게 서 있듯이.”
“맞아.”
“그런데 거기가 왜 하필이면 바다니? 비디나 보도가 아니고 왜 바다야?”
“저 달은 왜 달이지? 딜이나 덜이 아니고 왜 달이야?”
“그건 그렇게 부르고 있으니까. 달은 그렇게 부르는 이름일 뿐이지.”
“바다도 그냥 그렇게 부르는 이름일 뿐이야. 우리가 ‘바다’라고 부르는 그곳의 진짜 이름은 아무도 몰라. 아니, 거긴 아마도 이름 같은 것 없는 그런 델 거야.”
“나도 너처럼 흐르고 흘러서 바다라는 델 가보고 싶구나.”
“나도 너처럼 땅에 뿌리박고 서서 예쁜 열매를 맺어보고 싶구나.”
“그렇지만 나는 너처럼 흐를 수 없어. 앵두나무니까.”
“나도 너처럼 한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어. 개울이니까.”
이렇게 한참 얘기하다가, 앵두나무가 깜짝 놀랐어요.
“어? 이상하구나?”
“뭐가?”
“넌 아까부터 쉬지 않고 줄곧 흘렀는데 어떻게 여태 거기 그대로 있니?”
그러자, 개울도 깜짝 놀랐어요.
“그렇구나? 아까부터 쉬지 않고 줄곧 흘렀는데 한 발짝도 내려가지 못했네? 어찌된 일이지?”
앵두나무가 또 깜짝 놀랐어요.
“어? 이상하구나?”
“뭐가?”
“내 몸 속으로 언제 들어왔니? 네가 내 몸에서 흐르는 게 느껴져.”
그러자, 개울도 깜짝 놀랐어요.
“그렇구나? 내가 언제 네 속으로 들어왔지?”
앵두나무 잎사귀 끝 끝마다 맺힌 이슬방울이 새벽 달빛에 반짝입니다.
월간<풍경소리>2013.7월호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