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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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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
본문: 요14: 6, 찬송가 516장(통265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 중에는 옳은 일도 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옳지 못한 일도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존경을 받기도, 비난을 받기도 하지요. 옳은 일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뿐더러 마음에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이와 반대로 옳지 못한 일은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자신의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후회를 낳기도 합니다. 우리는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산다면, 남에게 비난받을 일도, 뜻하지 않은 곤경에 처하지도 않겠지요. 우리는 한번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진정 옳은 일인지 되짚어보아야겠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6:25)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기 위해 무척 애를 쓰던 젊은이가 어느 날,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젊은이를 두 개의 방에 차례차례 데리고 가셨는데 첫 번째 방은 화려했으며 방에 있는 책상에는 많은 돈이 쌓여 있었으나, 두 번째 방은 전혀 볼품이 없는데다 방에 놓여있는 책상 위에는 몇 푼 되지 않는 돈이 있었습니다. 그 때, 다음과 같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책상 위의 돈은 당신이 지금까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 돈입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본 첫 번째 방 책상 위의 돈은 당신이 당신을 위해 사용한 돈입니다」
그 날 이후 젊은이는 돈을 쓸 때마다 「나는 지금 이 돈을 나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인가,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인가」라고 생각한 다음 신중하게 사용했습니다. 재물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 우리를 구하지 못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1. 옳은 길, 선한 길, 의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선한 길이란 무엇일까요? 선함이란 무엇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우리는 어떤 사람이 착하고 마음이 넓고 심성이 바르고 온유하면 그 사람이 선하다라고 이야기들 하곤 합니다. 주변 사람을 도와주고, 성내지 아니하며 비방과 험담이 아닌 사랑과 겸손의 말을 하는 사람들 말이죠. 그러나 진정 선한 것은 무엇입니까? 공의와 공평과 정직입니다. 솔로몬은 선한 길이 공의와 공평과 정직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선한 일을 하고 싶으십니까? 선하게 살고 싶으십니까? 공의와 정의와 정직을 행하십시오. 참으로 선한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공평하고 정직함을 소유하기를 기도하십시오. 이 땅에서 사라지고 있는 정의! 교회가 회복하고 선포해야 할 정의!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길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해 질 것이요」
세례요한의 말처럼 하나님의 공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인한 구원 앞에서 누구도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을 불평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단 그 뿐 아니라 교회는 세상을 향해 정의와 정직을 외쳐야 합니다. 목소리 보다는 공의롭고 정직한 공동체를 보여줘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정의, 정직함으로 만들어져 가는 공동체!
한 시사 해설가가 신문을 통해 우리 문화에서 점점 확산되어지면서 수면위에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성적인 사악한 행동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부도덕한 생활 방식을 조장하는 특별한 이익 단체들의 압력에 의해 마지못해 다시 사과 기사를 게재 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만 절대적이 도덕 기준을 가지고 계시다고 믿는 우리들에 대해 일반 사회에서는 바보 취급을 합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비도덕적인 행동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도록 경고합니다. 우리의 현재 상황은 에례미야 선지자가 당면했던 그 상황과 놀랍게도 너무나 흡사합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수치를 몰랐으며, 그 어떤 타락한 행위에도 부끄러운 줄을 전혀 몰랐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분노하심을 공포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경고했습니다.
「옛적 길 곧 선한 길」 즉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로 돌아올 것을 호소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라고 모두를 초청하심으로 우리에게 평강에 이르는 길과「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잠3:17)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잠10:9)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쫓아 가야합니다. 과거의 실패에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을 바라보며 선한 길, 의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렘6:16)
성경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그 무언가를 당신에게 선물해주길 원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선한 길로 행하기를 도전하십시오.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12: 35)
2. 믿음의 길, 지혜의 길, 생명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성 프란시스를 잘 압니다. 그 사람이 유명하게 된 것은 「평화의 기도」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유명한 것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실제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부터 모든 소유를 버리고 평생을 수도하며 산 사람입니다. 그는 짐승들과 대화를 할 정도로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의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참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님을 닮은 사람을 살려고 노력을 남들 보다 많이 한 자로 여겨집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은 사람으로서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잠언11장 4절에서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의리는 죽음을 면케하느니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리, 즉 죽음을 면케 하는 의로움은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얻는 의를 가리킵니다. 행위로써 의롭게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의 옷을 입고,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은 「용서받은 의인」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의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로마서 3: 28)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 1)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2:16)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그리고 은총으로 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창15:6, 엡2:8)
천로역정 가운데 보면 기독도가 장망성을 떠나 천성을 향해가다가 갈보리 언덕에까지 왔을 때 갑자기 등에 지고 있던 무거운 십자가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 때 천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네 죄가 사하여 졌도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인간의 힘과 노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보혈로 <의롭다>함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미약한 힘에 의지하여 의로운 삶을 살려는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이 없는 부담과 실패뿐일 것입니다.
하나님 기준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는 힘은 우리가 하나님의 무한한 힘에 연결될 때에만 얻어집니다. 매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 간구하면 됩니다. 옳은 길을 가려면 믿음의 길, 지혜의 길을 따르세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잠2:20)
「선한 지혜는 은혜를 베푸나 사악한 자의 길은 험하니라」(잠13: 15)
옳은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로 가려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엡4:24)
의로운 사람의 길에는 생명이 있지만, 미련한 사람의 길은 죽음으로 이끕니다.
3. 정직한 길, 착한 길을 따라야 합니다.
구약 성경 역사서를 보면,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을 소개할 때마다 「여로보암의 길」(왕상15: 34 등)로 행했다고 합니다. 악한 길을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왕이 되고선 어떻게 정치를 할까 할 때 그 악한 선조 여로보암이 간 길을 따라 가 악정을 베풀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여러 남 왕국 유다의 왕들을 소개할 때는 「다윗의 길」을 따랐다고 소개합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대하34:2)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왕하22:2)
역시 앞선 이의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너무 다릅니다. 이 세상에서 길이 되어 봅시다. 물론 예수님처럼 진리 자체의 길이 아니라 그 길로 인도하는 오솔길이 되어 봅시다. 그렇게 살아 나를 따르는 이들이 예수님께 이를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봅시다. 뭐 거창한 인류애 어쩌고 저쩌고도 좋지만 그저 우리 삶의 현장에서 주님께로 향하는 생명과 진리로 향하는 소롯한 길이 되어 봅시다. 사람들이 내 뒤를 따라옵니다.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잠2: 9)
하루하루를 정직하고 의롭게 살며, 헛되이 보내지 않으면 먼 훗날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때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그 길에는 사망이 없느니라」(잠12:28)
4. 십자가의 길, 좁은 길, 진리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십자가요. 우리 신앙의 중심도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모든 중심에 서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9:23)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우리가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가게 하는 것은 우리를 단련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욥은 고난의 길에서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고백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13: 24)
많은 사람들이 교만의 길, 거짓의 길, 음행의 길, 탐욕의 길인 넓은 길로 가지만 성도는 옳은 길, 의의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인 좁은 길로 가야합니다.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불의를 거부하고 십자가의 길을 갔습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하고 절하지 아니하였습니다.(에3: 1,2) 다윗의 3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야벳느고도 금신상에 엎드려 절하지 아니했습니다.(단3: 1- 30) 그들은 핍박과 고난 중에도 옳은 길, 의의 길로 갔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습니다.(딤후3: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5:10, 11)
5. 우리는 많은 사람을 옳은 길, 의로운 길, 진리의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
인간은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온 길이 있고 갈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정하시는 길입니다. 그 길은 철새의 항로보다 더 정확합니다. 그 길을 알아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때론 전혀 모르는 낯선 길을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길을 갈 때 대개의 사람들은 팻말이나 사람에게 물어 보고 가기보다 그냥 무턱대고 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십중팔구는 낯선 길로 완전히 빠지거나 막다른 골목길에 부딪히게 됩니다.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길을 보호하고 지키십니다.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잠2:8)
한 사람이 먼저 가고 여러 사람이 그 뒤를 따르면 길이 없던 우거진 숲 속에도 길이 생깁니다. 우리가 먼저 좁은 길, 십자가의 길, 믿음의 길, 의의 길을 앞장서 가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고, 인도하는 사람이 됩시다.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잠24:11)
우리는 정말 바르게 가고 있는 걸일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 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 4 : 12)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우리에게 참된 구원과 민족을 줄 다른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창조적인 일은 바로 지금,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변화되는 일입니다.
여러분! 죄악의 길, 사망의 길을 버리고, 옳은 길, 의의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인 예수님을 따르시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주님, 나의 달려갈 길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달려갈 길이 향방 없는 자차럼 내 달음질과 수고가 헛되지 않게 늘 인도하옵소서. 예수님께서 가신 그 선한 길에 저도 동행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내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하소서. 예수님을 위해 살고자 하오니 내 갈길 인도하소서. 나의 나된 것이 주님의 은혜라는 고백만이 우리 안에 늘 넘쳐 나게 하옵시며, 주님의 성실하신 뜻을 좇아 일평생 살아가게 하옵소서. 구원의 삶은 성공하는 삶이 아닌 의로운 삶입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삶은 의로운 삶입니다. 이제 저희로 세상의 성공에서 세상의 구원에 눈을 뜨게 하옵시고, 의로운 삶으로 인도하옵소서.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을 의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우리되게 하소서. 우리의 인도자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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