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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히11:1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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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다문화 나그네를 섬기자
본문: 히11: 13- 16
시카고의 백만장자의 외동딸이 심한 병에 걸렸는데, 미국의 어느 의사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비엔나의 로렌스박사가 오늘날 소위 무혈수술이란 새로운 기술로 그 딸의 수술을 맡아서 아주 건강하게 살려놓았습니다. 그래서 그 의사의 이름은 더욱 유명해 졌고, 미국의 여러 병원에서 초청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그가 미국의 어느 도시에 갔을 때 좀 조용히 쉬고 싶어서 그 도시의 주택지를 수행원의 안내 없이 혼자 몰래 빠져나와 교외주택지를 산보하였습니다. 한동안 걸어 갔을 때,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했고 소낙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할 수 없이 로렌스박사는 잠시 비를 피해 신세를 지려고 가까운 집의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한 여인이 나왔을 때, 그는 비가 멈출 때까지만 쉬었다 갈 수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곳에나 가보세요. 우리 집에는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 일이 많으니까요!” 하면서 두말없이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로렌스 박사는 할 수 없이 그 집 문밖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비가 멈춘 후에야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무정하게 문을 닫았던 그 여인은 신문을 펼쳐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여인은 신문에서 그 유명한 로렌스 박사의 사진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여인이 그렇게 놀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자기 딸이 시카고 백만장자의 딸과 똑같은 병으로 지금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그 로렌스 박사를 만나보길 원했었던가? 하나님께서 로렌스 박사를 그녀의 집으로 보내 주셨을 때, 그의 면전에서 문을 닫아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남을 돕고 대접할 수 있는 작은 새로운 기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불우한 이웃을 돕고 봉사할 수 잇는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기회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갈6:10)
성경은 나그네와 손님대접을 중요한 덕목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벧전4:9)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눅6:31),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느니라』(히13:2)
나그네와 손님대접은 중요한 사역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 바울은 목회자의 자격을 열거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며』(딤전3:2), 디도서 1장 8절에서도 똑같은 권고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교회의 각 교인에게도 아주 중요한 권고입니다. 성경은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딤전5:10),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3)고 말합니다. 여기서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표현은 손님 대접하는 일이 곧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부담(Obligation)이 아니라 기회(Opportunity)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집에 찾아온 손님이 하나님의 사자(使者)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나그네와 손님대접의 예는 성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아브라함이 그에게 찾아온 손님(천사)들을 대접한 것(창24:31-33) 그리고 수넴여인이 엘리사에게 자기 집을 개방한 것(왕하4:8-10) 등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 집에는 머무르지 말도록 명하셨으며(마10:9-15) 또한 다른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이 곧 주님 자신을 대접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을 주고 개인적으로 돌보아 준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고 말씀하셨습니다.
나그네와 손님을 잘 대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 눅6:31) 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접은 사랑의 구체적 내용입니다. 사랑함으로써 사랑 받고 대접함으로써 대접받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황금률입니다. 남을 대접함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천국의 상급을 소원할 수 있습니다. 대접의 결과로 복이 오기도 하지만 대접하는 삶 자체가 바로 복이기도 합니다. 다문화 나그네를 섬기는 것이 곧 세계선교에 이바지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개인의 가정들이 기도처(행12:12)와 사도들의 거처(행21:8, 16)로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3-6절에서는 가정이 교회의 모임장소로 사용된 것을 보게 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대접하는 일을 통해 널리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들은 고린도에서 바울을 손님으로 모시고 함께 살고 일하면서 큰 유익을 얻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행18:2, 3) 후에 그들 부부는 아볼로를 대접했고 그의 사역에 직접 영향을 주었습니다.
대접하는 일을 통해서 서로 교제하고 격려할 수 있으며 복음 사역에서 더 큰 진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는 손님을 모시며 대접하는 일에 더 큰 열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나그네와 손님 대접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을 가져온다는 것을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우리들의 손을, 우리들의 가정을 열 때 하나님께서는 항상 그의 축복을 퍼부어 내리십니다.(눅6:38)
우리가 서로 나눌 때 하나님께서 항상 축복을 증가시키십니다.(잠11:25, 시112:9, 빌4:19)
대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예수님은 이에 대한 완벽한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막10:45)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써 우리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12:13)
성경은 나그네나 이방인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나그네 생활을 많이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히11: 13)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주장한 것은 인생은 나그네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게 나그네의 삶이라는 걸 안 그들은 더 나은 본향에 소망을 두고 힘들고 어려운 인생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나그네는 객지에 있는 사람, 손, 방랑객이란 뜻입니다. 자기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거나 떠도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나그네는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이 계속 지낼 곳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다시 왔던 곳으로 갈 사람입니다. 나그네가 어떤 집에 신세를 지며 지내다가 돌아갈 생각을 안 한다면 이상한 나그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돌아갈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히11:15)
우리는 세상에 사는 게 나그네요, 여행객이요, 손님이요, 방문객이요, 외국인으로 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그네는 주인처럼 행세하며 살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
집에 돌아가면 어떻게 될 것인지 준비해야 합니다. 비자를 가지고 남의 나라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간이 있습니다. 비자 기간이 끝나도 자기 나라로 안 가면 불법체류자입니다. 여기저기 여행을 해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 많습니다. 좋은 음식들이 많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오는 희열이 넘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도 돌아와야 합니다. 마치 인생이 그렇습니다. 문명은 발달하고 참으로 편리한 세상으로 치닫습니다. 그러나 우린 돌아가야 하는 나그네요 여행자입니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 19, 20)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영생이며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잠시 여행하다가 천국이라는 나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그네는 주님 만날 준비, 심판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1:17)
우리는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고후5:10)
예수님은 최후 심판의 날에 주린 자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느냐, 목마른 자는 마시게 하였느냐, 나그네 될 때에 영접하였느냐, 벗은 자에게 입혔느냐,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느냐, 옥에 갇힌 자에게 와서 보았느냐고 질문하십니다. 이 말씀은 작은 자에게 대접하였느냐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또 예수님 없이 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병들고, 옥에 갇혀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주었느냐고 묻는 말씀입니다.(마25:31- 46)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었음이니라』(출22:21)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출23:9)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19:33-34)
나그네는 동반자와 함께 해야 됩니다. 인생행로는 광야와 같습니다. 광란의 파도가 몰아치는 험악한 바닷길과 같습니다. 이러한 나그네의 가는 길에는 그 누구보다도 동반자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외로울 때 위로와 어려울 때 의지함과 힘들 때 의논하고 도와주는 협력자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한국 땅에 거주하는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근로자들과 나그네들을 잘 돌보고 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영원히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주님,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속량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심을 믿으며, 그 주님을 찬양합니다.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면서 영원한 내일을 준비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나를 기억하고 위해서 기도해주는 나의 부모와 가족과 친구들과 사랑하는 자들을 축복하시기 원합니다. 아무도 자기를 기억해줄 사람이 없고 또 그들을 위해 기도해줄 사람이 없는 자들과, 노약자들과 외롭고 쓸쓸한 자들과 사랑할 대상도, 사랑해줄 사람도 없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내가 특별히 기억하여 기도해야 할 질병과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과, 그의 삶이 지금 위기에 처해 있는 자들 그리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자들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 참회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자들 그리고 절망 가운데 빠져 있는 자들에게 긍휼과 은총을 베푸시옵소서. 이 시간 다문화 나그네들을 섬길 수 있는 마음을 내게 허락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http://blog.naver.com/jesuskorea, http://blog.naver.com/al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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