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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인간적 고통 앞에서
경향신문 l 입력 2014.08.20 21:28
프란치스코 교황은 귀국하는 기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난 15일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았는데 반나절쯤 지나자 어떤 사람이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교황은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말해줬다고 설명했다. 실제 그는 방한 기간 내내 노란 세월호 리본을 착용한 채 미사 등 각종 행사에 나섰고 16일 광화문 시복식 전 가진 카퍼레이드에서도 유일하게 세월호 유족 앞에서는 차에서 내려 그들의 손을 잡고 위로해주었다. 이런 행동은 예수가 그렇게 사셨고, 교회는 그의 모범을 따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우선적 선택’을 해야 함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교황의 이러한 행동은 권력과 금력에 도취되어 너무나 비대해져버린 전체 한국 그리스도교계에, 나아가서는 극단적 이념논쟁에 포로가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 던져준 준엄한 메시지이다.
한때 그렇게 유행하던 ‘웰빙(well being)’이 시들해지고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 중의 하나가 ‘힐링(healing)’, 곧 치유다. 마음의 치유를 다루는 소위 힐링 관련 도서들이 베스트셀러의 상위를 점령하고 있다는 것은 낙담하고 상처받은 자들이 “위로와 위안이 내게 정말 필요해”라고 소리 없이 외치는 것은 아닐까? 그만큼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외로운 사람들, 특히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힐링’의 범람 현상은 오늘날 한국인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2000년대의 유행어였던 ‘웰빙’이 더 조화롭게 잘 살기 위한 대중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라면, 2010년대의 ‘힐링’은 더 잘 살고 싶기는커녕 받은 상처를 치료라도 하고 싶은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교황은 한국인들의 몸부림을 정확하게 눈여겨보았고 그들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감싸 안아 위로해주고 치유해주었다. 그는 종교적 집회를 위해 한국에 왔지만 한번도 “예수천당, 불신지옥” 같은 위협적 언사를 쓰지 않았다. 다만 맘몬신앙에 함몰된 한국 사회가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기를 그리고 이기주의와 사회적 분열을 조장하는 무한 경쟁에서 빚어진 죽음의 문화에 맞서 싸우기를 촉구했다.
교황의 위력은 단순히 종교적 영역에서 끝나지 않는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폴란드를 방문하여 “여러분은 인간입니다. 굴욕적으로 살지 마십시오”라고 역설하면서 폴란드 연대노조에 공개적 지지를 표명하여 동유럽 공산주의의 몰락에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겸손하고 청빈한 그의 언행으로 인해 교황에 즉위한 지 불과 1년 반 만에 세상을 사로잡았다. 지난해 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그를 선정했고, 경제지 포천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그를 꼽았을 정도이다.
그의 무엇에 세상이 이처럼 열광하고 환호할까? 그의 등장은 세계에 뜨거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는 ‘프란시스 효과(Franci s Effect)’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경영학계는 최근 몇 년간 연이은 성직자들의 성추행과 바티칸은행의 추문 등으로 심각한 내상을 입고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던 가톨릭교회를 단박에 일신시킨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업 경영에 응용할 수 있는 탁월한 CEO 모델로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세월호 참사, 윤 일병 사건 등으로 인해 현재 한국인들은 심각한 내상을 입었고 치유가 간절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에게 지금 간절히 필요한 것은 치유, 용서, 화해이다. 교황 방한으로 인해 우리 사회 안에 조금이라도 평화가 증진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교황 방한이 가져다주는 최대 선물이 될 것이다.
<문영석 | 강남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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