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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자폐성과 독선을 해체하신 예수

누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692 추천 수 0 2014.08.22 23: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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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5:21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4.8.17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믿음의 자폐성과 독선을 해체하신 예수
눅5:21

오늘 우리가 읽고 생각하고자 하는 본문은 언제 설교를 통해 나눈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8월 첫째 주일입니다. 그때는 ‘무문관’이란 깨달음의 방편을 말하면서 예수님의 사건 중에도 그런 게 있다고 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의 결론은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이란 세상에 없는 문을 만들고 그리로 드나드는 삶’을 일컫는다고 했지요. 그런데 오늘은 좀 더 깊숙하게 사건의 내면속으로 들어가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간단하게 ‘중풍을 예수님이 고쳐 주셨다’는 선에서 멈추어 있습니다. 그런 해석에 근거를 두고 ‘내 병도 예수님께 들고 나가기만 하면 모두 고쳐 주신다’는 확장을 하게 되죠. 아주 아닌 이야기는 아니지만 예수님의 삶이 이선에서 멈추어 버리면 사회일반이 되기는 하지만 진리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갈등 구조부터 봅시다.

네 부류의 인간군이 등장합니다. 예수와 그 일행- 군중- 중풍병자- 바리사이와 율법사들이 그들입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바리사이와 율법사들을 말할 때 누가복음은 은연중에 이들이 예루살렘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니 이 사건 속의 논쟁은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종교 세력과 예수간의 대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루살렘 종교와 예수와의 갈등을 매개하는 것이 중풍병자입니다. 중풍병자는 몸을 자유로이 쓰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몸이라는 것은 세상과 접하는 최전선입니다. 사람은 몸을 통해 세상에 속할 수 있습니다. 몸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간은 몸을 통해 비로소 세상에 속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니까 몸이 곧 세상입니다. 그런데 몸을 쓸 수 없다면 그는 세상에 속할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누가복음의 본문 속에서 ‘중풍병자’란 바로 이런 의미체계를 갖는 단어입니다.

이 중풍병자는 예수에게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꽉 막혀 있어 그로서는 예수에게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는 예수에게 나아가는 다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지난 지난주에 나눈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 결과로 그는 중풍병만 고친 게 아니라 “네가 구원받았다”는 선언과 함께 영혼이 구원되는 덤도 얻었습니다. 그야말로 병 고친 게 주가 되고 구원은 덤이 되는 그런 사태였던 것입니다.

몸이란 세상에 속하는, 세상을 경험하는 인간의 원천적인 도구입니다. 몸이 없으면 세상도 없는 건데, 그래서 중풍병자는 몸을 쓸 수 없으므로 세상에 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데 병을 고쳤으니, 중풍을 고쳤으니, 몸이 나았으니 그로서는 다시 세상에 속하게 된 게 아닙니까? 다시 말해 중풍병자가 중풍을 고친 일은 그냥 몸의 병을 고치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가 다시 세상에 복귀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이러면 참 좋았을 겁니다. 몸을 회복해서 세상에 속하게 되었고 세상을 맛보게 되었으니, 세상을 소유할 기회가 주어졌으니 열심히 살아서 세상을 움켜쥐면 될 거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말하는 세상 또는 세상의 질서는 무엇입니까? 막연하게 ‘세상’이 아니라 바리새와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종교에 편입되어 그 종교의 질서를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저 사람은 세상 사람이다’한다고 합시다. 그 때 ‘세상’이란 돈과 권력으로 질서를 잡고 그런 체제 안에 가치를 둔 세계 안에서 그런 방식을 도모하며 산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러니 이 당시 세상이란 바로 ‘예루살렘의 종교의 질서를 따라’사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예루살렘의 바리새인과 유대인처럼 사는 것이 중풍병자에겐 ‘세상에 속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단순하게 그의 몸을 고쳐서 세상 속으로 들이밀어 놓고 끝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몸의 병만 고쳐서 세상에 살게 해야 했는데 그만 그 사람에게 “네가 구원받았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에 이게 무슨 경을 칠 일일까 하시겠지만 크게 경을 칠 일입니다. 몸의 병을 고쳐서 거기 세상 사람으로 살게 하지 않고 다시 그를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뭡니까? 세상에 살되 세상의 질서에 속하지 않은 존재로 이끌어 내는 거 아닙니까? 중풍병자는 몸이나 고쳐서 세상의 질서, 몸의 질서를 따라 살고 싶어 했지만 예수는 그를 아예 세상의 질서로부터 끄집어낸 것입니다. 중풍병자에게 “네가 구원을 받았다”는 선언은 이런 뜻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이게 오늘 이야기를 이끌어갈 배경입니다. 대부분은 이 배경조차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현실에 우리가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여하튼, 앞의 이해와 같은 상황에 대해서 예루살렘 종교인들이 예수에게 말합니다. 니가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니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짓을 하고 있는 거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예루살렘 종교의 체제로서는 이 중풍병자와 같은 이들이 구원을 받을 방법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종교로 대표되는 바리새나 유대인에 속하지 않으면 구원은 누구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니, 중풍병자로서는 병을 고쳐서 그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 거였습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 종교도 그 종교에 끼지 못하는 사람도 이런 편견이 질서처럼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중풍병자에게도 이것이 자기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몸을 고치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예수가 선언한 “네가 구원받았다”는 말씀은 이런 유일한 예루살렘 종교의 질서를 교란하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찌 그걸 받아들일 수 있었겠어요.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고쳐준 게 그들에게 시비가 아닙니다. 자신들의 유일한 종교질서, 그들의 종교방식 외에는, 그들의 종교 질서에 끼지 않고서는 누구도 어떻게든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신앙에 교란이 생겼기 때문에 강력하게 시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들의 시비에 물러서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종교집단의 유일 신앙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종교의 입장에서 예수는 이교적인 저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단아인 것입니다. 그게 중풍병자를 고치고 그에게 구원을 선포한 사건입니다. 예루살렘의 유일 구원신앙이 버린 중풍병자를 예수는 일으켜 세우고, 너희들(세상)이 버린 이 사람이 다시 너희들의 질서에 들어갈 자격이 되었다고 들이밉니다. 그러나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네가 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구원’을 받은 근거가 ‘중풍병자 자신의 믿음’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의 유일 구원종교인 바리새인이나 유대인의 신앙 사고로 ‘자기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말이 되는 겁니까, 말이 되지 않는 것입니까?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하는 ‘믿음’은 그들이 규정하고 있는 ‘믿음’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믿음이란 뭘까요?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보신 ‘믿음’은 예루살렘 종교처럼 교리, 체제, 내면화된 법이나 질서 또는 신앙의 의식작용을 말씀하시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서 보았던 ‘믿음’은 여러 종교질서 속에서 차단된 장애물을 넘어서는 그의 행위, 그걸 ‘믿음’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신, 중풍병자가 중풍병자 자신에게 한 일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 자신을 구원했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걸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결국 이 본문 속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종교관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신앙적인 가치관과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관념을 지배하는 유일 구원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네들 식의 종교 외에는 어떤 문도 용납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 제체주의적인 신념이 바로 예수님의 적이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신학은 그것을 ‘유일신’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이런 고집불통의 유일 구원신앙과 대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길만을 주장하는 집착과 대결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지배하면서, 다른 길은 없다고 하는 교조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유일 구원 신앙을 해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는 이단아였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신 없는 세계를 말한다던지, 구원 없는 세계를 말씀하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단아라는 말은 신앙의 자폐성과 독선을 파괴하고, 구원의 문을 누구에게나, 어떤 방식으로든지 열어 두신다는 뜻입니다. 이게 우리의 예수 복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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