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
소프트 파워(soft power) 라는 개념이 있다. 한국말로 풀이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나를 따라오게 하는 힘, 즉 매력이라는 개념에 가장 가깝다. 국제정치학에서는 미국이 상대적으로 쇠퇴하던 1980년대 미국의 힘이 물리력, 즉 하드 파워(hard power)에서는 예전만 못하지만 소프트 파워를 통해 세계의 리더십을 계속 발휘할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이 개념이 나왔다. 반면 2001년 9·11 테러 사태 이후에는 미국이 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물리력이 강했지만 일방주의적인 미국 부시 정권의 소프트 파워가 약해서 리더십 발휘가 안되었던 적도 있다.
이 두 개의 사례는 정반대의 사례이지만 국가가 힘을 발휘할 때 물리력에 못지않게 매력, 즉 소프트 파워가 중요하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물리력이 부족하다고 패배의식에 젖거나, 반대로 물리력이 강하다고 자만하면 안된다. 소프트 파워가 결과를 뒤바꾸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프트 파워의 원천, 즉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를 따라오게 하는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데 있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아직 이 분야의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하는 연구들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소위 말하는 프레이밍(framing)이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가 심리학에서 발전된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이라는 것이다. 먼저 프레이밍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는 어떤 이슈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작용에 긍정 또는 부정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공산권과 자본주의권의 대결인 냉전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결로 규정하면, 즉 그렇게 프레이밍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자본주의의 반대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반대로 인식하게 된다. 그 효과로 인하여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매력은 떨어지고,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라는 생각에 매력이 올라간다. 복지정책을 위험한 포퓰리즘으로 프레이밍하거나 햇볕정책을 퍼주기로 프레이밍하는 것도 이들 정책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프레이밍 전략이다. 즉 어떤 정책이나 주장의 매력도에 프레이밍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리학의 전망이론은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엇을 더 얻는 것보다는 이미 가진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에 집착한다고 주장한다. 경제가 불안할 때 사람들이 리스크와 함께 고수익을 좇기보다는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위에서 말한 프레이밍과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되는데 복지정책이 포퓰리즘으로 프레이밍되거나, 햇볕정책이 퍼주기로 프레이밍되면 전망이론에서 주장한 대로 사람들이 불확실성의 사회에서 지금 가진 것을 자꾸 더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심리적 효과를 갖게 되어 그 정책의 매력이 떨어진다.
지금 야당이나 진보세력은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얘기한다. 기본적으로 진보가 보수보다 불리한 지형에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장외투쟁과 같은 극단적인 투쟁을 하거나 단일화와 같은 무리한 숫자 싸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프트 파워보다는 하드 파워에 집착하고 있다. 아마도 민주화 시대 투쟁의 관성이 아닌가 싶은데, 한 가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민주화 투쟁에서 이긴 것은 하드 파워의 투쟁에서 힘을 발휘한 것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매력적인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안철수 현상도 물리적인 힘에 끌린 현상이 아니라 미래희망이라는 매력에 사람들이 끌린 현상이다. 지금 민주화 이후에는 매력적인 비전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투쟁으로 일관하게 되면 사람들은 점점 더 그들을 멀리하게 된다. 그놈의 투쟁 때문에 계속 일상생활에서 잃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투쟁이 어떤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한 투쟁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프레이밍이다. 소프트 파워를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야당의 미래는 없다. 유권자가 자신들을 찍게 만들어야지 상대방을 떨어뜨리게 하는 시대는 아니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그런데 문제는 소프트 파워의 원천, 즉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를 따라오게 하는 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데 있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아직 이 분야의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몇 가지 단서를 제공하는 연구들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소위 말하는 프레이밍(framing)이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가 심리학에서 발전된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이라는 것이다. 먼저 프레이밍에 대해서 말하자면 이는 어떤 이슈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작용에 긍정 또는 부정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공산권과 자본주의권의 대결인 냉전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결로 규정하면, 즉 그렇게 프레이밍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자본주의의 반대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반대로 인식하게 된다. 그 효과로 인하여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의 매력은 떨어지고,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라는 생각에 매력이 올라간다. 복지정책을 위험한 포퓰리즘으로 프레이밍하거나 햇볕정책을 퍼주기로 프레이밍하는 것도 이들 정책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프레이밍 전략이다. 즉 어떤 정책이나 주장의 매력도에 프레이밍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리학의 전망이론은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엇을 더 얻는 것보다는 이미 가진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에 집착한다고 주장한다. 경제가 불안할 때 사람들이 리스크와 함께 고수익을 좇기보다는 공무원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위에서 말한 프레이밍과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되는데 복지정책이 포퓰리즘으로 프레이밍되거나, 햇볕정책이 퍼주기로 프레이밍되면 전망이론에서 주장한 대로 사람들이 불확실성의 사회에서 지금 가진 것을 자꾸 더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심리적 효과를 갖게 되어 그 정책의 매력이 떨어진다.
지금 야당이나 진보세력은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얘기한다. 기본적으로 진보가 보수보다 불리한 지형에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장외투쟁과 같은 극단적인 투쟁을 하거나 단일화와 같은 무리한 숫자 싸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프트 파워보다는 하드 파워에 집착하고 있다. 아마도 민주화 시대 투쟁의 관성이 아닌가 싶은데, 한 가지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민주화 투쟁에서 이긴 것은 하드 파워의 투쟁에서 힘을 발휘한 것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매력적인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안철수 현상도 물리적인 힘에 끌린 현상이 아니라 미래희망이라는 매력에 사람들이 끌린 현상이다. 지금 민주화 이후에는 매력적인 비전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투쟁으로 일관하게 되면 사람들은 점점 더 그들을 멀리하게 된다. 그놈의 투쟁 때문에 계속 일상생활에서 잃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투쟁이 어떤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한 투쟁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프레이밍이다. 소프트 파워를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야당의 미래는 없다. 유권자가 자신들을 찍게 만들어야지 상대방을 떨어뜨리게 하는 시대는 아니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