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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3: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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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55947910 |
2008년 10월 19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13장 44절
설교제목 : 보물이 감추어져 있는 인생의 밭
하늘 나라는 마치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면서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 (마태 13:44, 표준새번역).
<성경 이야기>
엊그제 새벽에 일어나서 성경을 읽는 중에 제 딴에는 무릎을 탁칠만한 아주 흥미로운 해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영감 어린 성경해석이라고 할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세례요한의 친척 중에 ‘사가랴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이 양반은 아마도 시골에서 목회하는 제사장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 해인가 순번이 되어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와서 ‘대제사장의 역할’을 맡았던 듯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놀랄만한 사건이 그에게서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신해서 지성소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릴 때, ‘천사 가브리엘’이 직접 나타났던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헌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천사 가브리엘’이 늙은 사가랴에게 “네게 아들이 생길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이미 아이를 생산할 수 없는 늙은 부부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직접 나타나서, “아들이 생길 것이니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는 놀라운 계시를 직접 건넸던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 가브리엘은 사가랴 제사장이 그의 계시를 믿지 못하자, 계시의 증표로서 사가랴 제사장이 일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까지 했습니다.
복잡한 상황은 대 빼버리고 이야기를 단순하게 해보면, 사가랴 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천사를 만났고, 그것이 너무 놀랍고 감동되어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놀라운 감동과 신비로운 만남에 취해서 언어를 잃어버린 침묵의 성자, 그가 사가랴 제사장이었습니다.
<시 이야기>
저는 이 성경 이야기를 읽으면서 문득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이 생각났습니다. 특히 그시의 끝부분이 떠올랐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사가랴 제사장의 침묵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누가복음의 기록자는 “사가랴 제사장이 가브리엘 천사의 예언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 예언의 확실성에 대한 증표로서 침묵케 했다”는 ‘해석’을 제시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오늘 상상해 보는 성서해석은 ‘신비로운 만남 자체에 대한 신선한 충격에서 오는 침묵’입니다. 즉 한용운 식으로 표현해보자면, 사가랴 제사장이 그 자신의 인생 곡조를 이기지 못할 만큼 놀랍고 신비한 만남을 가졌기 때문에 침묵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한용운의 시 하나를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님의 침묵’과 잘 호응이 되는 그의 시 중에 ‘알수 없어요’가 있습니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 지루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 꽃도 없는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한용운의 시에 대해서 이런 저런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최소한 이 두 편의 시는 거의 완벽한 ‘영성시’입니다. 즉 신비로운 신적 존재를 추구하고 만나는 영성의 사람만이 읊을 수 있는 ‘아주 아름다운 신앙시’인 것입니다.
<천국의 삶이란>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늘 나라는 마치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면서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 (마태 13:44, 표준새번역).】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천국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개개인들이 모두 꿈을 이뤄서 온갖 명예와 재물을 다 누리면서 사는 삶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천국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이 땅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삶일까요?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실현될 삶일까요? 조심스럽게 말하건 데, 그것도 아닙니다.
천국의 삶이란 ‘숨겨놓은 보물’이 있는 삶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가 있는 삶입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알고 있기 때문에 흥분된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삶, 그게 바로 천국의 삶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인생의 밭에는 보화가 숨겨져 있다는, 즉 어느 누구의 밭이든 그 인생의 밭에는 겉에서는 볼 수 없지만, 파 보면 볼 수 있는 보화들이 감추어져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감격해서 사는 삶, 그게 천국의 삶인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보물이 감추어져 있는 인생의 밭”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누구나,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개개인 인생의 밭에는 ‘놀라운 보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언제나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매시간 매순간의 인생에는 ‘놀라운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속에 다 하느님의 영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천사를 만나고 있는 셈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고,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또 우리가 겪는 인생의 크고 작은 일들 속에는 ‘거룩한 장난꾸러기’(?)이신 하나님께서 감추어두신’ 놀라운 신비가 깃들어 있습니다. 즉 인생의 모든 시간과 모든 공간, 모든 사건 속에 하느님의 놀라운 신비가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를 알고 느끼는 자는 행복자이고, 이를 알고 느끼지 못하는 자는 불행자인 것입니다. 그걸 예수님께서 일깨워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보물이 감추어진 인생의 밭”이란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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