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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1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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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56553279 |
2008년 11월 2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창세기 18장 1절~5절
설교제목 : “눈을 뜨면 하느님이 보인다”
<사이트 이야기>
제가 자주 방문하는 인터넷 사이트 중에 새길교회(www.i saegil.net)가 있는데, 며칠 전 그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좋은 글(‘아남카라’-영적 깨달음을 주는 고전 50선 中)이 한편 실려 있었습니다. 시인이자 가톨릭 사상가인 존 오도나휴가 갖고 있는 신비한 영성의 일면을 핵심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글이었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글이 일깨워주고 있는 메시지의 핵심은 ‘켈트 영성’이었습니다. 켈트 영성이라면, 북유럽지역- 특히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지에서 일궈냈던 독특한 문화양식을 지칭하는데, 켈트영성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신비로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사례 : 반지의 제왕) 켈트인들의 정신세계는 유럽 주류 사회인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이성과 실용’의 정신과는 애초부터 그 궤를 달리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그곳에 전파되었지만, 그 켈트 기독교의 전개양상은 그리스 로마식의 이해와는 다른 아주 독특하고 신비로운 영성의 세계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새길교회 사이트에 실린 존 오도나휴 교수 역시 아일랜드 출신의 켈트인으로서 독특한 신학의 세계를 열고 있었습니다. 그가 저술한 책 제목만 보더라도, 그의 영성을 잘 짐작할 수 있는데, 그가 쓴 책으로는 『기억의 거소로서의 돌맹이』『불 : 집안 영의 난로불 앞에서』 『공기 : 하느님의 숨결』 『물 : 지구의 눈물』이 있습니다. 제목만으로도 그의 영성을 짐작케 하는 것들입니다.
<존 오도나휴의 영성>
‘아남 카라’라는 제목으로 짧게 쓰여진 존 오도나휴의 영성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쉬운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요즘 서양사람들은 흔히 ‘헬로’라는 인사말을 주고 받는데, 켈트인들은 이 인사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헬로’라는 인사말은 중성적 인사법이기 때문입니다. 중성적 인사법이라 함은 남성적이지도 않고 여성적이지도 않으면서 모든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무런 개성과 의미를 내포하지 않은 인사말’이라는 점입니다. 즉 무미건조한 인사말이라는 겁니다.
그와 달리 켈트인들은 ‘디아 듀이트’라는 인사말을 사용하는데, 그 말의 뜻은 “하느님이 당신과 함께 하기를”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게 신의 불꽃이 있음을 인정하고, ‘디아 듀이트’라고 인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켈트인들은 이웃들이 자신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이유가 참 기가 막힙니다. 존 오도나휴 교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우리 집을 방문하면 그렇게 좋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들이 일평생의 기억과 경험을 가진 존재로서 우리 집으로 들어와 바로 우리 앞에 앉기 때문이다. 그들이 떠나면 그들의 몸이 일어서고, 밖으로 나가 이 감추어진 세계를 가지고 나가버린다. 신비가 왔다 간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인 ‘아남 카라’만 해도 참 기가 막히는 내용입니다. ‘아남 카라’는 ‘영혼의 친구’를 뜻하는 말인데, 고대 아일랜드에서 이 말은 자기의 가장 깊은 자아를 나눌 수 있는 스승이나 영적 안내자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았답니다. 또 ‘아남 카라’에 담긴 또 하나의 메시지는 “모든 것들과 깊은 친구가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자연과, 심지어 우리 자신의 죽음과도 친구가 되라는 메시지를 이 ‘아남 카라’는 갖고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존 오도나휴는 강조하기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우정의 정신으로 대하게 되면, 대부분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정말 한 마디 한 마디 곱씹어보면 엄청난 메시지가 담긴 말씀들입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한창 더운 대낮에, 아브라함은 자기의 장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보니, 웬 사람 셋이 자기의 맞은쪽에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장막 어귀에서 달려나가서, 그들을 맞이하며,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하였다.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손님들께서 저를 좋게 보시면, 이 종의 곁을 그냥 지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물을 좀 가져 오라고 하셔서,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시기 바랍니다. 손님들께서 잡수실 것을, 제가 조금 가져 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에게로 오셨으니, 좀 잡수시고, 기분이 상쾌해진 다음에 길을 떠나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좋습니다. 정 그렇게 하라고 하시면, 사양하지 않겠습니다.”(창세기 18:1~5, 새번역성경).】
창세기 기록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난 사건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브라함이 만난 하나님의 형상은 ‘세 명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 명의 여행자, 나그네, 세 사람의 이웃,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메시지입니까?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눈을 뜨면 하느님이 보인다’라고 잡아보았습니다.
눈을 뜨면 곧 바로 하느님의 세계가 보입니다. 귀를 열면 곧 바로 하느님의 세계가 들립니다. 손을 내밀면 곧 바로 하나님의 세계가 만져집니다. 그걸 분명하게 알고 있던 이들이 곧 ‘아브라함’이었고, ‘켈트인들’이었고, 존 오도나휴이었고, 또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또 우리가 겪게 되는 모든 사건들, 우리가 맞이하고 보내는 모든 시간들 … 그것들에는 반드시,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하느님의 깊은 향기가 서려 있습니다. 그걸 아는 이가 곧 하느님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사람들은, 우리 신앙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모든 사건들을, 모든 시간들을 ‘하느님 섬기듯이’ 경건하고 진실되고 겸손하고 관대하고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눈을 뜨면 하느님이 보인다’는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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