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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4:2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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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2014. 9. 26 주일 오전 설교 http://cafe.daum.net/st888 |
성경 : 눅24:27-32
제목 : 뜨거운 마음
눅24:27-32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아멘.
본문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들었던 자들 중에 본 장 18절에 보면 글로바라는 사람과 또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엠마오로 내려가는 중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과 동행을 하시며 말씀을 나누는데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구약 예언을 자세히 설명해주실 때 그들 마음이 뜨거워졌고 집에 들어가 저녁식사로 떡을 떼어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자마자 곧 예수께서는 다른 곳으로 사라지셨습니다. 여기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고 한 말을 중심으로 <뜨거운 마음>이란 제목의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1. 감동이 있어야 역동성(力動性)이 생깁니다
날씨가 차가우면 자동차도 가열을 해서 출발해야 기계에 무리가 없습니다. 열매를 내는 과목이나 사람도 젊은 기운이 넘칠 때 건강한 열매와 아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지식은 많아도 열의가 없어지면 아무런 효과를 발휘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3년 어간 예수님께 많은 교육을 받았으나 그 교육만으로는 복음을 증거하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유언대로 기도하여 사도행전(행2:)에서 보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서야 가능했습니다.
그렇다고 감성이 많은 사람이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에나 열성이 있어야 그 일을 감당하는데 효력적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들은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했는데,
여기 뜨겁다는 말, 가이오메네(καιομένη,burning)는 불이 훨훨 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들었을 때, 그러니까 길에서 말씀을 들었을 때만 마음이 뜨거웠다는 뜻이 아니라 그 시점부터 줄곧 뜨거운 상태를 나타내는 현재 분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불타는 간절한 마음이 없으면 일반적인 문화생활에도 성의가 없어지고 특히 복음을 증거하려면 열정적인 마음이 필수적입니다. 봉사생활에도 마음이 뜨거워야 하고 모든 삶에 마음이 뜨거워야 합니다.
(라오디게아교회를 향하여)계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2. 마음이 뜨거워지려면
마음이 뜨거워져야 무슨 일에나 효과적임을 잘 알기는 한데 복음 안에서 어떻게 그 뜨거움을 채울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오해를 하고 신비주의자들처럼 그냥 가슴이 뜨거워지고 뒤집어지는 경험만을 기대하고 이상한 기도 행위를 하려고 하는데 성경에는 그런 방법이 없습니다.
1)성경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27절에서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모세와 선지자의 글들을 시작으로 구약 성경을 두루 살펴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해석해주셨는데, 32절에서 그들은 이 말씀을 들을 때, 눅24:32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고 했습니다.
같은 성경해석이라도 예수님에 관한 설교가 아닌 설교가 너무 많은데,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설교가 아닙니다.
요5:39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5: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2)성경을 삶의 기술로만 배우지 말고 예수를 닮는 쪽으로
성경을 배우긴 한데 소위 긍정주의 마인드로 삶의 기술을 위해 이용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많아졌습니다. 물론 잘 살기 위한 방편을 위한다지만 그보다 왜 사는지에 대한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빠뜨리는 해석은 잘못으로 가게 됩니다.
본 장 눅24:45-47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그러니까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사활사건을 토대로 인생이 죄사함 받도록 회개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해석을 받되, 우리가 죄인됨과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영생을 위해 다시 사신 예수님에 대해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14:22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개인 신앙생활과 교회의 문제를 이해하려할 때, 여러 다른 경우보다 복음을 받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현대교회가 철학적 사유의 시험을 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뭐든 인간 중심과 편리(人本主義)대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없이 부활과 승리, 성공적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삶의 원리가 다 그러한데 이상하게 교회가 오히려 소위 한탕주의의 사고를 유발시키고 있다는 것은 매우 잘못하고 있는 일입니다. 주님에 대해 죽으심이 주시는 삶의 역사적 의미와 부활 사건이 주는 진정한 인생의 소망을 들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들이 많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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