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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역을 했다고 해서 꼭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요나 궁극이............... 조회 수 764 추천 수 0 2014.10.03 14:47:04
.........
성경본문 : 욘4:11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4장 11절.

 

11절: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하나님의 목적성과 인간 요나와 대결을 하는데, 본서 끝까지 이렇게 대결을 하고 있는 겁니다. 1장에서 보면 요나의 타락이 있고, 2장에서는 회개가 있고, 3장에서는 재차 사명 받는 게 있고, 4장에서는 요나의 불평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보통 보면 본서를 요나가 회개했다고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지요. 그런데 요나가 회개한 그 장면은 끝까지 보이지를 않아요.

 

66권의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이 본서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 중에 한 부분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요나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계시하고 있는지? 즉, 이 사건은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심인지 우리가 알아야 되겠지요?

 

성경은 성문계시인데 이것은 역사계시요 형식계시요 모형계시요 더 나아가서 은밀계시이니 이 요나서에서 은밀계시를 깨닫지 못하면 안 되겠지요?

 

여기서 무엇을 가르치심인가? 많은 사람들은 요나서를 통해서 성도가 요나처럼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자기의 패역으로 걸어가면 하나님께서 자연을 동원시켜서 요나처럼 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고 말하는 자도 있고, 또 혹자들은 이 본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 사랑치 아니하시고 모든 이방인들도 이스라엘과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가르친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이나 선지자나 평민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고 불순종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벌을 내리고 순종을 하면 구원하신다고 하는 것을 가르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또 네 번째는 하나님께서 똑같이 역사를 하시게 되면 이스라엘보다 이방인이 오히려 더 회개를 잘 하고, 또 선지자보다 일반 백성들이 회개를 더 잘 하고, 일반 이스라엘보다 이방인들이 회개를 더 잘 하고, 선지자보다도 이스라엘이 회개를 더 잘 한다는 걸 가르쳐 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선지자가 패역성이 제일 많고, 둘째는 이스라엘이고, 그 다음에는 이방인들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는 등등 구구한 논설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완전자이시며 절대자이시며 독권자요 자존자이신 하나님의 독존성에서 자원적인 구원사역을 하고 계심을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다 그렇게 보아집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임을 알게 되면 이 면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인데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지 못하게 때문에 여러 이설들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본서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부절성, 즉 인간구원을 위해서 부절히 역사한다고 하는 것. 그리고 인간의 패역성과 강퍅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사랑하심으로 요나를 완전자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첫째는 말씀으로 찾아오셨고, 또 명령으로 니느웨로 가라고 했고, 찾아오신 이 말씀이 요나 속에서 니느웨로 가자고 권고를 하고 계시고, 그러나 요나는 이 말씀을 따라서 순종을 안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동원시켜서 니느웨로 가도록 역사를 했으니 요나는 몸은 니느웨로 가는 외적인 순종은 하면서도 마음은 하나님과 대립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실은 이건 실은 순종 같으나 불순종이다.

 

참 순종이 아닌 이런 순종은 하나님과 인격적 결합이 아니고 내적인 결합이 아니니 이것은 순종이 아니다.

 

또 요나서를 보면 순종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역적 역사는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볼 수 있는 겁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전도를 해가지고 니느웨 백성들을 회개를 시켰으니까 그렇게 보여진다 그 말이요.

 

인간의 지식들이 대개는 자기의 순종과 피동성과 인격적 결합의 동행성 이러한 신앙의 감도를 측정을 하지를 않고 사역의 성과에만 자꾸 신앙을 갖다가 붙이려고 하는 그런 경향이 있지요.

그래서 우리가 보면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그런 신앙이 있고, 이건 일종의 맹종이랄까? 하나님의 의사도 모른 채 생각도 없는 채 하나님의 계시에 무감각 상태에서 순종하는 신앙이 있다고나 할까요? 또한 인격적 결합에서 동행하는 그런 신앙도 있고. 인격적 결합이 돼가지고 자원적으로 순종적으로 나가는 그런 신앙도 있다.

 

우리의 물행 즉, 몸으로 움직여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 이 물행이 자원적이요 소원적이요 인격적 결합으로 동행이 되었을 때에 구원의 효력이 크다 그 말입니다.

 

이 구원은 영 자체의 성장이요, 이성과 영이 결합해 가는 성화구원이요, 인격적 결합에서 자기의 사업과 또는 가정까지 투자하면서 가는 신앙은 저축성이 있는 소유구원이요, 또 다른 사람에게 대외적인 관계를 가지며 진리와 생명을 연관을 시켜서 생명권 내로 끌어들일 때는 이것이 연관구원이 잘 된다 그 말이지요. 그러니까 전도를 할 때 진정한 의미에서 진리 생명 성령의 감화 등등 이런 걸 떼놓고는 신앙이 안 들어가는 겁니다. 신앙이 돼지지를 않아요.

 

보면 교회에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그런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성령을 받았으면 신앙이 바로 들어가는 건데 이 면이 암만해도 얕은 감이 있지요? 좋게 말하면 얕은 감이라 그럴까? 안 그러면 주관적인 어떤 감정에서 나오는 자기의 신앙이랄까? 주관적인 신앙. 진리가 안 들어가면 객관적인 신앙은 안 돼 나와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원칙적인 면에서 교회 오래 오래 다니면 신앙인이 됩니까, 하루를 다녔던 열흘을 다녔던 십 년을 다녔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가 그 사람 속에 박혀서 역사가 되면 그건 신앙이 돼 나가는 겁니까? 어때요? 그냥 교회 오래 오래 다니면 신앙이 들어가는 겁니까?

우리가 이걸 많이 착각을 하는데, 물론 본질적인 면을 염두에 두고 교회에 오래 다녔다면 그건 질적인 면에서 상당히 성장이지요. 질이 바로 박혀가지고 질적으로 성장. 그러나 자기 딴에는 신앙생활이라고 하겠지만 본질이 아닌 이질에서 자라는 것은 이질만 자랄 수밖에 없지요.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이라고 하는 게 뭐요? 신앙을 알아준다고 하는 게 뭐요? 인간이 알아주는 겁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알아주는 그겁니까? 하나님. 그렇지요. 항상 객관이 기준이지요. 그런데 보통 보면 그 하나님의 객관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려고 그래요. 항상 인간 제 편에서 해석을 하고 그러지. 우리가 기본구원을 말하는 게 아니고 진정한 의미에서 본질이 아니면 진리가 아니면 신앙이 자라는 것은 불가능이요. 안 되는 거요.

 

마귀가 인간이 없는 세계를 타락을 시킬 수 있습니까? 말이 이상한데? 타락이라는 게 뭐요? 무엇을 염두에 두고 ‘타락이니 아니니’ 하는 얘기가 되는 거요? 인간에게 붙여서 얘기가 아니면 안 되는 거지요. 그렇지 않아요? 도덕성을 가진 인간에게 붙여서 얘기가 아니면 안 되는 거지. 그렇지요? 그걸 떠나서는 ‘타락이니 아니니’ 말이 붙여지지를 않지요. 도덕성의 존재에게 붙여서 얘기가 되는 거지. 확실하지요?

 

외적인 역사가 눈부시게 잘 됐다고 해도 구원 면에는, 성화구원 연관구원 소유구원 성장구원 하는 이런 구원 면에서는 아주 빈약할 수가 있다. 그러니까 외부적인 사역이 크다고 해서 믿음이 크다고 봐서는 안 된다 그 말이지요.

 

요나서에서 외적인 사역성만을 보면 수십만의 니느웨 성 사람들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놀라운 성과가 일어난 거지요?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누구에게는 아무 효력이 없는 겁니까? 요나에게는 아무 효력이 없어요. 전혀 효력이 없어. 그 증거가 이 요나가 니느웨 성 사람들이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생명권 안으로 들어간 것을 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기뻐하고 찬송을 불렀습니까, 원망불평을 했습니까? 그렇지요. 원망불평이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가 보면 니느웨는 하나님과 같은 입장이요, 요나 자기는 하나님과 대립적인 입장에 섰으니까 요나 자기는 아직도 사망권에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원적이며 소원적이며 인격적 결합이 되어야 구원이 된다. 그런 것을 우리가 이 요나서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요나는 끝까지 회개를 하지 않고 하나님과 팽팽히 대립을 하고 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때요? 요나를 보통 회개했다고 그러지요? 어째서 회개로 보이지? 요나는 끝까지 회개를 하지 않았어요. 참 어지간히 깡깡하네요.

 

‘나에게는 요나가 없나’ 하고 가만히 더듬어 봐요. 분명히 요나가 있을 거요. 큰 요나가 들어있던 작은 요나가 들어있던 요나가 몇 마리가 들어있을 거예요.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한 게 회개인가? 여러분들, 목사(주-김경형목사) 기도 들으면 ‘아, 참 잘 만들어졌을 거다’ 그렇게 생각이 되지요? 안 만들어진 데서 그런 기도도 나올 수 있겠지. 사람의 마음이 참 흉물스러워. 내가 그렇다 그 말이요.

 

요나를 좋게 말해서 차원적으로 보면 신앙이 저차원이야. 좋게 말해서 ‘앞으로 깨닫게 되겠지. 앞으로 잘 되겠지’ 하는 하나이 희망사항을 두고 생각을 하면 ‘어리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되겠지만 그러나 선을 쫙 그어놓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고 볼 때에 정말 어지간히도 깡깡하지.

 

기도 올립시다.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만들어줄까’ 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을 하라고 말씀으로 오시고 사건을 잡고 찾아오시는데 저희들은 패역성이 많고 강퍆성이 많아서, 너무나도 둔탁하고 인간의 주관성이 너무 많고 꼿꼿해서 하나님의 그 사랑성 애정성으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뜨거운 마음을 알아보지 못하고 얼마나 곁길로 걸어간 일들이 많은지요? 그 때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섭섭하셨는지요?

 

아버지 하나님이여, 정말 참으로 죄송스럽습니다. 어찌하든지 저희들의 마음이 진리, 하나님의 말씀의 뜻대로 걸어갈 수 있는 복된 저희들의 걸음걸이가 될 수 있도록 저희들을 늘 붙들어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타이핑 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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