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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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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391) 2014년 6월 18일 |
요한계시록(44)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계9:1-6)
<4가지 종류의 교만 >
본문에는 ‘일곱 나팔 심판’에서 다섯 번째의 나팔 재앙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다섯 번째 나팔이 불 때 보인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는 ‘사탄’을 상징합니다. 사탄이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이유는 교만 때문입니다(사 14:12-14). 하나님은 사탄의 교만으로 큰 아픔을 당하셨기에 무엇보다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사람이 가장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 때는 교만해진 때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많이 받게 되는 때는 겸손해진 때입니다.
니버는 4가지 종류의 교만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권력적 교만(Authority pride)입니다. 신학 및 강조하는 진리의 다양성 때문에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교단이 형성될 수는 있지만 교단이 분리되어 형성된 수많은 교파는 권력적 교만의 산물이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매년 한 교파의 수장인 총회장 목사님이 400명 이상 생겨납니다. 그것은 400개 이상의 기독교 교파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현실을 보고 한국교회가 성장했다고 좋아하는 목회자보다는 그 이면의 현실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목회자가 훨씬 많습니다.
둘째, 지적 교만(Intelligent pride)입니다. 신실한 성도들은 박사 타이틀보다 목사 타이틀을 더 존중합니다. 반면에 일부 목사들은 목사 타이틀보다 박사 타이틀을 더 걸치고 싶어 합니다. 저희 기독교 선교연맹 교단의 창시자인 심슨(Simpson) 목사님은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누구보다 열정과 지식이 탁월했지만 목사 타이틀에 만족했습니다. 또한 저희 교단이 배출한 20세기 최대 저술가인 토저(Tozer) 목사님은 70여 권의 명저를 남겼지만 역시 목사 타이틀에 만족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셋째, 도덕적 교만(Moral pride)입니다. 예수님은 음행한 여인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돌을 던지려고 하는 군중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습니다. 또한 그 여인에게는 지고지순하시고 완전무결한 예수님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조용한 소리로 들려졌지만 모든 사람에게 “도덕적인 교만을 버리라!”는 천둥소리와 같은 소리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넷째, 영적 교만(Spiritual pride)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교만이고 그 중에서도 제일 무서운 것이 능력과 은사를 자랑하며 자신이 영적으로 높다고 생각하는 영적 교만입니다. 자기가 어떤 은사를 받았다는 것도 주의해야 하지만 자기가 어떤 은사를 주겠다고 하는 것은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 모습은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모습으로서 큰 불행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또한 간증이 자랑으로 들려지지 않게 하는 지혜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처럼 어떤 경우에도 겸손한 삶을 잃지 마십시오.
<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
땅에 떨어진 사탄이 어떻게 됩니까? 무저갱의 열쇠를 받습니다. 그리고 사탄이 무저갱을 열 때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가 올라와 해와 공기가 어두워졌습니다(2절). 또한 황충 즉 메뚜기 떼가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왔는데 황충이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고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사람들만을 해쳤습니다(3-4절).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고 한시적인 기간을 상징하는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는데 그 괴로움이 죽음의 고통보다 더할 것이라고 묘사합니다(5-6절).
육신의 고통 중에서 최고의 고통은 죽는 것인데 내적인 괴로움은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직접 당해보지 않아서 다섯 째 나팔이 불 때 당하게 될 고통의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적인 고통이 심할 때는 그 고통이 죽는 것이 이상으로 심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대략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그런 내적인 고통이 심해질 것이고 특히 불신자들은 죽음 이후에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알지만 죽으면 절대로 끝이 아닙니다. 죽고 영원히 끝나는 것이라면 열심히 살아서 많이 남긴 사람은 죽으면 끝이기에 죽는 순간 가진 것을 순식간에 다 빼앗긴 셈이 됩니다. 반대로 나쁜 일 하다가 사회에 빚만 남긴 사람은 죽으면 끝이기에 죽는 순간 그 빚을 순식간에 다 탕감 받는 셈이 됩니다. 결국 죽으면 끝이란 생각은 가장 불의한 원리가 됩니다. 그래서 죽는 것이 끝이 아니어야 당연한 것이고 죽은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과 환난을 너무 겁내지 마십시오. 믿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가장 무서운 날이 되겠지만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가장 기쁜 날이 될 것입니다. 심판의 날에 하나님은 성도가 수고하고 고생한 것을 다 갚아주실 것이고 성도의 눈물과 정성과 땀에 대해 큰 보상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어야 하고 죽음 후의 심판은 꼭 있어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 죽음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됩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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