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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13: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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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08) |
요한계시록(58) 믿음 자체가 기적입니다 (계 13장 11-15절)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에 관한 묘사가 나옵니다. 첫째 짐승은 사단의 영을 가진 적그리스도인데 둘째 짐승은 무엇일까요? 둘째 짐승은 두 뿔을 가진 어린양처럼 생겼는데 말은 용처럼 했습니다. 즉 생긴 것은 순한 양처럼 생겼지만 입술에서는 사탄의 말이 나왔습니다. 그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인 적그리스도와 같은 권세를 행하면서 적그리스도를 경배하게 하는 적그리스도의 증거자, 거짓 선지자입니다.
사실 말 하나만 가지고도 진짜 선지자와 가짜 선지자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대한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물론 하나님은 각 성도에게 어느 정도의 기본 분별력은 주셨습니다. 문제는 욕심과 교만 때문에 분별력을 잃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분별력을 달라는 기도와 함께 분별력을 잃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도 필요합니다.
이 거짓 선지자는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는 엄청난 기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게 만들고 그 우상을 말하게 하는 능력도 보여줍니다(13-15절). 이 장면은 기적 중심적인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모든 기적을 다 하나님의 것으로 믿지 마십시오. 사람을 미혹하려고 마귀가 행하는 기적도 있기에 “기적! 기적!” 하다가 영혼이 큰 해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마지막 때의 가장 심각한 전쟁은 유브라데 전쟁도 아니고 아마겟돈 전쟁도 아닙니다. 진짜 무서운 전쟁은 ‘화려한 기적’과 ‘진리의 말씀’과의 전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 성경 읽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요, 때로는 재미없는 모습처럼 보이는 ‘매일 성경 읽기’는 사탄으로부터 비롯된 유혹, 미혹, 헛된 이미지 신앙, 영적 허영 등에서 영혼을 지켜주는 가장 위대한 영적 도구입니다.
하나님도 기적의 하나님이고 마귀도 기적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그 기적을 분별할 수 있습니까? 일단 기적을 일으켰다고 자기 입으로 널리 선전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척 하면서 자기 이름을 높이는 것은 거의 사탄이 주는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분별의 기준은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 및 말씀과 가까워지는가를 보면 됩니다. 그처럼 말씀 친화적인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 믿음 자체가 기적입니다 >
살다 보면 가끔 기적을 체험해서 축복 및 성공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단순한 진리 속에서도 충분한 축복 및 성공의 원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떤 분은 기적과 축복이 있어야만 하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반면에 어떤 분은 기적과 축복이 없어도 하나님을 믿겠다고 합니다. 어떤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실지 그 해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기적과 축복이 없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단순한 것에서 진리를 찾고 감사하며 믿는 것이 진짜 신앙의 맛이지 어떤 특별한 기적이 일어나는 것 때문에만 믿는다면 사실상 신앙이 있을 필요가 무엇이 있습니까? 기적이 있기 때문에만 믿는다면 모든 사람이 다 믿을 것이기에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지만 참된 믿음의 사람을 골라내시려고 기적을 시도 때도 없이 주시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기적이 일어나도 온전한 믿음이 반드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고 성령이 감동하셔서 생깁니다. 복음서를 보면 소경 10명이 다 주님으로부터 치유 받았는데 그들 중에 9명은 기적을 체험해도 주님 앞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적을 체험하면 다 믿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기적은 ‘믿음 같은 것’을 줄지 몰라도 ‘참된 믿음’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믿음을 가진 것 자체가 최대 기적입니다.
영적인 유혹에 잘 넘어가지 않는 성도가 겉보기에는 물처럼 보잘것없게 보여도 사실상 그런 사람들이 교회와 사회를 복되게 만듭니다. 물은 외면을 깨끗하게 해주고 내면의 갈증을 풀어줍니다. 또한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른 사물과 다투지 않고 낮은 곳에 있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처럼 교회와 교우를 이롭게 하려고 손해를 마다하지 않는 성도가 되려면 치열하게 영적인 허영심과 싸워야 합니다.
때로 좋은 일 하고 오히려 더 영적으로 타락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가장 좋은 일은 자기 자신이 좋은 일 했다는 것을 잘 의식하지 못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매일 새벽 교회에 나와서 교회와 가정과 이웃을 위해 기도하지만 “내가 이만큼 기도한다.”는 의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진짜 좋은 성도입니다. 그처럼 나누고 섬기는 일에 적극 동참하고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찾아서 하고 가장 좋은 일을 하고도 가장 내색하지 않는 겸손한 심령에게 하나님의 큰 축복이 예비될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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