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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16: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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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20) |
요한계시록(67) 크신 하나님의 은혜 (계 16장 8-11절)
본문에는 마지막 때의 일곱 대접 심판 중 넷째 대접 심판과 다섯째 대접 심판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자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웠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않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8-9절). 바로 이어서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세상의 강력한 권세를 상징하는 짐승의 왕좌에 쏟자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 정도까지 되었지만 그들도 역시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11절).
얼마나 죄성이 끈질깁니까? 그 죄성이 악한 자존심과 원망으로 표출되는 것을 보십시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란 거룩한 자존심을 가져야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의 자존심조차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살다 보면 자기 정서나 입장이나 가치관이 하나님의 명령과 충돌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자기 입장과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십시오. 자기를 잘 버릴 줄 알아야 결국 얻는 존재가 됩니다.
또한 본문 9절에서 “회개하지 않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라고 한 말씀은 회개가 결국 주께 영광 돌리는 것이란 암시가 담긴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께 가장 영광 돌리는 길인 줄 생각하지만 본문은 진정한 회개가 하나님께 최고로 영광 돌리는 길임을 잘 말해줍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자신은 축복 받을만한 자격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축복 받으면 다음과 같은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보잘 것 없고 죄와 허물이 많은 제게 어떻게 이런 은혜까지 주십니까?” 그처럼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고 크신 복음 받으면 대뜸 떠올려야 할 것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자신의 죄인 된 모습과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신앙은 그 경지까지 가야 부작용이 없는 참된 신앙이 됩니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성공할수록 자신을 크게 보고 높아지는 사람이고 다른 종류의 사람은 성공할수록 하나님을 크게 보고 낮아지는 사람입니다. 후자 성도가 되어야 그 성공이 삶의 보람과 기쁨을 주는 진짜 성공이 됩니다. 옛날에는 어떤 깊은 이치를 깨달으면 “득도했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실패해도 하나님을 크게 보고 성공해도 하나님을 크게 보는 것이 바로 득도한 것입니다.
< 크신 하나님의 은혜 >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된 모습을 발견하는 시야가 있으면 삶의 목적이 뚜렷해지면서 하나님의 섭리도 크게 보이게 됩니다. 신실한 성도란 남들이 죄라고 여기지 않는 시시한 죄에도 깊이 회개할 줄 아는 성도를 말합니다. 그런 진실한 회개가 있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게 되기에 결국 ‘회개의 깊이’는 ‘은혜의 높이’와 비례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은 물론 남에게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하는 최상의 통로입니다. 그런 회개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은 최고로 영광을 받습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목사님들이 제일 좋아하는 찬송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었습니다. 둘째로 좋아하는 찬송은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였습니다. 셋째로 좋아하는 찬송은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였습니다. 이 세 찬송의 공통점은 모두 ‘나’란 단어로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인 줄 알아야 은혜가 넘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 죄가 크게 느껴져야 은혜도 크게 느껴집니다.
신앙생활에 왜 은혜가 없습니까? 자기 죄와 허물이 적은 줄 알기 때문입니다. 죄와 허물이 적다고 느끼면 하나님 앞에 나와 눈물로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반면에 자기 죄와 허물이 크게 느껴질수록 더 은혜를 받고 더 하나님과 예수님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더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고 더 매일의 삶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수시로 이런 찬송이 나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지만 아브라함도 믿음이 어떤 때는 올라갔다 어떤 때는 내려갔습니다. 결국 그가 믿음의 조상이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런 은혜가 있다면 누구든지 복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선진들에게 가장 공통적으로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였습니다. 요즘은 신실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더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꾸준히 지킬 수 있는 것도 큰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할 때 하나님이 은혜의 자리에 계속 머물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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