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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17: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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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 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23 ) |
요한계시록(70) 음녀 바벨론을 조심하십시오
(계 17장 1-5절)
일곱 번째 대접 심판 때 나타나는 음녀는 어떤 존재입니까? 첫째, 음녀는 외적으로 화려합니다. 음녀는 여러 나라의 여러 언어를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는 존재입니다(1절). 음녀는 외적으로 화려하고 시선을 끌기에(4절) 수많은 사람들이 음녀에게로 몰려갑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가 될수록 외적인 것에 현혹되지 않고 내면을 볼 줄 아는 영적인 시각을 더욱 의식적으로 길러야 합니다.
둘째, 음녀는 음행이 가득합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음행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땅의 임금들이 음녀가 주장하는 사상을 따라 국가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할 것입니다(2절). 20세기에는 그 사상을 공산주의로 보았지만 공산주의보다 더 사악하고 교묘한 사상이 복음처럼 위장해서 사람들을 미혹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분별 능력이 마지막 때는 특별히 필요합니다.
셋째, 음녀는 큰 권세를 얻습니다. 음녀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었습니다(3절).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이 어떤 국가 연합체라면 이 음녀는 그 국가 연합체를 이끄는 지도자일 것입니다. 그처럼 정치적으로 국가별 통합이 급속히 진행되면 종말전쟁의 가능성도 커집니다. 그 종말전쟁은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보다 훨씬 무서운 전쟁이 될 것입니다.
넷째, 음녀는 바벨론을 상징합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바벨론은 외적으로도 화려하고 복음을 내세우는 것처럼 위장하고 정치적으로도 막강한 세력을 형성한 공동체로서 아마 어떤 지도자를 중심으로 형성될 유럽의 통합국가로 추정됩니다. 3-4십 년 전만 해도 유럽 통합국가 얘기가 나올 때는 회의가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유럽은 점차 단일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 음녀 바벨론을 조심하십시오 >
여러 정황들을 볼 때 종말의 징조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때 더욱 깨어 근신해야 합니다. 깨어 근신하라는 말은 결국 “마지막 때의 음녀를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바벨탑의 삶'과 가장 반대되는 삶은 무엇일까요? 바로 ‘십자가의 삶’입니다. 결국 종말 때에 가장 필요한 삶은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처음은 말구유의 삶이었고 마지막은 십자가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감동과 울림이 전해집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기 전에 강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던 세례 요한이 붙잡혔습니다. 그런 일이 있으면 대개 사람들은 위축되지만 예수님은 그때 요단강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처럼 믿음이란 편한 코스보다 위험한 코스를 택하는 것이고 편한 길보다는 가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화려한 삶을 예약하지 않고 십자가의 삶을 예고하지만 십자가의 삶이 결코 불행한 삶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면 십자가 안에서 기쁨과 보람을 누리게 됩니다. 왜 산을 오를 때 어떤 사람은 꼭 힘든 등반코스를 택합니까? 그때 더 큰 묘미와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도 힘든 등반 코스를 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거짓을 최대한 주의하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살려고 하면 세상에서 여러 손해가 많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사랑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남에게 좋은 일 많이 하는 것보다 상처를 주지 않는 삶이 사실상 더 힘듭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산다는 것은 험한 코스로 가는 삶이지만 십자가를 질 때 주어지는 보람과 행복과 기쁨은 대단히 큽니다. 쉬운 길을 선택하는 삶은 기초 원리를 잘 배운 튼튼한 인생을 만들지 못하고 단기적인 성공을 위해 방법과 기술만을 배우는 세미나 인생을 만듭니다. 세미나 인생은 참된 의미와 보람을 얻지 못하기에 성도는 늘 쉬운 바벨론의 길보다는 가치 있는 십자가의 길을 택하려고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외적으로 화려한 것에 이끌리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런 본능과 성향을 인식하고 종말시점이 가까워질수록 눈에 보이는 것보다 내면적인 것을 보는 시야를 잘 길러서 화려한 바벨탑을 떠나 베들레헴 구유로 내려가려고 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어렵고 병든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분담하려고 할 때 믿음의 의미는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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