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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14: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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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
본문: 잠14: 1- 35
다마스라는 사람은 사업을 하다가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빚을 갚기 위해 잠도 자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그래도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계속 망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사업의 주인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이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의 계획에서부터 결재를 받는 것까지 모두 주님께 의뢰했습니다. 그리고 사업은 주님께 맡기고 전도를 하러 다녔습니다. 그러자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망하고 있는 사업을 돌보지 않으니 더 망할 것이라고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일어나기 시작했고, 날로 번창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미련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빗나간 행동을 하고서 나중에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이중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뜻대로 행함으로써 자기 길을 굽게 하여 죄를 짓고, 그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고 원망함으로써 죄를 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 주시므로 잘못된 일도, 원망할 일도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19:3)
어떤 사람이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일까요?
첫째,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시53:1)
18세기의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는 장담하기를 기독교를 일으키는데 여러 세기가 걸렸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50년 내에 기독교를 말살시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무신론 책자와 하나님을 반박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20년 만에 제네바 성서공회에서는 그의 집을 사서 성서공회 출판소로 삼았고 후에 외국어 성경을 출판하는 파리의 본부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아직도 세계의 Best-seller가 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며 구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Voltaire의 저서는 6권 한 질에 90센트에 팔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나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았을걸』하고 후회했으며 천국도 지옥도 없다던 그가 『나는 지옥에 간다』하면서 비참한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어리석은 만용을 부리지 마십시오. 영원히 후회합니다.
또 토마스 페인이란 사람은 『이성의 시대』(The Age of Reason)란 책을 써서 기독교를 조롱하며 『이 책은 성경을 말살하게 된다』고 장담하면서 『100년 안에 성경은 다 없어지고 박물관이나 고 서점 한 구석에서 먼지 앉은 책으로 찾아볼 수 있으리라』했습니다. 1794년 런던에서 그 책이 출판되었는데 그는 그 책 때문에 비참하고 고독해졌습니다. 그는 『이성의 시대가 쓰여지지 않았더면 좋았을걸, 그 책을 다 회수할 수 있다면 내가 가진 무엇이라도 다 줄텐데』 라고 후회했습니다. 페인은 1809년 죽는 날까지 침대에 누워만 있는 무익한 인간이 되었고 친구도 없이 고독하게 지냈습니다. 성경은 여전히 베스트 셀러로 남아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여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을 부인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부인하고, 이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들은 마음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함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채울 수 없는 공허가 엄습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바벨탑을 쌓은 인간은 결국 흩어짐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는 흩어짐을 당함과 동시에 버림을 받게 됩니다. 혹시 우리 주변에 하나님이 없다고 부인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성도들은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신앙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둘째, 자기 분수를 모르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잠12:9, 롬12:3)
어느 여름날 여치의 고운 노랫소리를 들은 당나귀가 여치에게 물었답니다. 『여치야, 너는 정말로 고운 목소리를 가졌구나. 도대체 무엇을 먹으면 그렇게 목소리가 고와지니?』 『특별한 음식은 먹지 않아. 우리는 풀잎에 맺혀있는 이슬을 먹어.』 그 날부터 당나귀는 여치와 같이 고운 목소리를 내려고 이슬만 먹다가 굶어 죽었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한 사람에게 좋은 점을 주었답니다. 자기의 좋은 점을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남의 것만 좋게 보고 흉내를 내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당나귀와 마찬가지 아닐까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가질 수 있는 것과 가질 수 없는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이 한다고 나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나의 소유, 지식, 내게 주어진 능력에도 엄연히 한계가 있습니다.
이솝우화를 보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사자하나가 어느 동네 길을 걸어가다가 참으로 아름다운 처녀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 눈에 반해버린 이 사자는 그 처녀의 뒤를 따라갔죠, 그 처녀는 그 동네 농부의 딸로 아름답기로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사자는 한눈에 사랑에 빠져 농부를 찾아가서 『나는 당신 딸을 사랑하니 결혼을 하겠소, 만약 싫다면 당신 딸을 잡아먹고 말겠소.』 갑자기 사자의 청혼을 받은 농부는 앞이 캄캄했으나 사자가 무서워 거절하지 못하고 하루의 말미를 달라고 사정을 해서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걱정 때문에 그 날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걱정하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서 딸은 그 자초지종을 묻고는 괜찮으니까 내일 사자가 오거든 이렇게 저렇게 시키는 대로 하시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사자가 아침 일찍 찾아왔습니다. 『생각해 봤소?』 사자가 큰 소리로 묻자 농부는 반색을 하며 사자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는 웃는 낯으로 『내 딸도 당신처럼 성실하고 용감한 사자라면 결혼하고 싶다』고 그럽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을 하더군요. 기분이 좋아진 사자는 침을 삼키며 물었습니다. 『한가지 걱정이라니』 농부는 머뭇거리다가 『저.. 말입니다. 내 딸도 당신을 좋아하는데 사자님의 그 날카로운 발톱이 무서워 가까이 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발톱을 뽑아주면 시집을 가겠답니다.』 『뭐, 그거야 어렵지 않지.』
농부의 딸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긴 사자는 자기의 발톱을 모조리 뽑고는 다음날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사자를 추켜세우며 말했습니다.
『내 딸은 사자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답니다. 그것만 들어주시면 기꺼이 시집을 가겠답니다.』
『오 그래? 그 부탁이 뭐요?』 『실은 내 딸이 사자님의 그 날카로운 이빨이 무서워 가까이 갈 수가 없답니다.』 『알았소. 그럼 내일 다시 오겠소』 이미 발톱을 뽑아버린 사자는 뒤뚱거리며 물러갔습니다. 사자는 그대로 돌아갔다가 다음날 다시 왔습니다. (이빨 빠진 소리)
『내 당신 말대로 이빨도 뽑았소, 자 이제 당신 딸을 나에게 주시오』 그러자 농부는 갑자기 몽둥이를 들더니 『네 이놈, 지금까지는 네 발톱과 이빨이 무서워 꼼짝 못했지만 이제는 무서울 게 없다.』 하며 사자를 마구 두둘겨 팼습니다. 사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쳤지만 이미 발톱도, 이빨도 다 뽑아버린 뒤였습니다. 분수를 모르고 눈앞에 것에만 집착하여 자신의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자와 같은 것입니다.
셋째, 물질과 눈앞에 보이는 것, 세상의 것만 추구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미국 아일랜드 교도소에 있는 한 죄수가 석방되기 하루 전에 탈옥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탈옥자는 일단 잡히면 최고 20년까지 형량이 언도되는 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죄수는 왜 하루를 남기고 탈옥을 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죄수는 분명 근시안적 사고를 가진 사람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죄수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혹시 에서처럼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고 있지는 않는지요? 눈앞의 작은 욕심 때문에 생명의 면류관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1987년 1월에 현금30만 달러와 수백만 달러 상당의 부동산 등 많은 재산을 가진 미국 뉴욕에 살던 한 구두쇠 노인이 난방비가 아까워 전기 난로를 끈채 자다가 얼어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노파의 이름은 죠셉히어로서 죽기 2년 전에도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가스공급을 중단해 달라고 요구해서 죽을 번한 경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경찰의 발표에 의하면 이번에도 그는 난로의 플러그를 빼고 체온만으로 추위와 싸우다 얼어죽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한 어리석은 부자는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그 날 밤에 죽었습니다.(눅12:16-21) 세상의 것만 바라보는 사람은 이 어리석은 부자와 같습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데(전5:1
5, 딤전6:7) 재물의 욕심만 추구하는 사람은 실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넷째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 중소기업의 사장이 사무실에서 바쁘게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에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제 회사가 제법 잘 운영이 되고 하니까 바빠지기 시작하여 도저히 교회에 나갈 시간이 없었습니다. 걸려오는 국제전화와 FAX, 또 회의, 상담, 결재, 등등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장실을 누가 노크를 하여 누구냐고 하였더니 전에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찾아왔습니다. 이 사장은 바쁘니까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목사님을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에도 이 사장은 예수 없이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날마다 물건은 잘 팔리고 회사는 번창하였습니다. 그 후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불청객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그 사장은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진 것입니다. 죽음은 예약도 없고 노크도 없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예수 없이 열심히 돈만 벌던 그 사장의 마지막은 참담하였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항해를 하던 배가 풍랑을 만나 파선을 당하고 무인도에 간신히 정착하였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6개월 정도는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섬을 수색한 결과 그 섬에 사금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흥분한 사람들은 구조선을 찾는 것보다 사금을 캐는 데 정신이 팔렸습니다. 언제 구조선이 섬 주위를 지나갈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금을 캐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일 년이 지난 후, 지나가던 배가 우연히 이 섬에 들렸다가 많은 해골을 발견하였는데 이상한 것은 해골들 옆에 반드시 사금이 함께 놓여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사금을 캐어 부자가 되는 데 성공했지만 지나가는 배로부터 구조를 받는 데는 실패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돈보다 더 큰 문제 즉 죽음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구원이라는 것에 대한 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인생의 실패자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다섯째, 행함이 없는 사람입니다.(마7:21, 약2:14, 요일3:18)
어느 소년이 냇물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자기 키보다 훨씬 깊은 곳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빠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때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으므로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러 그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 사나이는 소년의 앞 뒤 생각 없이 마구 행동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 개구쟁이 소년이 외쳤습니다.
『아저씨, 지금은 저를 구해 주시고 설교는 나중에 해주세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마7:26)
여섯 째, 돈과 물질을 너무 사랑하는 자입니다.(딤전6:7-10, 히13:5, 잠23: 4-5, 전5: 10- 17)
오래 전 불란서에 부유하고 욕심 많은 한 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하여 성의 구석진 곳, 아무도 모르는 밀실에 숨겨두었습니다. 밀실에 이르는 통로는 깊숙하고 협소하였으며 입구는 철문으로 문이 닫힐 때면 저절로 잠기게 만들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이 수전노는 여기서 아무도 모르게 돈을 만지작거리며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소작인들로부터 징수한 소작료가 들어있는 돈주머니를, 밤이 되기를 기다려 밀실 금고로 가져가 언제나 하듯이 돈을 만지작거리며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방을 나오려고 열쇠를 찾으니 열쇠를 바깥에 두고 온 것을 알고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문은 잠겼고 아무리 외치고 두드려도 소리나 빛이 외부와 차단되어 있는 견고한 그 방에 어느 누구도 그가 갇힌 것을 알고 달려와 구해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집안 사람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실종을 이상스럽게 생각하고 이 신비스러운 사건을 해결하려 애썼으나 결국 누군가에 의해 유괴되어 살해당했다고 결론 내리고 말았습니다. 수개월이 지난 뒤 자물쇠를 만드는 어떤 노인이 백작의 실종 소식을 듣고 20여년 전에 그가 특수한 자물쇠를 고안하여 달아 준 견고한 방을 회상하였습니다. 그 노인이 백작 친척과 함께 그 밀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문은 여전히 잠겨 있었고 방안에는 백작의 부패한 시체가 돈더미 위에 있었습니다. 그 광경으로 미루어보아 죽어가면서 고통스러워했을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 하니라』(눅12:15)하였고,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전5:15, 딤전6:7, 욥1:21)하였습니다. 따라서 물질을 너무 사랑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잠11:28)
성경에 보면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돈을 사랑하여 나아만에게서 취하매 문둥병자가 되었고(왕하 5장), 아간은 여리고 성에 들어가 여호와의 곡간에 들일 은, 금, 외투를 탐내어 땅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그 가족이 아골 골짜기에서 망하였으며(수 7장),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가룟유다는 돈을 사랑하여 스승을 팔아 망했고, 초대교회 시절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돈 때문에 거짓말하다 망한 이야기가 나옵니다.(행5:1-11)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의 축복은 많이 받아 누려야 하지만 물질을 너무 사랑하여 땅에 쌓아두거나, 범죄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고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여야 하겠습니다.
재물보다 하나님을 우선 순위로 섬겨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사랑의 대상이요, 돈과 재물은 단지 이용의 대상일 뿐인데, 사람들은 이와 정반대로 하나님을 이용하려 하고 돈과 재물을 사랑하며 살아간다』고 탄식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재물, 이 둘 중에서 삶의 우선 순위를 하나님께 두는 사람만이 재물을 올바르게 다스리며 관리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얻게 됩니다.(마6:24)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 찌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잠8:5)
일곱째, 너무 조급하고(잠21:5), 분노를 속히 하는 자입니다.(잠14:17, 욥5:2, 잠7:9, 잠15:18, 잠16:32)
한 농부가 신기한 거위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이 거위는 하루에 황금알을 하나씩 낳아주었으므로 농부는 점점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일할 생각도 않고 날마다 거위가 알 낳는 시간만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위집 앞에 앉아 거위를 바라보던 농부는 슬며시 욕심이 생겼습니다. 『매일 황금알을 하나씩 낳으니 아마도 저놈의 뱃속엔 황금알이 가득 들어 있겠지?』 농부는 틀림없이 거위의 뱃속에 수많은 황금알이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저 거위를 잡자. 날마다 한 알씩 낳는 것을 기다리고만 있을 게 아니라 잡아서 뱃속에 든 황금알을 한꺼번에 몽땅 꺼내버리자.』 그래서 농부는 곧 날카로운 칼로 거위의 배를 갈랐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황금알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위의 뱃속은 보통 거위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농부는 땅을 치며 후회했으나 다시는 황금알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냅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14:29)
『네가 말이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잠29:20)
여덟째, 목이 곧고 강퍅한 사람입니다.(출32:9-10, 히3:7-8)
당신은 『곰』하면 먼저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미련하다』라는 말이 떠오르시지는 않습니까? 실제로 곰은 무척 고집스럽고 미련합니다. 때문에 사냥꾼들은 곧잘 곰의 미련함을 이용해 사냥을 합니다. 곰은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닙니다. 이러한 습성을 아는 사냥꾼들은 곰이 다니는 길목에 커다란 돌맹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러면 곰은 어김없이 그 길로 지나가다가 커다란 돌맹이에 머리를 부딪칩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겪고 나서도 곰은 결코 옆으로 돌아가거나 고개를 숙이고 그 길을 통과하려 하지 않습니다. 미련하고 고집 센 곰은 다시금 뒤로 물러섭니다. 그리고는 먼저보다 더 거센 속도로 달려와 머리로 돌을 들이받습니다.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가 결국 곰은 머리가 깨져 피투성이가 되어 죽고 맙니다.
아홉째, 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잠14:16)
아프리카에 사는 부족들 간에 싸움이 잦던 시절, 치파이(Chih-Paih)족이 판쉬(Fan-Shin)족을 정복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러한 전쟁의 혼란한 틈을 타 누군가가 판쉬 족의 마을에서 종 하나를 훔쳐 어깨에 메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댕그렁』하고 종소리가 나자 그 도둑은 다른 사람이 들을까봐 두려워 즉시 손으로 자기 귀를 막았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소리가 자기 귀에 들리지 않게 하면 다른 사람들도 역시 종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나쁜 행동을 하거나 죄를 저질렀을 때 그것이 절대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자신들의 행위를 숨기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해 보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어리석음이란 바로, 종을 훔치면서 자기 귀를 막았던 저 도둑과 똑같은 것입니다. 비록 자기의 귀를 막고 양심의 창을 꼭꼭 잠궈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세미한 소리까지 모두 다 듣고 계시는 것을 모릅니다.
『미련한 자는 죄를 심상히 여겨도 정직한 자 중에는 은혜가 있느니라』(잠14:9)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의 미움을 받느니라』(잠24:9)
열 번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사람입니다.(고전1;18, 잠14:7)
대서양을 횡단하는 배에 한 가난한 승객이 탑승했습니다. 배 삯도 겨우 마련한 그는 미처 식대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식사시간이 되면 주린 배를 쥐고, 식당으로 몰려가는 다른 승객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굶다가 그는 더 이상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배불리 먹었습니다. 실컷 먹은 후, 그는 처연한 심정으로 선원을 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게는 밥값을 지불할 만한 돈이 없습니다』 그러자 선원이 의아해하며 대답했습니다. 『손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님이 지불하신 배 삯에는 이미 식대가 다 계산되어 있습니다』
가끔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는 사람에게서 이런 서글픈 무지를 봅니다. 그들은 주어진 고난을 초인적인 인내로 꿋꿋하게 견디어 낼 뿐, 풍성한 삶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의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4:6)
열한 번째, 물질과 쾌락(연락)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전7:4,5)
1987년, 지미 베이커 목사의 T.V 선교는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베이커 목사는 복음을 전하는 순수한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다보니 가장 좋은 매체가 텔레비전이었습니다. 거기서 설교하니까 동시에 수백만 명이 보고 듣고, 은혜를 받고, 병 고치고, 구원받고, 회개하는 등 놀라운 역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 텔레비전 사역이 더 잘되도록 개인적으로 T.V 선교에 많은 헌금을 했습니다. 헌금이 연간 150만 달러에서 1,500만 달러가 되고, 또 1억 달러가 넘으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베이커 목사가 부인과 함께 헌금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급기야 전용 비행기를 사고 개집에 에어콘을 달아주는 등, 마치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가 누리던 호화 찬란한 생활을 현재에 재연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가지고 마음대로 흥청망청 살았습니다. 이들이 한 행동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결국 그는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사치스런 생활로만 끝나지 않고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자녀들 앞에 크나큰 죄를 범하였습니다. 즉 이성 문제로 스캔들을 일으켜 뭇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신문과, 텔레비전에 큰 뉴스 거리가 되어 결국 강단에서 물러나고 성직자 자격을 박탈당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물질과 연락을 너무 사랑한 결과입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1- 4)
볶은 깨를 나물에 묻혀 먹어 본 한 어리석은 사람이 『야 정말 고소하고 맛있구나』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볶은 깨를 심으면 굳이 볶지 않더라도 고소한 깨가 열릴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듬해 봄 이 바보는 깨를 『정성껏 볶아』 밭에 뿌리고 잎이 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해 깨 농사를 완전히 망치게 된 것은 뻔한 일이었습니다. 쾌락과 향락에 길들어진 채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열두 번째, 이단종파와 거짓, 사이비종교에 빠진 자입니다.(마24:11, 막13:22, 고후11:13- 15)
인도의 갠지스 강은 거룩한 강으로 죽어가는 사람의 몸을 그 강에 던지면 천국에 간다고 해서 인도 사람들은 그 강을 신으로 알고 숭배합니다. 서양의 어떤 과학자가 강물을 떠서 인도인에게 현미경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물은 시체와 쓰레기로 인해 오염되어 있었고, 현미경에는 병을 일으키는 독한 세균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과학자는 강물을 끓이기 전에는 먹지 말라고 인도인에게 권했지만 오히려 인도인들은 더러운 물을 먹던 것을 후회하지 않고 세균을 밝게 보여 준 현미경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거짓 선지자와 자칭 하나님의 일꾼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잠14:15)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눅21:8)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요일4:1)
찬송가 204장 (통 379장) 『주의 말씀 듣고서』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주의 말씀 듣고서 준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 같아 비가 오고 물 나며 바람 부딪쳐도 반석 위에 세운 집 넘어지지 않네
2. 주의 말씀 듣고도 행치 않는 자는 모래 위에 터 닦고 집을 지음 같아 비가 오고 물 나며 바람 부딪칠 때 모래 위에 세운 집 크게 무너지네
3. 세상 모든 사람들 집을 짓는 자니 반석 위가 아니면 모래 위에 짓네 우리 구주 오셔서 지은 상을 줄 때 세운 공력 따라서 영영 상벌 주리
[후렴]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 만세 반석 위에다 우리 집 잘 짓세
우리가 미련함과 어리석음을 극복하려면 하나님을 경외하고(잠1:7),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마7:24, 25),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엡5:15- 17), 지혜를 얻기 위해 늘 기도하고(시90:12),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약1:5)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과 사귀고(잠13:20),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야 합니다.(시1:1, 시119:105, 딤후3:15)
아무쪼록 성도 여러분 모두가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가 되지 말고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내 안에 있는 죄악과 어리석음을 볼 수 있도록 영의 눈을 밝혀주소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인해 나의 어리석음과 잘못된 행위들이 고쳐지게 하옵소서.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부인하고 어리석게 사는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사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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