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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에서]책에 대한 예우와 모독
[경향신문 l 입력 2014.11.05 20:48 |
책, 그대의 계절인 가을이 끝자락을 향해 줄달음질치고 있네. ‘독서의 달’(9월)과 ‘책의 날’(10월11일)이 지났으니 그대의 계절이 저문다는 아쉬움이 크겠구려. 지난달 파주출판도시에서 ‘2014 파주북소리 축제’가 열흘간 치러졌고, 8~9일에는 서울광장에서 ‘북 페스티벌’이 열린다지? 지방자치단체의 ‘책 축제’도 이달 말까지 줄지어 열린다더군. ‘책의 죽음’이 운위되는 때에 ‘책을 위한 향연’이 펼쳐지는 것을 마뜩잖게 여길 필요는 없겠지.
한데 마냥 달갑지만은 않구려. 책, 그대가 전국 16개 지자체가 돈벌이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연간 2400여개, 하루 7개꼴로 열고 있는 ‘수박’ ‘고추’ ‘포도’ ‘빙어’ 등의 이름을 단 지역축제의 또 다른 대상이 된 것 같은 ‘개운찮은 뒷맛’ 때문일세. 할인 판매가 주목적인 1회성 책 잔치를 열어놓고 ‘책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고 자위하는 것도 꼴사나운 일이지.
이달 21일부터 시행되는 새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네. 새 도서정가제를 규정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은 신간이든 구간이든 15% 이상 싸게 팔 수 없도록 하는 것일세. 지금까지는 신간만 19% 이상 싸게 판매할 수 없도록 했지. 통상 출간된 지 18개월 미만이면 신간, 18개월이 지나면 구간으로 분류하네. 정부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과도한 할인 경쟁이 사라져 동네 서점과 출판계의 고사(枯死)를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네.
하지만 새 도서정가제가 책 값을 올리고,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아 ‘제2의 단통법’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있지. 또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들은 카드사·통신사와의 제휴할인이나 경품 제공, 무료배송 등과 같은 편법 또는 우회할인을 통해 ‘15% 이내 할인율’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크네. 출판계는 이를 규제하는 조항을 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네. 책의 가치를 돈으로만 계량(計量)하려는 것 자체가 그대에 대한 배신 또는 모독 아닌가?
인류의 지적 성장은 책, 그대와 함께 이뤄졌다는 데 토를 다는 이는 없을 듯하네. 그대를 갖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눈물겨웠지. 기원전 3000년쯤 나일강 유역에서 자라던 파피루스는 고대에 만들어진 필사본의 주요 소재였네. 파피루스가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와 로마로 건너갔을 때 필사본을 만드는 작업은 노예들의 몫이었지. 필사본은 권력자와 귀족,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었네. ‘지식의 독점시대’였던 셈이지. 필사본은 양피지로도 만들어졌네. 성서 한 권을 쓰려면 양 660마리, 100쪽짜리 필사본을 만들려면 양 10마리가 필요했다는 기록도 있네. 6~8세기 유럽에서는 수도원마다 필사전용실인 ‘스크립토리움’을 갖추고 있었지. 그곳에서 수도사들은 양피지에 글을 새겨넣고는 말미에 ‘겸허한 신앙심으로 책을 완성했다’고 적었다고 하네.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인쇄술은 책, 그대를 대량생산하면서 ‘지식의 대중화시대’를 열었지. 르네상스시대 인문주의의 부흥을 이끈 것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가능케 한 것도 그대일세. 지식의 혁명과 사상의 전파를 주도한 그대에 대한 헌사(獻辭)가 쏟아질만도 하지.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도 같다”고 했네.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 서문에 “세상 도처에서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다”고 적었지. 소설가 이태준은 “책을 ‘冊’으로 쓰고 싶다. 그 얼마나 책답고 아름다운가”라고 했네.
그대에 대한 탄압의 역사도 존재하지. 가톨릭 교회는 루소의 <에밀>을 악서(惡書)로 낙인찍었고, 파리의 고등재판소는 소각처분 판결을 내렸네. 유생들의 정치훈수를 혐오했던 중국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저지르기도 했지. 국내에서는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조성오의 <철학에세이>, 김지하의 <황토>, 황석영이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등을 금서(禁書)로 묶어 젊은이들을 ‘청맹과니’로 만들려 하지 않았던가.
인류가 책, 그대에게 진 빚은 가늠하기 어렵네. 그럼에도 전자책과 스마 트폰이 목청껏 외치는 ‘종이는 가라!’는 구호에 밀려 그대는 홀대받고, 외면당하고 있지. ‘책의 죽음’이란 말이 제3자에 의한 선고가 아닌, 당사자의 유언처럼 들리는 시대이기도 하네.
하지만 서러워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게나. 아직도 그대와의 익애(溺愛)를 즐기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그대를 배신하거나 모독하는 이들에겐 “책,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지적자양분을 준 적이 있느냐”고 따끔하게 얘기해주게나.
<박구재 기획·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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