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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쁘고 즐겁게 살자

전도서 빛의 사자............... 조회 수 1494 추천 수 0 2014.11.12 08: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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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전9:7-9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항상 기쁘고 즐겁게 살자

본문: 전 9:7-9, 찬송가: 428장(통 488장)

 

영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루를 기쁘게 살려느냐? 이발을 해라. 한 주간을 기쁘게 살려느냐? 자동차를 사라. 한 달을 기쁘게 살려느냐? 결혼을 해라. 일 년을 기쁘게 살려느냐? 새 집을 사라. 그러나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는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4: 4- 5)

 

여성에게 최고의 화장술은 『웃음』입니다. 웃음은 그 자체가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인도의 어떤 사람들은 웃음모임을 가지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웃음강좌라는 것이 있을 정도로 웃음을 통한 건강관리를 합니다. 스텐퍼드대학의 『윌리암 프라이』교수는 『웃음은 앉아서 하는 조깅』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제임스』와 덴마크의 『랑케』는 사람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울기 때문에 슬퍼지는 것이고, 즐거워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즐거워진다는 심리이론을 말했습니다. 『조일굿먼』박사는 『하루에 열 다섯 번 이상 웃는 사람은 의사를 멀리할 수 있다. 하루에 세 번 크게 웃으면 아침 조깅을 하는 것과 같다. 웃음은 위산이 많이 나오는 것을 방지함으로 위산과다의 예방과 치료가 된다』 라고 하였습니다.

고려나 조선 왕조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는 웃음이 없습니다. 옛날의 양반 기본정신은 무표정입니다. 웃으면 『기생오라비』라고 낙인이 찍히기 때문입니다.

『웃지 않으려거든 가게문을 열지 말라』, 중국인들이 한 말입니다. 실례로 한 번 웃으면 한 번 젊어지는 것이며, 한 번 분노하면 늙는 것입니다. (一笑一少, 一怒一老).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눅 2:10)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고달픈 우리의 인생에서 영혼의 안식처를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영원한 기쁨이 아닐는지요.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 11)

 

영국의 계관시인 테니슨은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아름다운 언어로 찬양한 시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시골길을 가다가 행복한 얼굴로 열심히 일하는 중년 부인을 보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좋은 소식이 있나 보죠?』 테니슨이 묻자 부인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한 가지 소식밖에 모른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소식입니다.』

테니슨도 말했습니다. 『부인, 그것은 오래된 소식이자 새로운 소식이며 정말 좋은 소식이군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다면 그리고 그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넉넉히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의 삶속에 진정 부활의 기쁨이 있습니까?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새(마28:8)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 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하였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또는 일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 여러 모양으로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의 자녀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계십니다. 그것은 오늘 주신 말씀대로 항상 기뻐하는 것이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일입니다.

 오늘 아침 『항상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라』 는 말씀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뻐할 수 있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이 세상은 말하자면 눈물의 세상입니다. 한숨의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텔레비전에 마주앉아 코미디언의 연기를 보면서 잠시라도 웃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난 다음에 오는 허전함과 공허함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대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예수를 믿는 것은 웃음과는 먼 거리에 있는 것으로 압니다. 사실 일반 종교는 침울한 얼굴을 하고 심각한 마음으로 도를 명상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무슨 기쁨이나 웃음 같은 것을 생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생활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종교와는 전혀 다릅니다. 예수 믿는 생활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이요, 눈물이 아니라 웃음이 가득한 생활입니다. 사실 기쁨은 그 자체가 큰 축복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하나도 기쁨이 있습니다. 이 기쁨은 우리 마음속의 여러 가지 병을 고칠 수가 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했습니다. 잠언 15장 13절에도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흔히 젊은이들이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는 그 얼굴을 보면 안다고 합니다. 그 얼굴에 윤기가 난다고 합니다. 사실 마음에 기쁨이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화장을 하지 아니 해도 그 얼굴에 빛이 납니다. 환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근심이 있는 사람은 그 얼굴에 빛이 없습니다. 얼굴이 컴컴합니다. 얼굴뿐만 아닙니다. 우리의 몸 전체에도 얼마나 큰 영향이 미치는지 모릅니다. 가령, 우리의 마음이 기쁘면 소화액이 잘 분비되기 때문에 소화가 잘 됩니다. 그러나 기분이 나쁘면 소화도 잘 되지 않습니다. 아기 엄마들이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어린애가 젖을 먹어도 몸에서 좋은 영양소가 나오기 때문에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기 엄마가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나던지 슬플 때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 젖 속에 독소가 섞여 나와서 그 젖을 먹는 어린애는 설사를 하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몸에 해롭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젊은 부부들은 애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서로 조심해서 화가 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특별히 남편 되신 분들은 아내가 마음 상하는 일이 없도록 보살펴 주어야 합니다. 육신적인 건강뿐만이 아닙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정신적으로도 건전합니다. 마음이 담대해집니다. 확신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잘 참고 극복할 수 있는 인내심이 생깁니다. 그러나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정신적으로 매우 쇠약해집니다. 그래서 작은 것에도 신경질을 부리고, 짜증을 내고, 인내심이 없어지고, 우울해지고, 낙심하기 쉽고 소위 노이로제에 걸리게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있으면 무슨 일을 해도 잘 됩니다.

 기쁜 마음으로 학생이 공부를 하면 공부가 잘 되고 실력이 향상됩니다.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하면 일의 능률이 오릅니다. 힘도 별로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쁨이 없이 무슨 일이던지 하게 되면 일도 제대로 안 되고 능률은 떨어지고 공연히 짜증만 나고 한숨만 나옵니다. 여기 어느 부인이 집에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합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밥을 짓고 찬을 만들 때도 집안 식구들의 영양을 생각해 가며 정성껏 하기 때문에 밥도 꼭 물 맞게 하고 찬을 만들어도 맛있게 합니다. 이 식사를 하고 내 남편이 건강해서 맡은 일을 잘 감당하고, 애들이 맛있게 먹고 무럭무럭 자라서 공부도 잘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 터인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 입 속에서는 저절로 노래가 나오고 행복해 합니다. 빨래를 해도 우리 식구가 어디 가도 깨끗하고 단정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 빨래하고 다림질을 할 때도 성의껏 매끈하게 다려서 애들이 깨끗한 옷 입고 나서는 것 보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고, 남편이 자기가 빨아서 대린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척 묶고 나서는 것 보면 그렇게 흐뭇하고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인은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이 귀찮고, 힘이 들고 속이 상합니다. 짜증스럽기만 합니다. 이거 나는 무엇 때문에 여자로 태어나서 밖에 훨훨 나다니지도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서 이렇게 빨래나 해야 되나? 그러니 빨래가 제대로 깨끗이 되겠어요. 밥을 지으니 밥이 제대로 됩니까? 생각은 딴 데 있으니 물을 많이 콱 부으니까 밥한다는 것이 죽이 되기 일쑤입니다. 찬을 만들다가도 칼로 손가락 베기가 쉽습니다. 쩍하며 그릇이 깨집니다. 그러니 속은 더 상합니다. 그 얼굴은 사흘 굶은 시어머니 얼굴 같고 말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런 부인들은 찬거리 산다고 시장에 바구니 들고 나갔다가 바구니는 가게에 맡겨 놓고 댄스홀이나 디스코 클럽에 들어가서 춤이라도 한판 추고 나와야 숨통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에 기쁨이 없어서 그럽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는데도 마음의 기쁨이 얼마나 필요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마음 에 기쁨이 있는 사람은 범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입니다. 그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아니합니다. 생기가 넘칩니다. 힘이 있어 보입니다. 누구를 대하나 웃는 낯으로 대하니까 상대방에게도 호감을 가지게 합니다. 혹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가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는 말대로 서로 좋게 대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헤어진 후에도 그 인상이 오래 남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기쁨이 있는 사람은 사회적으로도 진출이 빠르고 범사에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몇 달 전에 포항에서 신앙 생활하시던 장로님 댁이 저희 교회로 이사 오셨습니다. 그 장로님의 인상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그 얼굴에 웃음이 있습니다. 평안해 보입니다. 그러니까 지방에서 서울로 병원을 옮겼는데 손님들도 많이 찾아오고 모두 만족해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번은 저더러 『목사님, 무엇이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목사의 마음은 얼마나 만족합니까? 서로가 기쁩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기쁨이 없는 사람은 범사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입니다. 무슨 일을 부탁하면 『글쎄요. 그것은 어려울텐데요』 하면서 물러섭니다. 한번 힘들어도 해 봅시다 하고 나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부탁하는 사람도 한두 번 해 보아도 못한다고만 하니까 다시 부탁하고 싶지도 않아집니다. 그 얼굴을 항상 찡그리고 있으니까 상대하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합니다. 헤어진 후에도 그 얼굴을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아집니다. 그러니까 어디 가나 그렇게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자연히 오늘과 같이 경쟁 사회에서 뒤지고 맙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이 기쁨이 어디서 옵니까? 이 기쁨은 하나님께로 옵니다. 주 안에 있을 때 오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면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원천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고 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은 있을 때는 기뻐하고 없어지면 슬퍼합니다. 누릴 때는 기뻐하고 떨어지면 슬퍼합니다. 해가 나면 기뻐하고 흐려지면 슬퍼합니다. 잘 되어 가면 기뻐하고 잘 되지 않으면 슬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쁨의 근원을 둔 사람은 언제나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평안 이란 말 대신에 기쁨이란 말로 바꿔 읽어보세요. 기쁨을 너희에게 주노니 곧 나의 기쁨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우리에게 이와 같은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임해서 우리 마음속에 기쁨이 언제나 샘솟듯이 솟아나기를 바랍니다.

 

 폴 라더라는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택하실 때 그의 삶 속에 웃음을 넣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그의 마음속에서 움직여 뒤집어 놓습니다. 옛것은 지나고 새것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심령 속 깊은 곳에 기쁨을 누리며 얼굴에는 웃음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참 기쁨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구약 창세기 17장에 보면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99세 때 하나님 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서 언약을 하면서 네가 심히 번성해서 열국의 아비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고 하면서 그 뜻은 많은 무리의 아비가 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대손손 번영하는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심중에 이르되 내 나이 100살이 다 되었는데 어떻게 자식을 낳지? 사라는 90인데 어떻게 생산하지?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걷고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사람 의 생각대로 해서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서 아들을 낳았을 때 그 집에는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결국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사람의 생각대로 하는 것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때 약속대로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 이름은 『이삭』 이라 했습니다. 그 뜻은 『웃음』 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 기쁨이 있고 웃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항상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습니까?

 

1.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면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계속 교제하는 사람에게 기쁨이 있습니다. 주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면 기쁨이 사라집니다. 신명기 28장 47-48절에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다』 했습니다.

 

2. 죄 사함을 받아야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죄를 품고 있는 동안 마음속에 기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에도 『악인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한다』 고 했습니다. 왜 도망합니까? 무서워서 그럽니다.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기쁨이 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한 후에 그들의 마음이 평안하고 기뻤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기쁨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무화과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죄를 마음에 품고 있을 때 마음에 기쁨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허물과 죄를 주님 앞에 회개하여 주님께로부터 오는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 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귀한 말씀만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십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놀라운 기적만 보여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훌륭한 생활의 본만 보여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여 기쁨을 잃어버리고 불안과 초조에 허덕이고 있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3. 주 안에 거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4절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우리가 주 안에 살고 주님과 매일매일 교통할 때 우리가 그의 생명력을 얻어 힘 있게, 생기 있게, 기쁘게 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의 후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무슨 복잡한 수속을 거쳐서 된 것이 아닙니다. 많은 돈을 지불하고 산 것이 아닙니다. 혈통에 의해서 된 것도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된 것입니다. 너무 쉽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너무 쉽기 때문에 믿지 않으려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정말 믿는다면 기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겐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같이 있는 기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몇 해 전에 추운 겨울 어느 날입니다. 시내에 갔다가 차에서 내리니 얼마나 추운지요. 그런데 제 앞에 우리 교회 권사님 따님이 지나가요. 그래서 너무 반가워서 인사를 하려 하는데 보니 어느 남자하고 같이 걷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서로 교제하는 중인 것 같아 소개하자니 거북스러울 것이고 해서 못 본체하고 지나갔습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 따님은 자그마한 키인데 그 남자 청년은 180cm는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팔을 끼고 가는지 매달려 가는지 서로 쳐다보고 내려다보며 이야기하는데 도무지 추워하는 기색이 없어요. 마냥 서로 웃으며 기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동행하면 기쁩니다. 하나님과 365년을 동행한 에녹의 기쁨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 발 앞에서 말씀 듣던 마리아의 기쁨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품에 안기어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던 사도 요한의 기쁨을 맛봅니다. 여러분에게도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사66:10)

 

4. 사랑하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사실을 내가 알고 나 역시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의 기쁨이 우리 마음속에 충만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주변의 사람을 사랑할 때 기쁨이 됩니다.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때 기쁠 수가 있어요? 사랑은 우리를 기쁘게 행복하게 합니다. 행복과 기쁨의 범위는 사랑의 범위와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찬송가 285장 (통 209장) 『주의 말씀 받은 그날』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주의 말씀 받은 그날 참 기쁘고 복되도다 이 기쁜 맘 못이겨서 온 세상에 전하노라

2. 이 좋은날 내 천한몸 새 사람이 되었으니 이 몸과 맘 다 바쳐서 영광의 주 늘 섬기리

3. 이 작정한 그날부터 평안한 맘 늘 있어서 이 복된말 전함으로 내 할 본분 삼았도다

[후렴]

기쁜날 기쁜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늘 깨어서 기도하고 늘 기쁘게 살아가리 기쁜날 기쁜날 주 나의 죄 다 씻은 날 아멘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에덴의 행복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전3:12)

  오늘의 본문말씀은 우리를 향하여 기쁘고 즐겁게 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기뻐하시니 사랑하는 네 배우자와 함께 즐겁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고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본문에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주의 보혈로 우리의 영적인 예복을 정결케 하라는 것이요, 머리에 향기름이 그치지 않도록 하라고 했는데 이는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주의 은혜 가운데 항상 희락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4편 7절에서 『주님이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기쁨은 세상의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즐겁게 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왜 우리 그리스도들 중에는 우울한 모습으로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건설할 사명이 있습니다.(마6:9,10)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눅17:21)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곳이고(고후4:5),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롬14:17) 그러므로 우리는 의와 평안과 기쁨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를 온 땅에 전파할 책임이 있습니다.(행28:31)

 

사랑하는 여러분, 참된 기쁨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세요. 죄 사함을 받으십시오.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주님과 동행하며 누리는 기쁨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면서 기쁘게 삽시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기쁨이 없으면 비극입니다. 이 세상을 얼마나 살겠기에 한숨과 걱정 가운데서 살겠습니까? 슬픔 많은 세상에서 넘치는 기쁨을 얻어 항상 기뻐하며 천국 생활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생명이 되신 하나님!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를 누리면서 날마다 기쁨으로 주를 찬양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복된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과 함께할 때는 영원한 기쁨이 있음을 내 이웃에게도 전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가는 곳 마다 의와 평강과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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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66 데살로전 서로위로하라 살전4:13-18  강승호 목사  2014-11-11 797
11365 디모데후 돌아서라 딤후3:1-5  강종수 목사  2014-11-09 715
11364 창세기 나그네와 행인 같은 삶 창23:1-13  한태완 목사  2014-11-09 1724
11363 출애굽기 앞으로 앞으로 천성을 향해 나가세 출14:10-20  한태완 목사  2014-11-08 1542
11362 민수기 불뱀사건 민21:4-9  강승호 목사  2014-11-08 1128
11361 마태복음 자리를 지키는 이들 마25:1-13  강승호 목사  2014-11-08 849
11360 디도서 절제하는 삶을 살자 딛1:7-8  한태완 목사  2014-11-07 1701
11359 요나 닥친 사건을 시은자로 대합니까, 수은자로 대합니까? 욘1:1-3  김경형 목사  2014-11-07 605
11358 마태복음 작은 것, 사소한 것이 소중합니다. 마13:31-32  한태완 목사  2014-11-06 1450
11357 마태복음 사역자의 삶 마23:1-13  강승호 목사  2014-11-06 649
11356 창세기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창39:20-23  한태완 목사  2014-11-05 1126
11355 잠언 지혜로운 사람, 슬기로운 사람 잠4:7  한태완 목사  2014-11-05 1607
11354 욥기 성경에 답이 있다 욥40:1-24  최장환 목사  2014-11-05 1367
11353 에스겔 날마다 일어나는 기적 겔47:1-23  최장환 목사  2014-11-05 1082
11352 마태복음 끝까지 견디는 자 마24:1-14  정용섭 목사  2014-11-04 930
11351 마태복음 그리스도 논쟁을 넘어 마22:34-46  정용섭 목사  2014-11-04 578
11350 마가복음 교회는 성찬 공동체다 막14:22-25  정용섭 목사  2014-11-04 610
11349 마태복음 예수는 머릿돌이다 마21:33-46  정용섭 목사  2014-11-04 665
11348 잠언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 잠14:1-35  한태완 목사  2014-11-04 1725
11347 고린도후 생명에 이르는 냄새 고후2:14-16  한태완 목사  2014-11-03 1139
11346 누가복음 진리의 결실 눅8:11-15  강종수 목사  2014-11-02 1695
11345 시편 원망, 불평하지 말고 도리어 감사하라 시37:7-9  한태완 목사  2014-11-02 1966
11344 사도행전 나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입니까? 행16:16-34  한태완 목사  2014-11-01 1399
11343 에배소서 말씀의 검 엡6:10-17  강승호 목사  2014-11-01 1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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