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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골3:13-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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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본문: 골로새서 3장 13~15절
영국의 종교 개혁자 리들리는 메리여왕 1세의 즉위와 함께 화체론적 성찬을 부정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런던탑에 투옥되었다가 뒤에 옥스퍼드에서 레티미와 함께 화형(火刑)되었는데, 그 전날 밤의 일입니다. 그의 동생은 찾아와서 그 밤동안 위로하며 같이 지내자고 했습니다. 그때 리들리는 그것을 거절하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밤 평안히 자고 내일 순교하겠다.』 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왜 그는 그렇게 평안하게 죽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빌3:7-8) 예수 믿는 사람은 환난이나 죽음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습니다.(행12:7)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한 우편배달부는 자기는 우편물을 배달하는 자신의 일에 매우 큰 안도감을 느낀다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그 이유는 모든 정부 방침이 내가 일을 수행하는 것을 지원하기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가방 속에 단지 한 장의 작은 우편엽서만이 들어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내가 그것을 배달하는 것을 감히 방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그 우편엽서를 안전히 배달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국가의 모든 연방 경찰력을 동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복음이 타오르는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생명, 인격, 장비를 지니고 당신과 내가 얼마나 확실하게 출발할 수 있나를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은 과거의 사도들에게 소중했던 만큼 오늘의 우리에게도 소중합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가서...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 -20)
갓 돌이 지난 아기가 아장아장 걷고 있었습니다. 아기는 이제 걸음마를 배운지라 뒤뚱거리며 우스꽝스럽게 그저 발이 가는 대로 앞으로만 내디딜 뿐이었습니다. 엄마가 손을 잡으려 해도 뿌리치고 고집을 피우며 혼자 걷고 싶어 안달이었다. 엄마는 하는 수 없이 아기의 뒤에 바짝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아기는 걷느라 정신이 없어서 엄마가 있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아기가 걷는 길에 돌멩이가 보이자 엄마는 재빨리 달려가 그것을 치웠습니다. 또 아기가 웅덩이를 향해 돌진하자 엄마는 아기를 번쩍 들어 웅덩이 너머에 내려놓았습니다. 이번에 몇 걸음을 가던 아기가 헛디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뒤에서 지켜만 볼 뿐이지 일으켜 주지 않았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 아기는 혼자 털고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오토바이가 쌩 하면서 지나가자 엄마는 번개같이 달려가 아기를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그러자 아기는 엄마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도 환하게 웃으며 아기를 다시 안전한 곳에 내려놓았습니다. 아기 엄마의 일상적인 모습 속에 하나님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과도기를 지나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삶의 여정을 하나님은 이렇게 지키고 계십니다. 우리가 평안할 때도, 고난을 받을 때도, 우리가 불순종해 나쁜 길을 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침몰할 것 같은 절망의 순간에도 함께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를 든든하게 만들어 줍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31: 8)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금문교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1930년대에 건축한 세계에서 가장 높고 긴 다리입니다. 다리는 양쪽을 두 기둥에다 매달아 놓고 중앙에 아무것도 없이 그냥 물 위에 떠 있습니다. 그 다리를 건설할 때 위험 요소가 너무 많아 기술자들의 마음은 항상 불안했다고 합니다. 일을 하다가 밑을 보면 현기증이 일어나는 바람에 불안과 공포는 더했다고 합니다. 결국 다섯 명이나 추락해 바닷속에 빠졌습니다. 시 당국은 기술자들의 안전을 위해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공사 현장 밑에 철사로 만든 그물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자 그물 위로 떨어지는 기술자들이 없어졌습니다. 추락해도 바닷속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평안함 때문이었습니다. 곧 안전그물이 그들에게 믿음이 되었던 것입니다.『하나님이 내 삶을 다스리시고 나를 인도하시며 나와 동행하신다』라는 믿음이 우리의 안전그물입니다. 이것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마음은 평안합니다.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공포와 불안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안전그물로 알고 그분을 믿는 사람은 마음의 불안과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분이 내 곁에 계시면 내일의 문제를 놓고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런 확신을 가질 때 우리는 인생을 용기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29:11)
어머니 손을 잡고 꽃밭에 놀러갔던 어린이가 꽃을 보자 어머니 손을 뿌리치고는 꽃밭에 들어가서는 이 꽃 저 꽃을 꺾으면서 기뻐했습니다. 한참 후에 주변을 보니 어머니가 안보였습니다. 아이는 앙! 앙! 울면서 손에 가지고 있던 꽃을 땅에 다 던져 버리고 엄마를 찾았습니다. 인생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는 세상에 그 무엇이든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인생의 참된 평안은 하나님 얼굴(민6:26) 주님의 품안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빌3:7-8)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잠1:33)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눈동자 같이 지켜주십니다.(요14: 27, 빌4:6, 벧전 5:7)
찬송가 413장, <통> 470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1.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2.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3.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눈 보다 더 정하겠네
4.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려날 때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겠네
<후렴>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릴 때마다 부모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 평안하냐』는 말씀입니다. 부모님께서는 『돈 많이 벌었느냐? 땅 샀느냐? 차 바꿨느냐?』라고는 묻지 않으시고 늘 평안하냐고 물으십니다. 이렇게 물으시는 부모님 마음에서 자녀들이 돈과 명예 혹은 어떤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늘 평안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그러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15)는 말씀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평안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돈 많이 벌고, 땅 사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보다 평강(平康) 가운데 살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활하셔서 만난 여인들에게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평안하뇨』(마28:9)라고 물으셨고 부활 후 승천하시면서도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요 16:33)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전도하라고 보내시면서 부탁하신 말씀도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마10:12)였습니다. 이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해 복음을 전해주시면서 항상 평안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의 삶이 평안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귀하게 생각하는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중 15절은 그 사실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평안을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을 물질 명예 권세 등 헛된 것들이 주장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물질 명예 권세 등에 의해 마음이 움직인 사람들을 보면 만족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다가 죄를 짓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결국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평안까지 잃어버리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비록 육신적으로 연약하고 물질적으로 가난할지라도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얻어진 진정한 안식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한마디로 마음의 주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나라를 건설할 사명이 있습니다.(마6:9,10)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눅17:21)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곳이고(고후4:5, 계19:16),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롬14:17)
둘째,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평안은 가진 것 때문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속에 들어가 사자 밥이 된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도했습니다(단 6:10). 그 결과 두려움이나 원망이 생기지 않고 평안한 마음을 얻게 되었고 그 마음의 평안처럼 삶 속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얻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대로 감사하면 하나님은 평안을 주십니다.
세계 제2차 대전 때의 일입니다. 독일군의 연이은 폭격으로 불안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영국 런던 시에서 평안히 잠을 자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비결을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매일 밤 기도한답니다. 그리고 나면 하나님께서 항상 지켜주신다는 확신이 들어 평안하게 잠자리에 들게 되지요. 사실 하나님과 내가 둘이 다 깨어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습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보살펴주시는 그분께서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평안히 잠잘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그분이 계십니까?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시4:8)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127: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안하십니까? 감사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강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나의 피난처가 되신 주님, 주님이 나를 돌보아 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드릴 뿐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안함 속에서 늘 살게 하옵소서. 주님이 나의 목자되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두렵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니이다. 우리를 언제나 보호하여 주시고 평안을 주실 것을 확신하여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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