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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필요한 3대 마음

욥기 이한규 목사............... 조회 수 700 추천 수 0 2014.11.16 08: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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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욥6:14-30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28) 

친구에게 필요한 3대 마음

(욥6:14-30)

 

< 얻겠다는 마음을 버리십시오 >

 1991년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 소속 목사로서 후방선교사의 꿈을 품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귀국을 감행했습니다. 그때 한국에 아는 선배나 동역자가 한 사람도 없었고 만날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저희 선교연맹 출신의 한 선배가 유력한 기독교 기관의 높은 자리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분을 찾아서 서울 강남에 있는 그분의 사무실로 갔습니다. 그때 별로 환대를 받지 못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순히 동문이라고 찾은 것이 자리 청탁 혹은 의도적 인맥 쌓기를 위한 방문으로 오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에 선교연맹 출신이 한국에 거의 전무했기에 그분을 만나면 외로운 섬들끼리 기댈 땅을 만나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분은 그런 감정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때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앞으로 살면서 사람을 만날 때 청탁 및 인맥 쌓기를 위한 목적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도록 더욱 조심하자!”

 참된 친구는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고 한여름의 생수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참된 친구는 외로울 때 함께 있어주고 남이 다 떠날 때는 애써 찾아와줍니다. 또한 참된 친구는 거울과 같은 존재로서 그 친구를 보며 진선미를 배우고 삶의 단장도 이룹니다. 그런 참된 친구 한 명이 있으면 잘난 아들 하나가 부럽지 않습니다.

 참된 친구를 얻으려면 줄 생각은 많이 하고 받을 생각은 아예 의식이 없어야 합니다. 받을 생각을 하지 않으면 친구는 더 기쁘게 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기쁘게 주면 “나는 절대 안 받아!”라고 하면서 인색하게 굴지 말고 그때는 기쁘게 받으십시오. 뇌물은 거부해도 선물은 기쁘게 잘 받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다만 기본적으로는 친구로부터 무엇을 얻겠다는 마음을 철저히 버려야 좋은 친구도 얻습니다.

< 친구에게 필요한 3대 마음 >

 관계의 의미를 외면한 채 복과 선물만 노리는 기복주의자는 하나님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도 얻지 못합니다. 참된 친구가 되려면 어떤 마음이 필요합니까?

1. 박하지 않은 마음

 욥은 동방의 의인이었지만 2%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보다 온전하게 만들려고 잠시 사탄의 시험을 당하도록 허용했습니다. 그때부터 욥에게 큰 시련이 닥쳤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친구들인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멀리서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와서 처음에는 위로가 되었지만 친구들은 욥의 끔찍한 고난을 목격하고 그에게 틀림없이 어떤 숨은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 낌새를 느끼고 마음의 상처를 받은 욥은 자기를 무섭게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3장). 그 모습을 보고 친구들에게 있던 일말의 동정심도 사라지면서 그때부터 친구들은 욥에게 “네 죄를 불라!”는 식의 정죄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에 반발해 욥도 “내게 죄가 없다.”고 빠득빠득 우겨대며 친구들이 한 마디 하면 욥은 지지 않고 두 마디를 했습니다. 결국 위로하러 왔던 친구들과 욥 사이에 기나긴 진리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논쟁에서 먼저 엘리바스가 욥기 4-5장에서 욥을 길게 정죄하자 욥도 지지 않고 6-7장에서 길게 자기변호를 했습니다. 그 변호에서 욥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고 변호한 후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가중시키는 친구들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토로합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그의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느니라.”

 욥이 하나님을 원망한 것은 분명히 잘못이지만 그래도 친구는 그 상황을 이해하고 동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그런 동정심이 없이 친구를 야박하게 정죄했습니다. 친구가 극심한 고통에 빠졌을 때 논리적인 바른 충고는 큰 도움이 안 됩니다. 그때는 말의 충고를 힘써 줄이고 동정심과 이해심을 가지고 조용히 다가서야 합니다.

 가끔 보면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자녀를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외면하고 침묵하면서도 선한 계획을 착착 진행시키십니다. 자녀를 키울 때 가끔 부모의 외면도 필요합니다. 오냐오냐 키우거나 자녀들의 무리한 요구에 부모가 쩔쩔 매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들은 자기감정을 조절하고 극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맘대로 부모에게 불평을 토로하다가 그런 습관이 체질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속으로는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겉으로는 부모를 투정 대상이나 한의 토로 대상으로 삼을 때가 많습니다. 그 상황이 계속되면 자녀들의 성숙에 방해가 되기에 때로는 부모가 외면하는 것처럼 행동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녀가 자기감정을 쉽게 쏟아내는 상황이 줄면서 점차 침착해지고 생각도 깊어지고 철도 들게 됩니다. 결국 사랑의 외면 및 침묵은 자녀를 성숙하게 만드는 좋은 통로가 될 때도 많습니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목적 있는 외면을 하는 부모의 깊은 마음도 모른 채 가끔 보면 “아이에게 먼저 손을 내미세요.”라고 옆에서 쉽게 훈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깊은 사랑으로 자녀를 키워본 사람은 부모가 잠깐 외면하는 의도를 알고 또한 자녀교육은 말이나 이론으로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기에 가만히 지켜보며 기도만 해줍니다. 인간관계나 자녀교육 문제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쉽게 충고하고 쉽게 훈수하는 태도입니다.

 바둑을 둘 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은 훈수하지 말고 침묵해야 합니다. 바둑을 둘 때 본인이 잡히기도 하고 지기도 하면서 바둑 실력이 느는 것입니다. 옆에서 보면 수가 더 잘 보일 수 있지만 그래도 남이 실제로 바둑을 둘 때는 훈수하면 안 됩니다. 대신에 대국 전이나 대국 후에 그의 바둑 실력이 늘도록 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 바둑에서도 너무 쉽게 판단하거나 충고하거나 훈수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침묵하고 가만히 지켜봐주십시오. 깊은 동정심은 쉬운 판단이나 쉬운 충고를 낳지 않고 깊은 침묵을 낳을 때가 많습니다. 사람은 외롭고 힘들 때 가장 깊은 깨달음을 얻고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열심히 훈수하는 친구보다 야박하지 않은 넉넉한 마음으로 때로는 가까이에서 때로는 멀리서 묵묵히 지켜봐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입니다.

2. 변하지 않는 마음

 사람이 살면서 전혀 변심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변심도 필요합니다. 일탈을 부추기는 친구와 같이 일탈하며 살다가 철이 들어서 “그런 친구와 사귀면 더 이상 안 되겠다! 멀리해야 하겠다!”고 하면서 마음을 바꾸는 것도 변심이라면 그런 변심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익과 형편과 환경을 따라 쉽게 변심하면 안 됩니다. 욥은 친구들의 정죄를 친구들의 변심으로 여겼습니다.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 같이 지나가누나.” 욥은 형제처럼 생각했던 친구들을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개울의 물살처럼 지나가는 존재로 표현합니다. 힘든 친구 곁에 있어주기는커녕 돕기 싫으니까 금방 마음이 멀어진 친구의 모습을 그렇게 묘사한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개울’은 사막 지역의 와디를 뜻합니다. 와디는 비가 오면 금방 물이 불어 강물처럼 넘쳐흐르다가 다시 금방 메마르게 됩니다. 그처럼 물이 필요 없을 때는 넘치고 물이 필요할 때는 없기에 그런 와디를 보면서 농부가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욥은 세 친구들을 필요한 때 도움이 되기보다 더 메마르게 하는 와디와 같은 존재로 여긴 것입니다.

 또한 욥은 와디의 물이 얼었다가 녹으면 주변의 흙먼지 등이 함께 섞여서 검은 구정물이 되니까 도움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16절). 또한 날씨가 따뜻해지면 와디의 물이 말라 없어지면서 역시 도움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17절). 그처럼 필요한 때 도움이 안 되는 와디의 예를 들어서 친구들의 변심과 계산적인 행위를 빗대어 조롱한 것입니다. 결국 물이 필요할 때 메말라버린 와디로 인해 어떤 일이 생깁니까?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대상들은 그들의 길을 벗어나서 삭막한 들에 들어가 멸망하느니라.” 당시에 사막을 횡단하는 대상들이 물이 떨어지면 와디의 상류로 가면서 수원지인 협곡이나 산지까지 이릅니다. 거기서도 물을 찾지 못하면 결국 갈증 때문에 죽습니다. 욥은 친구들을 물이 필요한 때 메말라버린 변화무쌍한 와디로 묘사함으로 친구들의 변심을 은근히 조롱한 것입니다. 친구는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상황과 여건이 어려워도 쉽게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늘 함께 해주어야 합니다.

3. 바라지 않는 마음

 본문 19-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데마’는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라비 아 지역의 무역상들로서 결국 ‘데마의 떼’란 대상을 뜻합니다. 그들이 사막에서 물이 떨어져 와디의 흔적을 보고 물을 찾아왔지만 물이 없는 것을 알고 와디에서 물을 찾은 삶을 부끄러워하고 낙심했다는 것입니다. 욥은 이 고백을 통해 친구들에게 어떤 기대를 했다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상처만 입은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했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무엇을 얻기를 바라면 대개 얻지 못하고 자존심만 상하게 되고 수치만 겪을 때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수치스런 일은 부모나 형제나 친구나 교우로부터 무엇을 얻기를 바라는 태도입니다. 더 나아가서 무엇을 얻지 못했다고 “실망했다!”고 하고 “사람이 변했다!”고 하는 태도입니다. 참된 친구관계를 형성하려면 ‘얻을 생각’을 버리고 ‘버릴 생각’을 얻어야 합니다. 즉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해줄 생각으로만 가득 차야 합니다.

 그처럼 친구를 위해 과감히 희생할 줄 모르는 친구들을 무가치한 존재라고 비꼬며 말합니다(21절). 그러면서 자신은 아무런 기대나 요구를 하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본문 22-2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언제 너희에게 무엇을 달라고 말했더냐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을 선물로 달라고 하더냐/ 내가 언제 말하기를 원수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폭군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이 구절에 있는 4가지 질문을 통해 욥은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다만 친구들이 이해해주기를 원하는 마음을 표출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친구의 이해를 바라는 마음도 좋은 마음은 아닙니다. 즉 이해를 잘해주는 마음은 좋은 마음이지만 이해를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좋은 마음이 아닙니다. 욥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지만 친구들의 이해를 원했기에 그런 이해가 없는 친구들에 대해 실망도 하고 강한 자기변호도 하고 비꼬는 말도 하다가 결국 자기가 잘났다는 말까지도 합니다.

 본문 24절 이하의 말씀들이 결국은 다 자기 잘났다는 말들입니다. 본문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쉽게 말하면 “도대체 내 잘못이 무엇이냐? 잘 깨닫게 해주면 잠잠하겠다.”는 말입니다. 비록 감정이 격앙되어서 침착함을 잃고 한 말이지만 그의 감정적인 말에는 추악한 자기 의에 대한 프라이드가 짙게 배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감정적인 말이 오가면 논쟁은 더 커지고 해결책은 더 멀어지기에 감정이 생기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습니다. 감정적으로 자기변호를 할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더 닫히고 더 설득력을 잃고 더 자신만 비참해지고 더 자신의 상처만 도집니다. 자기변호는 자기변화의 최대 걸림돌입니다. 특히 감정적인 자기변호는 자기 의에 사로잡히게 만들기에 감정이 격해진 욥도 엘리바스의 말이 알맹이 없는 허무한 말이라고 비꼬듯이 말한 것입니다(25-26절).

 더 나아가 욥은 친구들의 정죄가 아주 악한 일 중의 하나임을 직설적으로 표현합니다. 본문 27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넘기는구나.” 고대에 가장 악하고 무자비한 행위로 여겨진 것은 고아나 친구를 팔아넘기는 행위였습니다. 그만큼 친구들이 별로 죄도 없는 자신에게 무자비한 말로 상처를 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처럼 말만 잘하고 동정심과 이해심이 없는 친구들들 향해 또 다시 자기 의를 내세웁니다. 본문 28-30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돌이켜 행악자가 되지 말라 아직도 나의 의가 건재하니 돌아오라/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속임을 분간하지 못하랴.” 이 말은 자기를 겉만 보고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말인데 이 말도 역시 자기 의에 대한 강한 프라이드가 내포된 말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재난을 죄에 대한 벌로 보았지만 욥은 그 재난이 죄 때문이 아님을 확신했습니다. 욥의 서론 부분을 보면 욥의 말이 맞지만 욥은 더 배우고 성장해야 했습니다. 자기 의에 대한 프라이드가 지나쳤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을 보면 하나님이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용한 이유를 대략 짐작하게 됩니다.

 왜 욥이 상처를 토로하다가 자기 의를 자랑하는 말까지 합니까? 친구들로부터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친구들의 이해심을 억지로 구하려고 몸부림을 친 것입니다. 물론 친구는 이해심이 넘쳐야 하지만 이해심조차도 주려고만 해야 하지 받으려고 안달하면 안 됩니다. 친구라면 사랑하고 이해해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친구라도 사랑과 이해를 얻으려고 무리하게 요구하지 마십시오. 친구의 사랑과 이해심을 바라는 것은 친구의 물질을 바라는 것만큼 나쁜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 바라지 말고 드리십시오 >

 와디와 같은 사람에게는 아무 것도 바라지 마십시오. 바라는 만큼 시험도 커집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바라지 마십시오. 사람을 사랑의 대상이 아닌 물주로 여기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은 없습니다. 특히 유명하고 유력한 사람은 ‘자기를 안다는 사실’을 청탁 도구로 활용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처럼 누구를 안다는 사실을 이용해 청탁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창조성을 구하고 책임적인 삶과 이마의 땀으로 인생 승부를 거십시오. 대부분의 청탁은 대개 실패하면서 결국 사람도 잃게 만들고 자부심도 잃게 만듭니다.

 저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MBC 신우회 지도목사를 했습니다. 1980년에 고(故) 하 목사님이 결성해 몇 년간 지도목사로 있었고 1980년대 말부터는 성경통독으로 유명한 조 목사님이 지도목사로 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연예인들도 많이 동참했다는데 제가 있을 때는 직원들과 기자 중심으로 예배드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유력하면서도 겸손한 분들이 많아서 매주 수요일 점심에 예배를 인도하면서 저 자신도 많이 배웠습니다.

 1997년 말 어느 날, 대학 때부터 알던 한 목사님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 자꾸 저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만나니까 신우회 수요예배 때 한주만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당시에 엄기영 앵커가 보도국장도 아닌 차장으로 있었는데 그때 보도 분야 최고 책임자인 보도이사가 신우회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던 때였습니다. 인지도가 없는 그 목사님은 유력한 언론에 조금 더 노출되고 싶어 그런 부탁을 했을 것입니다.

 저는 후보사퇴를 조심스럽게 간곡히 말씀드렸는데 그분은 오히려 수요예배에 한주만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습니다. 결국 한 주간 말씀을 전하게 해드렸습니다. 그 예배 때 나름대로 은혜는 있었습니다. 그 후 그분은 부끄러운 득표율로 낙선했습니다. 그 다음에 불똥이 제게도 떨어졌습니다. 정치목사를 강사로 불렀다고 기자들 사이에 저에 대한 비토 분위기가 형성된 것입니다. 그때 바로 지도목사 직을 사임하면서 “앞으로 청탁은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자.”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저도 유력한 사람을 알아도 그분들에게 부담이 되는 자리 청탁이나 물질 청탁을 하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지켜야 할 기본 자존심은 지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가족끼리도 청탁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사십시오. 어려워도 청탁하지 않을 때 그 어려운 사정이 우연히 알려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렇게 어려우면서도 청탁하지 않았던 모습을 보고 가족이나 친지나 친구들에게 더 자발적으로 돕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잘 나가는 성공한 친구를 그 동안 안 만나다가 오랜만이라고 하면서 너무 찾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잘 나가면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외롭지도 않을 텐데 그때 그 친구를 찾을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성공한 친구를 오랜만에 찾으면 부탁이나 청탁이나 인맥 때문에 접근하는 것처럼 여길 텐데 왜 그런 오해를 받습니까? 그 시간에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면서 지혜와 창조성을 받아서 새로운 영역을 책임 있게 개척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나중에 보면 바라지 않는 사람이 더 친구를 얻고 더 도움을 얻습니다. 그렇게 바라지 않고 살면 어느 날 잘 나가는 친구가 스스로 찾아와 말합니다. “이 목사! 무엇 좀 도울 일 없어?” 얼마나 멋지고 감동적인 친구관계입니까? 누군가를 오랜만에 찾을 때는 청탁을 위해 찾지 말고 도움을 주려고 찾으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은 오묘해서 복을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추구하면 더 복을 내려주십니다. 사람도 인맥을 청탁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매력을 느끼고 인맥을 청탁의 도구로 활용하는 사람에게는 더 혐오를 느낍니다.

 저는 청소년기 때 잠깐 인맥 자랑에 재미를 붙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서울 종로에는 밤에 학원생들로 북적였습니다. 밤에 종로에 나가면 아는 친구를 만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옆에 있는 친구에게 인맥을 과시한 것 같아서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인맥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아는 것은 인맥이 아닙니다. 진짜 인맥은 마음은 물론 물질까지도 주고 싶어 하는 친구를 가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맥의 허상에 빠져서 인맥을 즐길 대상이나 청탁 대상으로 알기에 진짜 인맥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짜 인맥은 먼저 충성하고 헌신하고 주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얻습니다. 충성과 헌신과 드림으로 오랜 시간 신뢰를 축적하지 않은 인맥은 허상입니다. 진짜 친구는 ‘내가 도움 받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돕고 싶은 마음이 드는 대상’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성도는 하나님을 ‘도움을 받는 물주’로 여기는 성도가 아니라 먼저 ‘기쁘게 해드리고 영광 돌릴 주님’으로 여기는 성도입니다. 그런 드림의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고 가족과 교우와 친구로부터도 무엇인가를 얻겠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이번 여름 가족캠프에서 셋째 날 아침 예배 때 이런 말씀을 전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중에 1000억을 가진 교우가 생겨도 그로부터 1000원이라도 얻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얻고자 하면 잃고 잃고자 하면 얻습니다. 그저 자신의 신실함을 보여주고 최선을 다하면 도와달라고 하지 않아도 도와줍니다. 반면에 도와달라고 내색하면 도와주고 싶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도와달라고 떼를 쓰면 더 도와주고 싶지 않습니다. 인맥을 청탁의 통로가 아닌 섬김의 통로로만 여길 때 진짜 인맥을 얻고 진짜 축복을 얻습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 시험 들지 않고 교회생활을 잘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추억이 상실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시험 들지 않고 교회생활을 오래 잘합니까?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얻을 생각을 하지 않고 드릴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이해도 바라지 마십시오. 자기가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으로 끝내십시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습니다. 그런 십자가의 신앙으로 하나님의 마음도 얻고 진짜 인맥도 얻어서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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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61 마태복음 자리를 지키는 이들 마25:1-13  강승호 목사  2014-11-08 854
11360 디도서 절제하는 삶을 살자 딛1:7-8  한태완 목사  2014-11-07 1711
11359 요나 닥친 사건을 시은자로 대합니까, 수은자로 대합니까? 욘1:1-3  김경형 목사  2014-11-07 607
11358 마태복음 작은 것, 사소한 것이 소중합니다. 마13:31-32  한태완 목사  2014-11-06 1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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