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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6: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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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순종의 놀라운 축복
본문: 요한복음 6: 8, 9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임금이 한 신하를 불러 이상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우물물을 길어 저기 밑 빠진 독에 가득히 채우시오.』
밑 빠진 독에 물이 채워질 리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충성스러운 신하는 오직 임금의 명령만 생각하면서 밤을 낮 삼아 물을 길어 날랐습니다. 결국 우물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물 바닥에 무엇인가 번쩍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엄청나게 큰 금덩어리였습니다. 신하는 임금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임금님, 용서하소서. 독에 물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물 바닥에서 이 금덩이를 건졌나이다.』 임금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겠다고 우물이 바닥나도록 수고했구려. 그대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신하요. 그 금덩이는 그렇게 순종하는 신하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오.』
세상에는 꾀를 내세우며 똑똑한 체하다가 망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충성된 사람의 성실을 기억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떠나라』 『바치라』에 순종함으로 축복받았고, 가나의 혼인잔치에도 하인들이 순종하므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본이 되시고』(히5: 8- 9)
하나님과 인간은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로서 우리는 이 관례를 토기장이와 진흙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를 가지고 좋은 그릇을 만들든지, 나쁜 그릇을 만들든지 오직 토기장이가 쓰고자 하는 용도에 따라 그의 마음대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진흙은 다만 토기장이의 손에 들려진 재료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드나이까, 이렇게 만들지 말고 저렇게 만들어 주소서.』라고 따질 자격이 없습니다. 오직 진흙은 토기장이가 가진 권세에 복종하여야 합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9: 20-21)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이와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창조주요. 권세자이십니다. 우리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권세자이시며 우리는 절대 권세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피조물이므로 우리가 『하나님, 왜 이렇게 하십니까? 이렇게 하시면 더 좋겠는데요.』라는 인간의 생각이나 이론을 제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이론을 다 파헤쳐 버리고 모든 생각을 예수님께 복종시켜서 순종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10: 4- 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6:16)
주님께서 유월절이 가까워 올 때 많은 무리와 함께 광야로 들어가셨습니다. 마침 점심 때가 되어 모인 사람들이 시장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아시고 제자들에게 『저 많은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때 빌립은 『여기는 광야입니다. 이 많은 사람을 먹이려며 최소한도 2백 데나리온이 필요하고 돈이 있다고 해도 그 많은 떡을 살수 없습니다.』라고 하며 인간적인 계산과 생각에서 이론을 제기했습니다.
그의 말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정확한 생각이요. 계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의 이러한 말에 아무런 대꾸도 안 하시고 묵묵히 계셨습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떡을 주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자마자 즉시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 앞에 가져왔고 주님께서는 오병이어 위에 축사하셔서 남자 5천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드레처럼 절대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순종할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겠고 또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항상 넘치도록 복을 주실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 22)
『생명의 삶』에 나온 오대원이라는 분의 글을 소개합니다.
『나는 주님이 우리에게 믿음의 걸음을 내딛어 그분을 따르라고, 즉 다른 선교단체로 옮기라고 말씀하신 날을 명확히 기억합니다. 1979년 9월 24일이었습니다. 내가 이날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방법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하든 순종해야 한다고 결정하고 헌신의 기도를 드린 바로 그날, 하나님은 학개 2장 18절 ~ 19절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펴서 읽었습니다.
『오늘부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생각해 보아라. 아홉째 달 24일부터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던 날부터 생각해 보아라. 창고에 씨앗이 아직도 남아 있느냐? 아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와 석류나무와 올리브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겠다.』
1979년 9월 24일, 그 이후로 주님은 그분의 말씀을 정말 신실하게 이행하셨습니다. 물론 그분은 언제나 신실하셨습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그분께 순종하기로 결정한 그날부터 주님이 얼마나 사역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는지를 더욱 온전히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 때문이 아니라는 것, 심지어 우리의 순종 때문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모든 열매는 그분으로 인해 맺힙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모든 종을 사용하셔서 그분께 영광 돌리고 그분의 나라를 위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의 완전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는 듣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삶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9:27)
김요셉 목사의 간증입니다.
학교를 짓기 위해 땅을 판 돈이 손에 들어오자,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 먼저 드리고 시작해야지.』 전체 건축 예산 중 절반이나 모자라서 여기저기 돈 꾸러 다니는 걸 아버지도 잘 아실 텐데, 기분이 좀 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꼼짝없이 십일조로 꽤 큰돈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건축을 시작하려고 보니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구입한 땅은 산비탈 한가운데 있는 땅이었습니다. 산을 다듬어야 했고, 진입로를 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십일조를 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갑자기 한국 전력 직원 몇 명이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뜻밖의 제안을 해 왔습니다. 『고압선이 지나가는 길에 학교 설립 계획이 있더군요. 고압선을 지중화하려면 땅이 필요합니다. 둘러보니 저 산 위의 땅이 제격입니다. 그 땅을 저희 측에 팔면, 철탑도 없애고 고압선도 지중화하고 진입로도 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땅 위로 고압선이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학교 운동장 위로 고압선이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대로 놔두었으면 위험천만이었을 것입니다. 그 제안 덕분에 골칫거리였던 서너 가지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었고, 금전적으로도 큰 이득을 봤습니다. 그때 섬광처럼 십일조가 떠올랐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순종이였는데, 하나님은 그것의 10배로 되돌려 주셨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3:10-12)
우리는 미래 지향적인 안목을 가지고 『하나님, 어떤 고난이 따르더라도 당신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런 희생의 순종을 하는 성도가 하나님께 복을 받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릴 것입니다.(빌2: 5- 13, 고전16:16)
찬송가 449장, <통> 377장 『예수 따라가며』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안위해 주시리라
(2) 해를 당하거나 우리 고생할 때 주가 위로해 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안위해 주시리라
(3) 남의 짐을 지고 슬픔 위로하면 주가 상급을 주시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항상 복내려 주시리라
(4) 우리 받은 것을 주께 다 드리면 우리 기쁨이 넘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은혜 풍성케 하시리라
(5) 주를 힘입어서 말씀 잘 배우고 주를 모시고 살아가세
주를 의지하며 항상 순종하면 주가 사랑해 주시리라
<후렴>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
서부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에서 어느 교회 목사님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교회 구조를 홈 셀(home cell)로 바꾸라는 마음을 주셔서 셀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지 1년 정도 지나자 이제는 교회당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는 대신 홈 셀 예배로만 모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고심 끝에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건물에서 주일예배 드리기를 포기한단 말입니까? 그럼 담임 목사인 제 역할은 무엇입니까?』 그러자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너는 양들을 위해 중보 기도만 해라』
결국 목사님은 적지 않은 반발이 있었음에도 말씀에 순종하기로 하고 교회 건물을 유치원 학교로 전환했습니다. 그렇게 한 지 꼭 3개월 만에 그 지역에 내전이 일어났고 많은 건물이 불에 타는 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다니던 이 학교 건물은 안전했고, 내전이 끝난 후 그 지역을 돌보는 희망의 중심이자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순종이 세상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귀한 축복이며,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늘의 능력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순종은 가장 좋은 것입니다. 순종은 위대한 것입니다. 순종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우리 삶을 돌아보며 순종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생각해 봅시다. 지금은 순종하기로 결단할 때입니다.
* 기도: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 뜻대로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머리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라도 온전히 복종하며 사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주님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제자의 길을 가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갈릴리 공동체 http://cafe.daum.net/Galileecommun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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