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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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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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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지상생애 동안에 결코 가난하게 살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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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역하시는 동안에 재정적으로 가난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하시는 동안 내내 가난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게 ‘되셨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최고의 희생을 하셨을 때 가난하게 ‘되셨다’고 믿는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가난하게 되셨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한 가지도 없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옷을 놓고 서로 제비뽑기를 하였다. 그 옷이 좋은 옷이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사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자. 그분은 목수의 아들로서 비교적 가난하게 성장하셨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사역을 하셨던 약 3년, 즉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성령이 충만했던 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의 기간에도 가난하셨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오해가 기독교 전체에 독버섯처럼 퍼지게 되었고, 그 결과 가난이 경건의 한 면이나 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그리스도인은 재정적으로 부요케 되면 안 되는 듯한 나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는가? 그런 오해의 구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눅 9: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이 말씀은, 전도여행을 하시는 동안 전도여행에 동참하여 주님을 따르겠다는 어떤 사람에게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매일의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따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주님께서 당신의 집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셨다는 말씀은 아니었다.
(마 27: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눅 8:1-3) 『[1]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예수님의 주변에는 늘 세계적 수준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따라다녔고, 그들이 그들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겼기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없으셨다는 말씀이다.
(요 13:27-29) 『[27]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예수님은 재정적으로 풍성하였기에 돈 궤를 맡은 사람이 따로 있었고, 가난한 자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재정을 맡은 자의 주요 업무였다는 말씀이다. 돈 궤를 맡은 가룟 유다는 도적으로서 예수님의 돈 궤에서 돈을 마구 빼돌렸다(요12:6).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로 예수님의 돈 궤에는 돈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만약에 예수님이 재정적으로 가난하셨다면 어떻게 그의 12제자와 그를 따르는 수 많은 무리들을 부양할 수가 있었겠는가?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기간동안에 재정적으로 결코 가난하지 않으셨다고 나는 믿는다.
(막 8:19-21)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21]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마 17: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필요하실 때면 언제나 경제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셨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즉 신성을 가지셨기에 그분에게만 가능했었던 일들이었는가?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요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 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도 그 분 자신의 힘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그런 것들이 가능했었던 것이다. 그 하나님의 성령이 오늘 우리 안에도 동일하게 역사해 주신다.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고, 혹은 그 이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요 14:12-14)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많은 부요를 누리고 있는 사악한 죄인들 대신에 그분의 자녀들이 번영하기를 원하신다.
(욥 27:16-17) 『[16]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예비할지라도 [17] 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눌 것이며』
(전 2:26)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재정적으로 풍성해지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 풍성함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부요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이 법칙들을 따른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좋은 것도 우리에게 주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시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일 풍성한 것으로 채우신다.
(시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아멘.
암송구절 :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배운 것을 행하십시오 :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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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역하시는 동안에 재정적으로 가난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하시는 동안 내내 가난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하게 ‘되셨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최고의 희생을 하셨을 때 가난하게 ‘되셨다’고 믿는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가난하게 되셨다.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한 가지도 없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옷을 놓고 서로 제비뽑기를 하였다. 그 옷이 좋은 옷이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사복음서를 통하여 예수님의 생애를 살펴보자. 그분은 목수의 아들로서 비교적 가난하게 성장하셨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사역을 하셨던 약 3년, 즉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성령이 충만했던 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의 기간에도 가난하셨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오해가 기독교 전체에 독버섯처럼 퍼지게 되었고, 그 결과 가난이 경건의 한 면이나 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그리스도인은 재정적으로 부요케 되면 안 되는 듯한 나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는가? 그런 오해의 구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눅 9: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이 말씀은, 전도여행을 하시는 동안 전도여행에 동참하여 주님을 따르겠다는 어떤 사람에게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매일의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따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주님께서 당신의 집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셨다는 말씀은 아니었다.
(마 27: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눅 8:1-3) 『[1]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예수님의 주변에는 늘 세계적 수준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따라다녔고, 그들이 그들의 소유로 예수님을 섬겼기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없으셨다는 말씀이다.
(요 13:27-29) 『[27]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예수님은 재정적으로 풍성하였기에 돈 궤를 맡은 사람이 따로 있었고, 가난한 자들에게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재정을 맡은 자의 주요 업무였다는 말씀이다. 돈 궤를 맡은 가룟 유다는 도적으로서 예수님의 돈 궤에서 돈을 마구 빼돌렸다(요12:6).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시가 나지 않을 정도로 예수님의 돈 궤에는 돈이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만약에 예수님이 재정적으로 가난하셨다면 어떻게 그의 12제자와 그를 따르는 수 많은 무리들을 부양할 수가 있었겠는가?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기간동안에 재정적으로 결코 가난하지 않으셨다고 나는 믿는다.
(막 8:19-21)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21]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마 17: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필요하실 때면 언제나 경제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셨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즉 신성을 가지셨기에 그분에게만 가능했었던 일들이었는가?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요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5:30)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 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도 그 분 자신의 힘으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그런 것들이 가능했었던 것이다. 그 하나님의 성령이 오늘 우리 안에도 동일하게 역사해 주신다.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고, 혹은 그 이상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또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요 14:12-14)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많은 부요를 누리고 있는 사악한 죄인들 대신에 그분의 자녀들이 번영하기를 원하신다.
(욥 27:16-17) 『[16] 그가 비록 은을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 같이 예비할지라도 [17] 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눌 것이며』
(전 2:26)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재정적으로 풍성해지기를 원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 풍성함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부요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이 법칙들을 따른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좋은 것도 우리에게 주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시 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일 풍성한 것으로 채우신다.
(시 68:19)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아멘.
암송구절 :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배운 것을 행하십시오 :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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