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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등록일시]:2003-04-02 오후 5:48:56
[빛으로 소금으로] 한손엔 축구공,한손엔 십자가… 할렐루야 축구단 감독 이영무 목사
“기도 골 세리머니의 원조는 접니다. 가진 것은 없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니 행복합니다.”
축구 국가대표 선수시절 골을 넣을 때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할렐루야축구단 감독 이영무 목사(50). 큼직한 안경과 다소 구부정한 허리,속삭이듯 조용한 어투는 그가 과연 ‘그라운드의 악바리’로 불렸던 바로 그 선수였는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제 목사다. 선수 시절, 성실하고 악착같은 플레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의 별명은 ‘악바리’,‘기도하는 사마귀’‘독사’ 등 한결같이 거칠고 사나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는 1992년 10월부터 ‘독사’대신‘목사’로 불린다.
그는 1973년부터 8년동안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3대째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큰 경기를 앞두고 항상 불안,초조,긴장감에 싸여 불면의 밤을 보냈다. 1975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메르데카대회 결승전을 앞두고 성경을 펼쳐들었다. 그때 자신의 눈앞에 클로즈업돼 나타난 이사야 41장 10절 말씀.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이니라”
그것은 숙면의 양약이었다. 비둘기 같은 평화가 영혼을 감쌌다. 그것은 난생 처음 누리는 안식이었다.
다음날 그는 결승전에서 펄펄 날았다. 결승골을 넣고 온몸이 고압전류에 감전되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열광의 그라운드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한다. 그것은 골 세리머니가 아니었다. 중생한 한 크리스천의 엄숙한 신앙고백이었다.
그후 그는 인생관이 완전히 변했다. 자신의 인기나 명예보다 주님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을 주위의 체육인들에게 고백했다. 많은 동료가 변화됐고 체육인교회와 연예인교회도 생겼다. 골을 넣은 뒤 그라운드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이제 그는 ‘감독’이며 ‘목사’다. 그는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상대 선수보다 배를 뛰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기술과 팀워크도 중요하지만 ‘영성훈련’보다 우선은 아니다. 선수들 중에서 스포츠 선교사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도 그런이유다.
“처음에는 많은 골을 넣어 몸값을 높여 외국에 진출하는 꿈을 꾸는 선수들이 많지요. 하지만 지금은 골 넣는 것보다 믿음이 강해졌으면 한다고 고백하는 선수들이 많아요.”
이영무 목사가 그라운드에 뿌린 복음의 씨앗은 이제 조금씩 싹이 트고 있다. 1999년 4월 할렐루야팀을 재창단한 이래 선수들과 함께 매년 100여 군데의 교회에서 간증집회를 갖고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이영무 축구교실’도 호응을 얻고 있다.
이목사는 지난해 한·일월드컵에서 자신의 신앙을 철저히 고백한 송종국 이영표 이천수 최태욱 선수에게서 진한 감동을 느꼈다. 신앙을 가진 스타 축구선수 1명은 선교사 100명보다 더 큰 선교효과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영무 목사에게는 요즘 간절한 기도 제목 하나가 있다. 할렐루야팀 선수들에게 4개월째 급료가 지급되지 못해 팀을 떠나는 선수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관심있는 몇몇 교회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림을 꾸려왔으나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후원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래서 이목사는 예수님을 잘 섬기는 구단주와 후원자를 찾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영무 목사는 오직 축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만 생각한다. “한 손에는 축구공,다른 한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복음을 전하는 게 제 사명입니다. 선수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우리는 축구선교사들이 될 것입니다.” 이목사의 목소리에 힘이 솟는다.
유영대기자 hrefmailtoydyoo@kmib.co.kr
[빛으로 소금으로] 한손엔 축구공,한손엔 십자가… 할렐루야 축구단 감독 이영무 목사
“기도 골 세리머니의 원조는 접니다. 가진 것은 없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니 행복합니다.”
축구 국가대표 선수시절 골을 넣을 때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할렐루야축구단 감독 이영무 목사(50). 큼직한 안경과 다소 구부정한 허리,속삭이듯 조용한 어투는 그가 과연 ‘그라운드의 악바리’로 불렸던 바로 그 선수였는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이제 목사다. 선수 시절, 성실하고 악착같은 플레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의 별명은 ‘악바리’,‘기도하는 사마귀’‘독사’ 등 한결같이 거칠고 사나운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는 1992년 10월부터 ‘독사’대신‘목사’로 불린다.
그는 1973년부터 8년동안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3대째 하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큰 경기를 앞두고 항상 불안,초조,긴장감에 싸여 불면의 밤을 보냈다. 1975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메르데카대회 결승전을 앞두고 성경을 펼쳐들었다. 그때 자신의 눈앞에 클로즈업돼 나타난 이사야 41장 10절 말씀.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함이니라”
그것은 숙면의 양약이었다. 비둘기 같은 평화가 영혼을 감쌌다. 그것은 난생 처음 누리는 안식이었다.
다음날 그는 결승전에서 펄펄 날았다. 결승골을 넣고 온몸이 고압전류에 감전되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열광의 그라운드에서 그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한다. 그것은 골 세리머니가 아니었다. 중생한 한 크리스천의 엄숙한 신앙고백이었다.
그후 그는 인생관이 완전히 변했다. 자신의 인기나 명예보다 주님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그는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을 주위의 체육인들에게 고백했다. 많은 동료가 변화됐고 체육인교회와 연예인교회도 생겼다. 골을 넣은 뒤 그라운드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이제 그는 ‘감독’이며 ‘목사’다. 그는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상대 선수보다 배를 뛰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기술과 팀워크도 중요하지만 ‘영성훈련’보다 우선은 아니다. 선수들 중에서 스포츠 선교사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도 그런이유다.
“처음에는 많은 골을 넣어 몸값을 높여 외국에 진출하는 꿈을 꾸는 선수들이 많지요. 하지만 지금은 골 넣는 것보다 믿음이 강해졌으면 한다고 고백하는 선수들이 많아요.”
이영무 목사가 그라운드에 뿌린 복음의 씨앗은 이제 조금씩 싹이 트고 있다. 1999년 4월 할렐루야팀을 재창단한 이래 선수들과 함께 매년 100여 군데의 교회에서 간증집회를 갖고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이영무 축구교실’도 호응을 얻고 있다.
이목사는 지난해 한·일월드컵에서 자신의 신앙을 철저히 고백한 송종국 이영표 이천수 최태욱 선수에게서 진한 감동을 느꼈다. 신앙을 가진 스타 축구선수 1명은 선교사 100명보다 더 큰 선교효과가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영무 목사에게는 요즘 간절한 기도 제목 하나가 있다. 할렐루야팀 선수들에게 4개월째 급료가 지급되지 못해 팀을 떠나는 선수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관심있는 몇몇 교회와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겨우 살림을 꾸려왔으나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후원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래서 이목사는 예수님을 잘 섬기는 구단주와 후원자를 찾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영무 목사는 오직 축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만 생각한다. “한 손에는 축구공,다른 한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복음을 전하는 게 제 사명입니다. 선수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우리는 축구선교사들이 될 것입니다.” 이목사의 목소리에 힘이 솟는다.
유영대기자 hrefmailto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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