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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이름은 생명의 씨앗처럼
(2004년 9월 12일 감자탕교회 전도지 3면)
땅 위에 생명이 있어 자라는 모든 것들은 처음엔 작은 씨앗이었지요.
한 품에 들어오지 않는 아름드리나무나 탐스런 열매를 맺는 과수들도
처음엔 작은 씨앗 하나에 불과했어요.
엄마랑 꼭 닮은 눈이, 아빠의 독특한 잠버릇까지도 어쩜 그렇게
점보다 작은 생명의 시초를 통해 전해졌을까? 신비해요.
하나님의 나라도 처음엔 그렇게 예수라는 이름 속에 담겨
작은 씨앗처럼 내 안에 떨어졌지요.
작은 바람에도 금방 날아가 버릴 것 같았어요. 그러나,
하나씩 둘씩 생겨나는 기쁨과 조금씩 넓어지는 평강을 느끼며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서 자라고 있음을 알았어요.
지금은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득하지요.
여전한 세상이지만 감사와 기쁨이 가득하고, 나는 연약해도
예수님의 사랑이 내게 능력이 되어 세상을 이길 힘을 얻어요.
아직도 세상의 염려와 장래에 대한 두려움이 문득문득 다가오지만
견강한 나무가 거친 바람 속에서 그러하듯
내 마음과 생각이 예수님께 뿌리를 두고 있기에 곧 평강을 찾아요.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에 미래는 두려움 대신 도전과 꿈으로 변하지요.
예수 그 이름 안에 들어 있는 비밀을 아직은 다 알지 못하지만,
그래서 장래 일이 더 기대가 돼요.
내 삶에 아직 맺혀야 할 열매들이 예수님 안에 가득 들어 있거든요.
처음엔 그 이름 안에 그만한 비밀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했지요.
이젠 예수님 그늘 아래서 시원하게 쉬기도 하고
그에게서 나는 열매를 먹으며 날마다 새 생명을 얻어요.
예수 믿으세요.
예수의 이름은 영원한 천국을 품은 생명의 씨앗이에요.
글쓴이 / 이종혜/시인/서울 광염인의 소리 편집위원/원광초등학교 교사 ljongh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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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해석하는 마스터 키, 예수 그리스도
(2004년 9월 12일 감자탕교회 이야기 전도지 1면)
인생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해석되어집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
는 크고 작은 모든 일은 우리 안에서 해석과정을 거칩니다. 삶을 해석하는 곳이 마음
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우리가 만나는 사람, 우리가 처한 형편과 상황
이 해석을 거치면 그것이 감정이 됩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 많은 경우를 보잖아요. 같은 일을 겪고 어떤 사람은 감사하는
데 어떤 사람은 원망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뻐하는데 어떤 사람은 괴로워합니다. 어
떤 사람은 소망을 갖는데 어떤 사람은 낙심합니다. 이 차이가 바로 해석의 차이입니
다. 그 사람의 마음에서 그 일을 어떻게 해석했느냐의 차이입니다.
자주 분을 내고, 화를 내고, 토라지길 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해석
공식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해석 방식에 따라 어떤 것을 넣고 해석해도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서운함, 자존심, 낮은 자존감, 열등감, 분노와 같은 것을 넣고 해석하면 결
과는 분노, 원망, 슬픔, 토라짐, 낙심, 공격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항상 기뻐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이것도 해석의 결과입니다. 그가 갖
고 있는 해석공식의 차이입니다. 이 사람은 해석 공식에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넣습니
다. 예수가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해석하지 않습니다. 모든 삶을 예수로 해석합니다.
예수로 해석한 삶은 기쁨입니다. 소망입니다. 감사입니다. 용기입니다.
오늘 저는 지난 해 열살된 아들을 먼저 천국으로 보낸 중국 선교사님 내외분을 만났
습니다. 그 선교사님을 잘아는 집사님이 좀 위로해 달라고 부탁해서 만났습니다. 전
위로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만났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분들의 얼굴에 수심이
나 근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낙심이나 낙담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두 분은
해와 같이 밝은 얼굴로 아들의 죽음을 예수를 넣어 해석해 제게 들려 주었습니다. 두
분의 입에서는 감사, 기쁨, 영광, 은혜라는 말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위로하겠다고 준비했던 저는 그저 멍하니 앉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내
가 믿음을 보나이다.”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 그것도 예수를 넣어 해석하면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영안실에 안치한 그 날 밤에
선교사님 내외는 예수를 넣어 그 일을 해석한겁니다. 예수를 넣어 해석하고 나니 웃
움이 피어나더랍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사람들이 두 번 놀랬다고 합니다. 한 번은 갑
작스런 죽음으로, 또 한 번은 아들을 잃은 두 선교사님의 얼굴을 보고.
얼마 전 우리교회 집사님 한 분이 지하철전도를 하다 매를 맞았습니다. 복음을 전하
고 있는데 달려와 때린 겁니다. 욕을 하며 달려들어 때렸답니다. 그 분이 그 날 어떤
표정으로 교회로 돌아왔을까요? 흥분해서 식식거리며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돌아올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천사의 얼굴과 같이 행복한 얼굴로 이렇게 고백했습니
다.‘오늘 제가 예수님의 제자인 확인을 받았습니다.’매맞은 것을 예수를 넣어 해석
한 결과입니다.
오늘 혹 그 어떤 일로 마음이 곤고하고 낙심이 되어 힘이 빠져 있습니까? 혹 예수
를 빼고 해석한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 없이 인생을 해석하면 화가납니다. 분이납니
다. 맥이 빠집니다. 침통해집니다. 연약해집니다. 예수 없이 삶을 해석하면 피곤하고
낙심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넣고 해석하다 예수 빼
고 해석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큰 일이라도 예수 없이 해석하면 그것은 공허
합니다. 허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예수를 넣어 해석하면
그것은 아주 귀한 일이요 소중한 일입니다. 우리가 가끔 마음이 곤고해 질 때가 있습
니다. 예수 없이 삶을 해석하고 있을 때 일 수 있습니다.
“예수 없이 인생을 해석하지 말라. 하나님 없이 네 삶을 해석하지 말라. 예수 없
이 네 아들과 딸을 해석하지 말라. 예수를 넣어 네 삶을 해석하라. 예수 없이는 그 어
떤 것도 해석하지 말라. 참새 한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안된다. 네 삶의 전 영역을 예수를 넣어 해석하라. 네 인생을 예수로 해석하라. 네 삶
에 예수를 대입하라. 인생을 해석하는 마스터 키, 예수 그리스도로 네 마음을 채우
라.”
네, 주님.
글쓴이 조현삼/서울광염교회 담임목사 slsp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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